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지난 1일 오후 전화통화를 갖고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적용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의 요청으로 성사된 이번 통화에서 옐런 재무장관은 에너지 가격 안정과 러시아의 수입 감소를 위해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G7(주요 7개국) 등 국제사회에서의 논의 동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오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적용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오후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적용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추 부총리 또한 국제유가 급등으로 한국도 인플레이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고 공감했다. 그는 "가격상한제 도입 취지를 이해한다"며 "향후 가격상한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도출되는 대로 공유해 달라"고 미국 측에 요청했다. 미국의 정책 취지에 공감을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딴 길 가는 중국, 인도 등 ‘큰손’의 러시아산 원유 대량 구매가 변수

하지만 이 제재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찍히면서, 우리나라 국익에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원유가격 상한제는 미국을 포함한 원유 구매국들이 정해진 가격선을 넘는 러시아산 원유를 사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가격 상한을 통해 러시아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에너지 시장의 긴장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이다.

석유상한가 설정 논의는 G7 정상회의 첫날인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가진 양자회담에서 러시아산 석유상한가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러시아산 원유는 그동안의 서방제재에도 불구하고 급등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의 ‘큰손’들이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번 ‘가격상한제’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가격상한제 지킨 경우에만 원유수송 관련 보험을 제공...뉴욕타임스, “자유시장 원리 위배해 석유시장 통제하려는 시도” 비판

이후 G7 정상들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3일간의 정상회의를 폐막하면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도입 추진에 합의했다고 독일 쥐트도이체차이퉁(SZ)이 전했다. 각국 정부는 제3국, 민간부문과 협의해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을 위한 모든 조처를 검토하기로 했다.

G7 정상들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3일간의 정상회의를 폐막하면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도입 추진에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G7 정상들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3일간의 정상회의를 폐막하면서,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도입 추진에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구체적으로는 서방이 원유수송과 관련한 보험을 원유 가격상한제를 지킨 경우에 한해 제공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가격상한제를 통해 러시아가 에너지 시장의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이익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에너지 시장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제재 도입을 두고 ‘실현 가능성’이나 ‘실효성’에 애해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뉴욕타임즈(NYT)에 따르면, 이 제재 마련에 참여했던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교수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산 석유와 다른 국가의 석유를 차별해 격차를 만들려는 시도”라면서도 “전 세계 유가 인하에 효과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 등은 이미 러시아산 원유를 운반하는 선박에는 보험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선 설정은 자유시장 논리를 위배해 석유시장을 통제하려는 전례가 없는 시도”라는 입장이다.

서방의 러시아 경제 제재 역효과 커?...러시아 우랄유 가격 최근 한 달 간 20% 상승

게다가 일부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전 세계 경제 불황을 몰고 온 러시아를 겨냥한 서방의 다양한 경제 제재안이 발표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러시아가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를 볼모로 잡고 ‘경제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평가까지 내놓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세계 경제 침체가 주요 7개국(G7)의 과도한 대(對)러시아 제재가 불러온 악영향이라는 적반하장식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이 제재에 합의한 G7의 의도와 달리,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가격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28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우랄유의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까지 평균 가격은 배럴당 87.49달러(약 11만3000원)로, 한 달 전보다 약 20% 상승했다. 국제유가 지표인 브렌트유는 28일 기준 117달러(15만1000원)로 우랄유보다 높지만, 차이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하나증권,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 차단해 유가 급등 가능성도 커져”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재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는 상황이다. 전규연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러시아산 에너지 공급 부족으로 직격탄을 맞은 유럽은 이번 안건에 찬성할 경우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차단해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등 합의 과정에서 잡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한 가격이 낮아질수록 러시아가 제재에 반발하며 원유 공급을 차단해 오히려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에너지 가격 안정과 러시아의 수입 감소를 위해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추 부총리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에너지 가격 안정과 러시아의 수입 감소를 위해 러시아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 실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추경호 부총리는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전 연구원은 러시아의 원유 생산 비용과 재정균형 유가(원유를 수출하는 산유국 정부가 자국 내 균형 재정을 달성할 수 있는 유가 수준)를 각각 배럴당 45달러와 65달러 수준으로 추산했다. 미국 등이 정한 러시아 원유 상한가가 재정균형 유가보다 낮으면 러시아가 원유 공급을 줄여 오히려 국제 유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5% 미만

게다가 경제 부처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이 5% 미만이라며, “러시아 원유 가격이 싸지면 다른 원유 가격도 함께 내리는 효과가 있겠지만, 쉽진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추 부총리와 옐런 장관은 오는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직접 만나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 등 주요 경제 현안을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진다. 옐런 장관은 이달 19∼20일 한국을 찾아 추 부총리와 한·미 재무장관회의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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