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칼럼] 철인왕 루이9세
[김상규 칼럼] 철인왕 루이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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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전 조달청장
김상규 전 조달청장

플라톤에게는 정치에 대해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호선에 의해 공직에 취임하는 것이 불합리하게 보였다. 무두장이도 선원도 농부도 오랜 훈련과정을 거쳐 어엿한 직업인이 되는데 어떻게 정치행정에 대해서는 아무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 고위공직자에 오를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다. 그 결론이 철인 정치다. 오랜 교육과 훈련 과정을 거친 사람만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병에 걸렸을 때 미남이나 말 잘하는 의사가 아니라, 면허가 있고 치료기술이 좋은 전문의를 찾는다. 국가가 병들었을 때 가장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의 봉사와 지도를 구해야 하지 않는가? 교육을 통해 유능하고 깨끗한 인물을 선발・양성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철인사상이다.
하지만 선거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국민들이 잘 훈련된 사람을 뽑으면 되기 때문이다. 공개적인 검증을 하게 되니 전혀 엉뚱한 사람이 선발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플라톤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치공학과 이미지 쇼가 백성들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 히틀러도 선거로 뽑혔고, 러시아의 푸틴, 터키의 에르도안도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대통령에 올랐다. 철인 왕이 될 거라고 믿었던 많은 대통령들이 독재자가 되거나 평범한 통치를 하고 자리를 물러났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철인왕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역사상 철인왕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까지 한다.
철인왕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은 데서 나오는 현상이 아닐까. 민주정에서도 전제군주제 하에서도 철인왕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 역사상 세종대왕 정도면 철인왕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글을 만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며 민생 안정을 우선에 둔 왕이었다. 유학시절 중국학생들이 왕이 문자를 만든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왕은 백성들을 착취하는 존재로만 알고 있었다. 또 불교의 이상을 자신의 왕국에 실현하려한 인도의 아쇼카 대왕도 철인의 반열에 들어가지 않을까? 플라톤은 철인왕의 조건으로 오랜 훈련기간을 두고 있는데 전제 군주제하의 왕도정치와 제왕학교육도 철인정치를 위한 준비가 아닐까? 왕자들만 대상이 되니 뛰어난 성적을 낼 확률은 좀 떨어지지만.....
  유럽에서는 왕이 성인이 된 사례도 있다. 프랑스의 루이 9세인데 프랑스 영토를 오늘 날과 같이 확장한 왕이다. 미국의 세인트루이스 시, 프랑스의 생 루이 섬, 브라질의 상루이스 시의 이름도 루이9세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백성들의 사랑을 받지 않고는 이렇게 될 수 없다. 당연히 철인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12살에 왕이 되어 어머니 블랑쉬가 섭정을 했는데, 그녀는 왕실소유지에 매인 농노를 해방시켰고, 가난한 여성들이 결혼할 수 있도록 지참금을 대주었다. 아들에게 대죄를 짓느니 차라리 죽는 모습을 보는 게 낫다며 기독교 윤리를 왕의 마음에 심었다고 한다. 그 영향인지 루이 9세는 스스로 프란치스코회의 재속회원이 되어 금욕과 청빈, 자선을 직접 실행했다. 부부간 금슬도 좋아 11명의 자녀를 두었고 아이들의 교육을 적극적으로 분담하였다.
그리고 소수의 특권층으로부터 빈자와 약자를 보호해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 백성들을 부당하게 대하는 영주들을 엄격하게 처벌했다. 한 영주가 자기영지에서 토끼 세 마리를 잡은 학생3명을 교수형에 처했을 때 왕은 그를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위협한 뒤 예배당 3개를 세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는 조건으로 석방했다고 한다(윌듀런트 문명이야기 4-2). 토끼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 상습범이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토끼사냥 때문에 교수형에 처한 것은 너무해 보인다. 당시 귀족들의 횡포와 약자 편에 선 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한없이 부드러운 왕이었지만 사람들은 두려워했다는데, 공명정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루이9세의 업적 중 돋보이는 것이 공정한 사법제도의 확립이었다. 사사로운 보복과 봉건전쟁을 금지하면서, 증거에 기초한 재판이 결투에 의한 재판을 대신했다. 그 결과 지역에 있던 귀족재판소는 왕의 법관이 파견되는 국왕재판소로 대체 되었다. 파리에 항구적인 법정인 고등법원을 설치했고 고문을 완화했으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도입했다. 루이9세는 이웃국가들이 서로 싸울 때 “미래의 적들이 약화될 수 있으니 관여하지 말라”는 자문단의 의견을 무시하고 화해를 종용했고, 외국의 왕들은 루이의 중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의 복지에 신경을 써서, 병원과 요양시설, 시각장애인과 매춘부의 갱생시설 등을 설립하고 돈을 기부했다. 매일 12명의 빈민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 중 세 명은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대접하고 직접 발을 씻겨 주었다고 한다. 루이 9세 치하에서 프랑스는 안정과 번영을 누렸으며, 이 기간 동안 프랑스가 쌓은 부는 고딕건축양식을 가장 풍부하고 완벽하게 발전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윌듀런트 문명이야기4-2)). 

그에게도 실책은 있었다. 이단과 이교도에 대해서는 단호해서 종교재판을 통해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재정을 불렸다. 2번의 십자군 원정은, 첫 번째는 패해서 포로로 잡혔고 몸값을 치르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슬람 측에서 실수로 몸값을 적게 받고 풀어주었는데 그 후 제대로 계산해서 더 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두 번째 튀니지 원정에서는 이질에 걸려서 사망했다. 십자군의 실패는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신의 징벌이 아닐까. 그렇게 신앙심이 돈독했지만 신의 뜻을 알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철인왕들은 마음속에 헌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루이9세는 기독교가 헌법이었고, 아쇼카대왕은 불교가, 세종대왕은 유교의 통치철학이 헌법이었다. 마음속의 헌법은 절대적 권력을 가진 왕이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멈출 수 있어야 독선으로 흐르지 않고 반대의견을 수용할 수 있다. 
뜬금없이 철인왕을 소개하는 이유는 인간은 노력여하에 따라서 철인왕이 될 수도 있고, 평범한 왕이 되기도 해서다. 목표를 높이 잡아야지, 스스로 안 된다고 하면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란 시조처럼 철인왕이 되려고 노력하는 자세와 철인왕에 도달하지 못한 데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시저가 38세 때 알렉산더 대왕의 동상 앞에서 통곡을 했다고 한다. “대왕은 자기보다 어린나이에 전 세계를 정복했는데 자신은 여태 아무 업적도 이룬 것이 없다며....” 이런 마음이 있어야 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가 보다. 

윤석열 대통령도 철인왕이 될 조건을 많이 갖추고 있다. 가장 뛰어난 수재들이 모이는 서울법대를 나와 사법고시를 합격했고 검사가 되어 오랜 기간 공무를 수행했다. 국가업무를 온몸으로 배워, 훈련받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눈앞의 정치계산에 흔들리지 않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란 헌법정신으로 국정에 임한다면 철인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상규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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