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쓰나미'의 파고는 이제 시작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고물가 현상이 심화돼 각국의 시름이 한층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론 인플레이션 악화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긴축에 속도를 내는 것 말고는 딱히 뾰족한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경기 침체를 불사하고 인플레와 싸워야 하는데 각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얼마나 자체 판단을 갖고 밀어붙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잉글랜드은행(BOE) 총재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 수장들은 지난달 29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포럼에서 "저금리와 저물가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10년 넘게 이어진 저금리·저물가 시대의 종언이다. 이제는 향후 몇년간 금리 인상의 시대다. 시중 유동성을 회수해 물가 오름세를 꺾기 위한 긴축의 고삐를 조이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다.

이미 파월 미 연준 의장은 경기 침체보다 높은 물가를 잡지 못했을 때 겪을 고통을 더 우려한다면서 지난달 기준금리를 1.50~1.75%로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28년 만에 밟았다. 이달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도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달 인상을 예고하는 등 주요국의 긴축 행보도 본격화하고 있다.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후퇴의 위험에도 생계와 직결되는 고물가를 잡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회원국들의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지난해 12월 4.4%에서 올해 6월 8.8%로 두 배나 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수급에 차질을 빚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관련해선 2.7%에서 7.0%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8.6%나 뛰어 40여 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유로존은 같은 달 8.1% 올라 1997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영국은 9.1% 올라 1982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의 5월 소비자물가는 5.4% 올랐다.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이렇게 각국 물가가 무섭게 뛰고 있는데 문제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식량 위기 가중, 코로나19 재유행에 따른 국제 공급망 차질 확대 가능성, 주요국의 임금 상승세 확대 등으로 물가 정점 시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8~9월이 되면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7~9.4%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3분기 유로존 물가도 9%대로 점쳐지고 있다. 앞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내 물가 전망과 관련해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는데 전문가들은 물론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6%대는 최소치일 뿐'이라는 시각을 내보이고 있다.

주요국의 긴축 행보가 본격 시작된 가운데 한국은행은 4~5월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7월에는 현재 1.75%에서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전기·가스요금이 동시에 오르는 등 공공요금발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어 한은의 금리 인상은 확실시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수개월 간 물가 중심의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금리가 줄줄이 오르면 대출자의 이자 부담 증가와 소비·투자 위축 등으로 경기 침체 현상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 축소나 역전으로 한국에서의 자본 유출 가능성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도 불가피하다.

금리 상승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취약계층과 한계기업 등에 핀셋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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