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치욕스러운 날이었다. 얼마나 북한의 눈치를 봤으면 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라 불리었을까. 지난 2020년 6월,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북한 김여정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자 단 하루 만에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4일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료시키고 재적 의원 180명 전원 찬성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대북전단금지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청와대도 "대북삐라는 백해무익한 행위"라고 가세했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이 법안의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북한 정권의 눈치보기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 없다. 거짓 평화쇼로 국민을 기만하는 것도 모자라 독재자 김정은을 마치 ‘평화의 전도사’인양 추켜세울 때였다.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위해 사재를 털어가며 활동하던 대북인권 활동가들을 온갖 모양새로 탄압하고 통제했다. 부당한 요구와 간섭을 하는 북한당국을 향해 협박을 멈추라 말하지 못하고, 오히려 칼끝을 활동가들에게 겨누며 핍박했다.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북한에서의 한류 현상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탈북민의 증언은 물론 북한의 공식문헌에서도 남한 영상물 시청에 따른 ‘비사회주의 행위’를 단속하라는 내용이 직접 언급된다. 오죽하면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만들어 남한 영상물을 단속하려 할까. 북한 내에 확산하는 외부정보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힘이다. ‘썩고 병든 자본주의’ 남한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 보장되는 곳임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동안 북한당국으로부터 철저하게 주입된 사상교양을 받은 북한 주민들로서는 남한 미디어는 외부세계를 경험하는 출구가 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정보 유입에 따른 북한주민들의 동요다. 북한 정권이 지속적으로 새세대들의 사상교양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인식 때문이다. 구소련 붕괴 과정에서 청년들의 사상 이완과 자유세계에 대한 동경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틈새로 작용했음을 북한당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으로의 외부정보 유입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한 또 다른 대북제재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 둘째, 북한 주민의 알권리를 증진하여 북한 사회변화를 촉진한다. 셋째, 장기적으로 통일 시대 남북한 주민의 인식적, 정서적 공유를 확대한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되, 공세적 예방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대북제재로 북한을 압박함과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북한사회 변화를 촉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동안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있을 때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개최되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는 게 다였다. 정작 그 회의에서 어떠한 결의를 했는지, 북한에 대응하는 실제 행동은 무엇인지 공개된 적이 없다. 적과의 실전에서 말뿐인 허세는 전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 흘리지 않고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서도 북한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추느라 우리 스스로 거두어 두었던 무기를 다시 꺼내 들 때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고 군사적 카드로 활용한다면, 역으로 우리는 체제위협 요인을 찾아 역공해야 한다. 북한당국이 자인하는 체제 위협 요인은 바로 남한의 한류, 대북방송, 심리전 등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일정한 조건과 시점을 제시하고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거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감행한다면 정보유입을 통한 공세로 대응해야 한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해서 대응용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힘의 우위가 바로 정보다. 국방부의 대북심리전단, 국정원의 대북정보 유입 부서 등의 활동을 정상화해야 한다. 또한 북한주민의 알권리, 문화적 권리 등 보편적 인권의 개념을 기반으로 북한에 대북정보 유입을 위한 법률, 제도도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회 차원에서 법률로 ‘대북정보유입촉진법(가칭)’을 제정하여 범정부, 기관 차원에서 대북정보 유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 한마디로 콘텐츠라는 소프트 파워를 통해 북한주민의 마음을 얻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도 디지털 매체의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려하여, 디지털 매체의 유입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제는 김정은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북한주민들이 외부 세계를 볼 수 있도록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가 우리 손에 들려져 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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