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군사훈련 중단-미군철수, 중국패권주의 환경 아래로 들어가는 것
북핵 게임에서 주도권 쥔 트럼프, CVID에서 PVID로 강화
文정부, 평화협정 체결되면 촛불집회 등으로 미군철수 유도할 것
판문점 선언, 어떤 방식과 얼마만큼의 비용으로 한반도 비핵화 이룰 것인지에 대해선 침묵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

한반도에서 한미 군사훈련 중단 및 주한미군 철수는 중국이 북한에 주둔하고 있지 않은 것 및 북중 군사 훈련이 없는 현실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 믿는 것은 정확한 판단이 아니다. 한미 군사훈련 및 미군철수는 남북 평화 공존이 아니라 공산당이 지배하는 북-중 연합체 및 중국패권주의 지배 환경 밑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반도로선 그게 디폴트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금 트럼프는 북한 상대의 게임에서 분명 주도권을 쥐고 있다. 북의 모호하고도 공교한 어휘들에 대해 질박한 정공법으로 맞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PVID(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로, 핵무기에 생화학 무기까지 덧붙이며 북의 진정성을 시험하자 마침내 김정은은 급거 중국 시진핑에게 가 협상력 보강을 호소하게 만든 형세이다. 이란 핵협상 탈퇴도 북을 더 압박하고 있다. CVID와 PVID는 동일하며 대북 압박을 가중한 게 아니라는 미국 측 해명에도 불구하고 둘은 당연히 다르다. PVID는 그 비핵화가 어느 한 시점뿐 아니라 모든 시평(time horizon)에서 유지될 것까지 요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협상 완료 이후 모든 어느 순간에 핵관련 도발이 있기만 하면 제재할 근거를 갖겠다는 것이다.

우린 이 역사 상황에서 미국-북한 관계를 옆에서 지켜보는 과객쯤으로 자처하던 타성을 버리고 비핵화 협상 성공이 바로 우리 자신에게 줄 결과를 냉엄하게 직면해야 한다. 김일성시대부터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은 줄기차게 주장되어 왔지만 북의 속셈을 잘 알기에 귀 기울일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북의 핵무장은 이 구도를 바꾸어 놓았다. 북은 핵으로 협상력을 키워 이제 미국과 한국으로 하여금 협상장에 나오도록 강요함에 성공했다. 또 다른 변화 요인은 좌파가 남쪽에 좌파정권이 선 것이며 이들은 북의 주장을 앞장서 변론하고 추진해 왔다. 그들 예정대로 올해 안 평화협정에 성공하면 이제 주한미군 철수 문제만이 남는다.

문재인은 문정인과의 애드블룬 띄우기 놀이에서 미군철수는 평화협정과는 무관하다고 밝혔고 미국마저 이렇게 인정하나 그 선언은 아무 의미가 없고 결국 반드시 미군철수까지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정교한 방식의 기획이다. 공식 평화협정 체결에서는 공식적으로 연계하지 않되 또 다른 촛불 군중의 행진 및 미군주둔 비용의 분담 논의에서 증폭될 한미갈등과 그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촉발할 거대한 민중폭력에 넘기는 것이다. 반미 군중에 의한 미국인들의 위해(危害) 사태들을 직면하면 주한미군은 21세기판 애치슨라인을 긋고 한국을 스스로 떠나게 된다. 평화협정 맺은 마당에 미군주둔은 명분이 없다고 공격할 중국의 후원까지 힘입어 주한미군 축출 투쟁은 반드시 성공한다. 결국,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이란 오래 열망해 온 과실을 다 얻는다.

우리에게 남는 상태를 65년 전후 구도에서 종합평가해보자. 북은 평화협정도 얻고 주한미군 철수도 얻고 세습 지배체제 안정도 얻는다. 남측은 32년 동안 이리저리 이용당하다 핵 무장 자금까지 대어주고, 그 돈으로 만들어진 핵을 이제 피하겠다고 보호막인 주한미군도 버리고,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북한을 다시금 견고하게 만들어 준 뒤, 32년 전 김일성이 NPT에 위장 가입하고 노태우가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하던 1986년으로 돌아간다. 그리곤 중국과 북한의 위협 밑에서 주한미군도 없이 제6차 경제 사회개발계획(1987-1991)비숫한 걸 새로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이만큼 크게 퇴보하고도 나라 온전하기는 쉽지 않다.

나쁜 정책을 분식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정책목표가 달성되었을 때의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정책비용은 가리는 것이다. 판문점의 4.27선언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결과상태만 말하고 어떤 방법, 과정 및 비용으로 이를 이룰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서 미국을 상대로 하는 협상 주역으로 나가겠다며, 비핵화의 파생적 수혜자로서 한국이 치러야 의무로 철도 도로의 연결 등의 대북 협력 조치와 NLL 평화수역, 정전 협정 폐기 등의 책무들을 지정했을 뿐이다.

북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조건인 체제보장은 그 의미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일견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단지 무력 공격을 안 하는 것인지 궁핍과 경제난으로부터 북한경제체제까지 지켜주는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6.25 정전 협정을 회고하며 당시 유엔군 수석 대표였던 터너 조이 해군 제독(C. T. Joy)의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는 공산주의자들이 끊임없이 문구를 수정하며 재해석을 요구하는 수법들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철없는 아이’ 징후에 빠진 실세들을 본다. 본래 북한은 한미군사훈련과 주둔미군의 철수를 연계하여 단계적으로 비핵화의 가격을 최대한 받고자 하며, 중국은 북핵보다는 그에 대응해 불가피하게 나타날 남측의 핵을 가장 중시하고 그 다음으로는 북핵 방어 명분의 사드를 제거함이 중요하다. 두 차례 만남으로 시진핑의 리모컨에 더욱 종속된 김정은으로선 이 기본전략을 철저히 따른다. 좌파 군중이 묘사하는 로망과 통 큰 재량의 여지란 전혀 없는 합리적 정책결정자일 수밖에 없다. 경망스러운 건 오히려 남측 정부이다. 젊은이들이 이제 군대 안 가도 된다는 걸 말한 사람은 통일부장관이었다. 웹에서는 앳되고 귀여운 복돼지 아이콘들을 갑자기 자주 보이고 거래되는 바람에 한순간 정들 뻔했다가 헤어스타일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짜 돼지는 아니고 사람 형상물이다. 정부가 정책을 앞두고 제 먼저 도취(euphoria)와 제 좋을 대로 해석하기(wishful thinking)에 빠져들고 기레기 언론들이 이를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 확산하는 꼴이다.

솔직한 느낌으로는 이 핵 게임에서 우리는 대체로 패배해 가고 있다. 과거 우린 핵 없이 주한미군이란 보초들의 방패 뒤에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었다. 지금 남북협상 및 미북협상으로 북핵 게임이 정리된다면 우리는 주한미군이란 방패도 잃고 중국공산정권 영향권 밑에서 종이 한 장의 평화협정서에 목을 맡겨두는 상태가 된다.

우리가 도달할 상태가 이 수준이란 점에 상심하고 그친다면 행복한 국민이다.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으니: 핵이 그렇게 큰 재미를 주는 흉기라면 북이 위 몇몇 대가만 누리고 진실로 쉽게 내버릴까? 그리 쉬 버릴 거라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체제안정, 경제제제 완화, 평화정착만으로 쉽게 버린다면 세상은 김정은의 정직함을 칭송하기 보다는 바보라고 욕할 것 같다. 러시아, 중국 뿐 아니라 한국민들까지.

결국, 협상들이 실패하면 지금의 북의 핵 공갈의 연장이며, 성공한다면 지금보다 나빠진 안보 환경에서 핵 위협의 재발을 우려하며 사는 것이다. 미국, 중국, 북한은 차치하고 우리에게 주어질 예상 결과가 그것이다. 그게 승리인가? 카산드라(Cassandra)의 경고는 전무하고 정부와 언론이 낙관들로만 가득한 게 참 기이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핵화의 약속이 배신될 경우까지 감안해 더 다채로운 대안을 마련하라고 지도자에게 요구하려 들 것이다. 그럼 끝인가? 아니다. 마지막, 그리고 근본적이고도 최대의 절망이 남아 있다. 과거 대북협상 결과에서 배운 우리가 얻은 당연한 합리적 의심으로 이제 게임을 벌이는 국가 지도자들의 정체성조차 확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내 세금 받아가 북핵 개발자금으로 보태 주었고, 내 세금으로 그렇게 선심 써 노벨상 받았고, 북은 핵 개발할 능력도 의도도 없다며 변론해 주며 만약 핵 개발 시엔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던 자는 그 책임 요구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얼른 죽어버렸고, 내 세금으로 지은 그의 기념시설들은 곳곳에 서 있고, 우리는 이제 과거보다 더 나빠질 결과를 얻기 위해 다시 세금내며 애쓰는 지경에 몰려 있다. 이 사태에 이른 책임을 부분이나마 통감하는 지도자를 보지 못했다. 이런 신뢰 구조 하에서 과연 승리가 가능할까?

김정은에 속지 말라며, 과거 그 아비 및 조부에게 속았듯이 당하지 말라며 경고해 오던 우리는 이제 질문을 바꾸기 시작했다. 당신은 단지 북에게 속는 피해자인가? 아니면 적어도 암묵적 공모자인가? 혹은 북의 기망을 알고도 짐짓 모른 체 동조해 나라를 흔들어 가는 공동 정범(正犯)인가? 영화 ‘플래툰’(Platoon)은 월맹 공산군들과의 대격전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헬리콥터로 후송되던 찰리 쉰의 절규로 끝나고 있다: ‘적은 우리 속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이 땅의 시민들은 가장 고독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제 나라 대통령보다 섹스스캔들이 가득하다는 남의 나라 대통령에게 뭔가를 더 기대하면서.... 우리는 그렇게라도 계속 싸워야 할 것이다.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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