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낙태 반대 단체 회원들이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지난 금요일 낙태 반대 단체 회원들이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미국의 연방 대법원이 지난 241973년의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스스로 뒤집었다. 이로써 미국 여성의 낙태권이 근 50년간 헌법상으로 보장될 수 있었던 기반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으며, 각 주들이 이 결정에 적응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25<월스트리트저널>이 밝혔다.

 

연방 대법원은 임신 기간이 15주 이상 되면 낙태를 금지하도록 했던 2018년의 미시시피 주법원의 법을 인정했다. 이는 로 대 웨이드판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방 대법원의 낙태권 인정 선례보다 2달 일찍 금지토록 한 것이다. 대법원의 다수의 보수 성향 판사들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낙태가 헌법상의 권리라고 인정했던 것은 터무니없이 잘못됐다수십 년간 연방 대법원의 실수였다고 했다. 연방 대법원 판사 사무엘 알리토는 판결에서 헌법은 낙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며, 그러한 권리는 어떤 헌법 조항에도 내재해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제 헌법에 유의하면서 낙태 문제를 국민의 선출된 대표들에게 되돌려줄 차례라고 했다.

 

현대인들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결과들 중 하나인 이번 판결은 연방 대법원이 예전에는 낙태권을 인정했으나 스스로 헌법상의 권리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아주 보기 드문 예로 남을 전망이다.

 

연방 대법원 판사들은 63으로 미시시피 법을 인정했으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을 것인가 하는 더 넓은 차원의 문제에서는 54라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를 보였다.

 

로 대 웨이드판결을 내렸던 판사들 다수의 견해는 1868년 수정헌법 제14조가 채택되었을 당시 미국 전역에서 낙태가 광범위하게 제한되었을 때의 시각에 기반하고 있었다. 따라서 알리토 판사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주정부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수정헌법 조항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끝낼 권리가 도출될 수 없다고 했다. 알리토 판사는 1868년의 미국 상황과 현재의 미국 상황이 매우 다르므로, 1868년의 수정헌법에 기반하여 낙태가 합법이라고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판결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본 셈이다. 알리토 판사에 동조한 대법원 판사는 클레런스 토마스, 네일 고서치, 브렛 카바너프, 에이미 코니 바렛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은 미시시피 법을 지지하긴 했으나 낙태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연방 대법원의 판사 중 진보적 성향을 보이는 3인은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공동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판사 다수의 의견이 여성의 이익과 잠재적 삶(태아)” 사이의 균형을 깨는 결정을 내렸다며 옳지 못하다고 했다. 스테펀 브레이어, 소니아 소토메이어, 엘레나 케건 판사는 오늘 대법원이 균형을 깼다대법원은 수정(授精)의 바로 그 순간부터 여성은 말할 권리조차 없다고 말한 셈이라는 의견을 냈다. 이어 오늘부터 성인이 된 젊은 여성들은 어머니 세대와 할머니 세대 때보다도 권리가 없어지게 된 셈이라 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 판결에 대해 판결로 인해 연방 대법원과 이 나라에 슬픈 날로 기록되게 됐다우리 법의 균형을 뒤집으려는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결정이며, 내가 보기엔 극단 이데올로기가 현실화한 것이고 연방 대법원이 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른 셈이라 평했다.

 

미국 내에서 이번 판결을 두고 낙태 반대파와 옹호파의 시위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을 만큼 미국의 사회 갈등을 촉발시킬 뜨거운 감자가 된 상태다. 미국의 50개 주 중 공화당 우세 주인 텍사스에서는 20219월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상황이다. 연방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만큼 공화당 우세 주는 물론이고 민주당 우세 주에서도 낙태법 관련하여 변경 사항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로 대 웨이드판결은 1973년 연방 대법원 판결로 낙태권이 미국 헌법에 기초한 사생활의 권리에 포함된다고 봤다.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을 썼던 노마 맥코비가 텍사스 주의 검사 헨리 웨이드(Henry Wade)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제인 로는 21세에 임신하여 낙태를 원해 불량배들에게 윤간을 당했다고 거짓진술을 했으나 낙태를 금지했던 텍사스 낙태법에 의해 낙태수술이 거부되었다. 이에 제인 로는 텍사스 주 검사 헨리 웨이드에게 소송을 걸었고 결국 72로 텍사스 낙태법은 위헌 판결을 받게 되었다.

지난 24일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단체 소속 회원들이 워싱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지난 24일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단체 소속 회원들이 워싱턴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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