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발생한 경찰의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가 여야간 정치쟁점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번 사안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경찰 길들이기’ 프레임을 들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대해 “국기문란”이라며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에 대해 “국기문란”이라며 경찰을 강하게 질책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윤 대통령, “인사 번복이 아니라 경찰이 자체 추천인사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 단언

윤 대통령은 지난 23일 오전 용산 집무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경찰의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과 관련, "경찰에서 행정안전부로 자체적으로 추천한 인사를 그냥 보직을 해버린 것"이라며 "아주 중대한 국기문란 아니면 어이없는,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과오"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아직 대통령 재가도 나지 않고 행정안전부에서 또 검토해서 대통령에게 의견도 내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인사가 밖으로 유출되고, 이것이 또 언론에 마치 인사가 번복된 것처럼 나간 것"이라고 이번 사태의 경위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경찰을 강하게 질책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책임지라는 뜻’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임명돼 퇴임을 앞둔 김 청장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는 ‘경찰의 조직적 반발’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김창룡 경찰청장 개인 문제?...행안부 장관의 경찰 인사권 부여 방안 둔 ‘경찰의 조직적 반발’ 가능성 제기돼

윤 대통령은 24일 출근길에 김 청장에 대한 경질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제 임기가 한 달 남았는데 그게 중요하냐”고 말했다. 인사 문제에서 비롯된 ‘국기문란’ 행위가 김 청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 조직의 전반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인식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번 사태는 행안부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가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에 대한 지휘·인사·징계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한 당일에 발생한 일이라 논란이 더 커졌다. 여권 내부에서는 “경찰의 조직적 반발 차원에서 이뤄진 것 아닌지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경찰은 더불어민주당과 손잡고 ‘경찰 길들이기’ 주장하며 반발

그러나 경찰에서는 ‘경찰이 자문위의 권고안에 반발하자, 경찰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김 청장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보수적인 조직으로 평가받는 경찰 내부에서도 실명을 걸고 “내가 분신을 해서 억울함을 증명해야 하나?”라는 반발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정부 여권에서는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 ‘경찰이 대통령의 재가도 거치지 않고, 두 번이나 인사를 발표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경찰측에서는 민정수석실과 협의해 인사안을 발표한 뒤 결재를 나중에 받아온 관행을 따랐다는 해명을 내놓고 있지만, 민정수석실이 없어진 지가 한 달 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억지주장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안정책관이 1차 인사안을 통보하면서 “보고 양식에 맞춰 대통령실과 협의해 결재 준비를 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청장이 그 말도 흘려들었다는 관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재인 정권이 임명한 김창룡 청장, 퇴임 이후를 염두에 둔 ‘정치행보’ 해석도 나와

따라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 청장이 의도적으로 윤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다음달 23일 임기가 끝나는 김 청장은 윤 정부 출범 후 논의된 '경찰국 신설 방안' 등에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정면 대응 의지를 보인 바 있기 때문이다. 이는 퇴임 이후를 염두에 둔 정치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24일 오전 김창룡 경찰청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4일 오전 김창룡 경찰청장이 굳은 표정으로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게다가 경찰청은 해명과정에서 말을 바꿈으로써, 신뢰감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처음에는 “실무자의 실수”라고 했다가 “행안부가 협의 중이던 안을 최종안으로 잘못 보냈다”고 정정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경찰청은 21일 오후 10시10분쯤 “인사 명단이 협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실무자가 최종 버전을 올려야 하는데 중간 버전을 잘못 올렸다”며 “실무자가 인사 발령자 확인을 하고 전화를 받는 과정에서 뒤늦게 오류를 발견했다. 행안부가 관여한 바는 없다”고 둘러댔다. 그러다가 1시간 20분여 뒤에는 “행안부에서 최종본이라고 온 것을 통보받아 내부망에 게시한 것인데, 행안부에서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안이 최종본이라며 수정을 요청했다”고 말을 바꾼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대통령 결제 안된, 기안 단계에 있는 경찰 인사안을 경찰청이 공지한 것” 강조

그런데 행안부는 경찰청의 해명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을 밝히며, 이 사태의 잘못을 경찰의 책임으로 돌렸다. 행안부는 지난 22일 해명자료를 통해 행안부가 경찰청에 보낸 문서는 최종안이 아니었다며, “검토 중인 안이 공개가 되면서 혼란이 발생했는데 행안부 치안정책관은 경찰청에 최종안이 아닌 협의안으로 보낸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경찰청에서 최종안으로 오해해 공개해 버리면서 논란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경찰 인사안을 행안부가 바꾼 것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은 결재를 (21일 오후 10시에) 한 번 밖에 하지 않았으며, 기안 단계에 있는 것을 경찰청에서 공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장관의 입장은 대통령 결재가 나기 전에 경찰청이 자체적으로 먼저 공지해서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따라서 행안부가 최종 결재안을 정정하거나 번복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검수완박’으로 힘세진 경찰의 ‘독단적 인사’ 시도 가능성에 주목

경찰청의 오락가락 해명과 이 장관의 설명 고려하면,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단순 실수인지 아닌지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면 안다”면서 “그간 인사가 얼마나 절차없이 이뤄졌는지, 바로잡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찰공무원법에 따르면 총경 이상 고위직 인사는 경찰청장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입김이 세진 경찰청장이 행안부 장관의 제청 등을 요식 행위로 여기고, 마음대로 인사를 했다면 이 기회에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찰은 정부 눈치보지 말고 국민보고 일하라”고 선동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23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찾아 윤석열 정부의 경찰 통제를 규탄했다. 경찰을 통제하고, 경찰을 흔들어대고, 경찰인사권을 쥐고 경찰을 길들이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21대 국회 상반기 행전안전위원장을 맡았던 서영교 의원을 비롯 행안위 소속 9명의 의원은 김 청장을 면담하면서 이런 입장을 밝혔다.

제21대 국회 상반기 행정안전위원장을 맡았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반기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찾아 윤석열 정부의 경찰통제 규탄과 경찰의 중립성을 촉구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채널A 캡처]
제21대 국회 상반기 행정안전위원장을 맡았던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반기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2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찾아 윤석열 정부의 경찰 통제를 규탄했다. [사진=채널A 캡처]

서영교 의원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을 하거나 법을 위반할 시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찰 출신인 임호선 의원은 "이 장관은 법적 근거 없이 치안정감 면접을 하더니, 치안감 인사는 2시간 만에 번복해 경찰청장의 추천권이 사실상 무력화되는 인사참사를 벌였다"고 했다. 관례대로 해온 경찰청장의 인사권에 무게를 싣는 발언으로 풀이됐다.

백혜련 의원도 "행안부 장관이 잘못한 건지, 김 청장이 잘못한 건지 둘 중 하나는 절차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 경찰도 입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 기관에 덮어씌우기를 하려는 의도가 읽힌다"며 "행안위는 경찰청에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입장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은 ‘경찰국 신설’로 귀결됐다. 서영교 의원은 "검사 출신이 대통령이 돼 검찰 독재 정부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며 "정부조직법과 경찰법을 위반하고 인사권을 쥐고 경찰을 통제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정부의 눈치를 볼 것이 없다"며 "흔들리지 말고 국민을 위해 복무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국기문란 사태’임을 입증하고 문책하지 못하면 정치공방 가열될 듯

행안부와 경찰청 간의 대립 양상이 민주당 의원들의 개입으로 ‘경찰국 설치’와 그에 따른 ‘경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문제’로 확전되고 있는 것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국기문란’을 언급한 대통령의 입장에도 불구, 21일 오후 9시경에 최종 인사안이 발표되고, 다음날 오전 9시에 바뀐 근무지로 출근하라는 점을 문제삼으며 ‘경찰 길들이기’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기문란’ 발언 이후, 경찰 내부의 반발은 더 거세지는 상황이다. [사진=YTN 캡처]
윤석열 대통령의 ‘국기문란’ 발언 이후, 경찰 내부의 반발은 더 거세지는 상황이다. [사진=YTN 캡처]

결국 윤석열 정부가 이번 사태에 대한 신속한 진상조사를 통해 경찰의 조직적 반발에 의한 국기문란 사태임을 규정하고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질 못할 경우, 정치공방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관측된다.

관련기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