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는 퇴임을 앞둔 시점에 발행한 「국정백서」를 통해 자신들의 집권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한 흔들림 없는 전진’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남북교류협력’와 ‘평화를 위한 군사적 뒷받침’을 노력했으며 그 결과 ‘국민이 체험하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내외 지지 기반 확보’에 기여했다고 자평했다. 문 정부와 함께 지난 5년을 풍미했던 구 여권 정치세력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여 ‘북한 도발에 대한 확고한 대응,’ ‘원칙에 기반하는 대북 기조,’ ‘한미동맹 강화’ 등을 강조하자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평화세력 대 전쟁세력’이라는 해묵은 색깔론을 끄집어 냈다. 하지만 ‘비위 맞추기와 달래기’를 통해 저들의 도발을 잠시 멈추게 한 것을 두고 “평화정착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논리다. 곪아가는 상처를 그대로 둔 채 진통제 처방으로 환자의 고통을 잠시 덜어준 의사가 ‘명의(名醫)’를 자칭하는 꼴이다.

결론부터 말해, 국민이 이런 주장의 진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칭 ‘명의’들이 힘을 발휘하는 정치구도가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상대의 흑심과 무력증강에는 두 눈을 감은 채 ‘굴종과 유화’ 만을 앞세우고 상대의 선의와 선처를 기대하면서 스스로의 방패를 내려놓는 정책은 잠시 무력충돌을 멈추게 할 수는 있으나 국가의 취약성을 증대시키고 결국은 망국을 자초하게 된다. 그래서 4세기 로마의 전략가 베케티우스가 설파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은 시공(時空)을 초월하는 진리로 남아 있다.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베게티우스의 진리에 입각하여 북핵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아니, 훨씬 이전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특히, 지금은 북한이 핵위협을 양적·질적으로 크게 늘린 상태에서 제7차 핵실험까지 준비하면서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까지 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실험까지 재개한다면 한국과 국제사회의 대응도 지금까지와는 달라져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핵실험 재개는 한국에게 위기이자 기회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즉, 한국의 안보위기이지만 한국이 새로운 차원의 북핵대응 전략으로 전환할 기회이기도 하다.

3단계 북핵 대응 전략

개념적으로 말해 북핵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략에는 외교적 전략과 군사적 전략이라는 두 부류가 있고, 이것들은 북핵 위협의 가중에 따라 다시 세 단계 대응전략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 단계는 외교적 수단 만을 사용하는 전략으로서 설득, 강압, 제재 등 비군사적 방법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끌어냄으로써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하는 전략을 말한다. 두 번째는 한국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비핵 의무를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동맹이 가진 군사적 수단을 통해 북핵 위협을 상쇄하는 핵균형(nuclear parity), 즉 서로가 서로를 해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의지의 균형(balance of resolution)’ 또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구축하는 전략을 말한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력을 유지·강화하는 것이 경제·정치적 부담만 될 뿐 실익이 없음을 깨닫고 비핵화를 택하게 하는 장기적인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NPT의 회원으로서 독자 핵무장을 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며, 미국이 동맹국들의 독자적 핵무장을 만류하는 대신 핵우산으로 보호해주는 현 반확산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동맹의 파탄을 가져와 득(得)보다 실(失)이 많은 의미없는 선택(pointless choice)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제2단계 전략에서 북핵과의 핵균형을 이루는 핵심 수단은 어차피 동맹국 미국의 핵우산이며, 재래전력에 기반하는 한국군의 ‘3축 체제’는 보조적 수단일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단계는 현 신냉전 구도가 더욱 격화되어 북핵 위협뿐 아니라 중국의 핵 및 군사적 위협도 크게 증가한 최악 상황에 대비하는 전략으로, 미국이 기존의 반확산 정책을 포기하고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동맹국들의 독자 핵무장에 동의하여 핵을 보유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연합하여 한반도를 넘어 역내 핵균형을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계가 되면 한국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차원에서 ‘독재세력’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및 자유민주주의 우방국들과 협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은 NPT 탈퇴, 핵무장에 대한 동맹 합의 확보, 자유진영 국가들과의 핵동맹 체제 구축 등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北 핵실험시 즉각 ‘미 전술핵 재반입’ 선포해야

지금까지 한국의 진보·보수 정부들은 제1단계 ‘북한 비핵화’ 전략에만 매몰되어 ‘유화’ 또는 ‘압박’으로 북한의 핵포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논쟁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이는 평양의 핵의지와 국제정세를 착각하는 부질없는 언쟁이었을 뿐이다. 북한은 세습독재 체제의 유지와 주체통일이라는 확고부동한 목표 하에서 핵무장을 최우선 국가사업으로 강행해왔고, 신냉전 구도 하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안보리를 무력화시키면서 북핵을 두둔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2013년에 “한국이 핵보유 동맹국인 미국과 연합하여 우리에게 맞선다면 한국에 대해 핵을 사용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핵보유법」을 제정했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 미사일(SLBM, SLCM), 변칙기동(Pull-up)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HGV) 등 강대국형 투발수단들을 개발해왔다. 2022년 4월 25일 인민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을 통해 그리고 5월 5일에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담화를 통해 ‘핵사용’ 원칙과 함께 ‘대남 선제 핵사용 불사’를 천명했다. “전쟁 억제’를 위해 핵을 보유할 뿐”이라는 애초의 입장을 뒤어 넘어 핵사용을 전제로 하는 강대국형 ‘핵전투 전략(nuclear warfighting strategy)’를 선포한 것이다. 이런데도 한국은 여전히 ‘북핵 포기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있으나마나한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제는 제2단계 ‘핵우산 강화를 통한 핵균형’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많이 늦었다. 조만간 북한이 제7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한국은 즉각 ‘미 전술핵 재반입을 통한 획기적인 핵우산 강화’ 방침을 선언해야 한다. 오늘날 저위력 핵무기를 배치함에 있어서는 육상에 고정 배치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B-61-12와 같은 공대지 저위력 핵무기는 한미 간 합의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실전 배치가 가능하며, 핵탑재 전략잠수함의 한국해역 상시 배치, 한반도와 멀지 않은 아시아 지역에의 지상핵 배치 등도 검토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핵우산 조항을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동맹조약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런 식의 핵우산 강화는 북핵위협을 상쇄하고 평양의 ‘핵 갑질’을 견제할뿐 아니라 중국이 북핵을 만류하고 나서도록 만드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 때문에, 북한의 제7차 핵실험이 한국에게는 한국이 제2단계 북핵대응 전략으로의 전환을 선언할 기회이며, 윤석열 정부는 이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쯤 한미 양국의 안보라인 간에 전술핵 재반입의 수준, 방법, 절차 등에 대한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는 제3단계 전략에 대해서도 유의하고 있어야 한다. 당장 실행할 전략은 아니지만, 국제 안보환경이 제3단계 전략의 필요성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악화되고 있음은 유념하고 있어야 마땅하다. 북한의 무제한적 핵무력 고도화와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감안할 때, 미국이 아시아 동맹국들의 핵무장을 만류하면서 대신 핵우산을 제공하는 현 반확산 정책을 고수한다면 조만간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이 대륙쪽으로 기을 것이라는 점은 한미 양국의 전략가들이 이미 예상하고 있는 바다. 미국 내에서 한국의 독자 핵무장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동맹과의 합의 하에 추진하게 될지 모르는 핵무장을 위해 꾸준히 잠재력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필자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이적성을 가진 실책’으로 보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베케티우스의 진리로 돌아가자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는 북한을 두고 한국의 과거 정부들은 지붕이 불타고 있는데도 처마 밑에서 재잘거리는 제비와 참새들(燕雀處堂)처럼 핵포기 설득 방안을 놓고 부질없는 언쟁을 벌여왔다. 그러는 사이에 핵보유 북한과 비보유 한국 사이의 핵비대칭성은 극대화되었고, 북한의 ‘핵 갑질’도 더욱 극렬해졌다. 베케티우스의 진리를 외면해온 것이었다. 그의 진리는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입증되고 있다. 상대의 체제를 소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제로섬 관계에 있는 두 나라가 전쟁을 불식하고 상생(相生)으로 향하는 출발점은 전쟁 도발이 스스로의 파멸을 가져올 뿐 얻는 것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했고, 존 케네디 대통령도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평화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실토했다.

평시에는 자식이 부모를 묻고 전시에는 부모가 자식을 묻는다. 인류는 이런 끔찍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에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상생공영, 민족화해 등도 결국 ‘전쟁억제’라는 기반 위에서 피어날 수 있는 꽃이다. 그것이 베게티우스의 진리다.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평양이 핵보유를 ‘수단’이 아닌 ‘부담’으로 느낄 때 비로소 진정성이 담긴 비핵화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비위 맞추기와 달래기’를 통해 핵포기를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호전광’으로 매도하는 자칭 ‘평화주의자’들이 국정과 언로(言路)를 장악하는 나라에서는 이런 진리가 통하기 어렵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