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내 ‘세대교체론’이 계파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친문, 친명계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다양한 계파간의 이합집산도 새롭게 이뤄지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 첫출근하며 지지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 첫출근하며 지지자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친문계, 이낙연계, 정세균계, 이재명계, 제3의 계파 등 간에 이합집산 격화?

친문계는 지난 대선 때처럼 이낙연계와 정세균계로 다시 분화되고, 재선 의원들이 점화시킨 세대교체론에 재선 의원 그룹과 일부 86그룹이 가세해 제3의 계파를 형성해 나가는 양상이다.

특히 세대교체론은 ‘이재명 책임론’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이재명 의원의 당권도전을 막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로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새로운 연대와 야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이낙연계, 정세균계 등을 포함한 친문세력의 86그룹이 97그룹과 야합해 이재명계와 차기 당권을 둘러싼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세대교체론, 12년간 권력의 단맛 누린 86그룹 퇴장 정조준...혁신보다 이재명 죽이기에 관심 커?

세대교체론은 표면적으로 ‘86그룹’은 퇴장하고 그 자리를 ‘97그룹’이 대신 맡아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86그룹은 ‘80년대 학번-60년대 생’의 줄임말이고, 97그룹은 ‘90년대 학번-70년대 생’의 줄임말이다. 80년대 대학의 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86그룹은 지난 2000년 총선을 시발점으로 삼아 정치권에 대거 진입했다. 초기에는 그들이 정치권 세대교체의 주역이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 등 12년 동안 권력의 단맛을 보면서 기득계층으로 굳어졌다. 이렇게 보면 세대교체론은 민주당내 대세가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대교체론이 자생적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명 의원이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이재명 죽이기’가 1차 목적이고, 혁신은 그 다음 관심사항이기 때문이다. 염불(혁신)에는 관심이 거의 없고, 잿밥(이재명 죽이기)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세대교체론과 이재명 책임론이 공조하면 이재명 입지 위축 가능성도

이재명 의원측 사정도 여의치는 않다. 민주당 지지층에서조차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의원이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것에 대해 비판여론이 거세다. 이 의원처럼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6.1 지방선거의 총괄선대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은 사상초유의 사건이다. 결국 민주당은 6.1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따라서 이 의원은 대선과 지방선거 연패에 대한 책임론의 핵심 당사자이다.

세대교체론과 친문세력의 이재명 책임론이 동시에 압박을 가할 경우 이재명계의 입지가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 내 계파간 이합집산 격화돼...이재명계로 분류돼온 조응천 의원, 세대교체 지지 후 실명 거론하며 86그룹 당대표 불출마 요구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조응천 의원 등 재선 의원들이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조응천 의원 등 재선 의원들이 1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모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그동안 이재명계로 분류돼온 인사들에 의해서도 세대교체론이 제기되고 있다. 세대교체론이 이재명 의원에게 칼끝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을 모를 리 없다는 점에서, 이들 친이재명계의 역할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 세대교체 주장이 처음으로 공론화된 시점은 지난 9일 개최된 민주당 재선 의원 비공개 간담회라고 볼 수 있다. 재선 의원들은 “당이 새로운 혁신·쇄신을 하고 면모를 일신하는 데 70년 및 80년대 생 의원들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리했다. 이를 위해 ‘통합형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제안했다. 집단지도체제가 어떤 형식을 지향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소위 97그룹 내 주도적 인물이 없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당 재선 의원들 중에선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박주민 전재수 의원(가나다순) 등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인사들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동안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자타가 공인하는 97그룹 대표주자는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광재 전 의원이 화답하면서 세대교체론 불씨가 커졌다. 이 전 의원은 사흘 뒤인 12일 언론 인터뷰에서 “70~80년대 생들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당 단합에 도움이 되고 쇄신과 세대교체라는 면에서도 좋은 시그널이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13일에는 더 거센 호응이 이어졌다.

이원욱 의원은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전대 역시 70년대생 의원으로 재편해야 당의 혁신과 쇄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이인영 의원은 같은날 페이스북에서 “40대에서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한다면 저를 버리고 주저없이 돕겠다”고 훨씬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조응천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에서 “이광재 전 의원이 어제(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이재명, 전해철, 홍영표 의원은 (전당대회) 나오지 말라고 한 것에 100% 공감한다”며 “세대교체도 해야하고 이미지 쇄신도 해야 된다”고 밝혔다. 이재명이라는 실명을 거론하면서 86그룹의 당권 도전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해철, 홍영표 의원은 당권 도전이 유력시되는 친문 중진들이다.

원조 친노인 이광재 전 의원은 당내 계파색이 불분명하지만, 이원욱 의원은 정세균계, 이인영 의원은 친문의원으로 분류된다. 문제는 조응천 의원이다. 조 의원은 그간 이재명계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가장 분명하게 ‘세대교체’라는 명분으로 이재명 의원의 당대표 불출마를 요구한 것이다. 동시에 친문 중진들의 당권 도전 반대의사도 밝혔다. 따라서 조 의원은 세대교체론을 주도하는 재선 의원 그룹과 제3의 계파를 형성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 혁신을 위해 광화문포럼 해체 및 계파정치 종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당 혁신을 위해 광화문포럼 해체 및 계파정치 종식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대교체론은 친문계의 ‘꼭두각시’로 전락?... ‘친문 86 당권-97 그룹 대권’ 분점 시나리오 거론돼

하지만 세대교체론을 중심으로 한 제3의 계파가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확실한 혁신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앞으로 강력한 혁신의 방향을 제시해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얻지 못할 경우, 이재명계와 전쟁을 벌이는 친문계가 내세운 ‘꼭두각시’라는 오명을 얻고 꽃봉오리도 피우지 못한 채 도태될 위험도 있다.

국민들이 알 만한 중심인물이 부각되지 못한 것도 한계이다. ‘간판 스타’가 없는 세대교체론은 정치적 동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대교체론이 친문 세력에 의해 이재명 당권 플랜을 좌절시키기 위한 용도로 활용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해 ‘친문 86 그룹 당권-97 그룹 차기 대권’이라는 권력 분점 시나리오도 흘러나온다. 친문세력이 8월 전대에서 당권을 다시 장악함으로써 2024년 총선 공천권을 갖는 대신, 97 그룹은 2027년 대선 후보를 차지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와 관련 채널A '뉴스탑10'에서는 흥미로운 분석이 제기됐다. 문화일보 이도운 논설위원은 17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86 그룹이 이번 전대에서 당대표를 맡고, 97그룹은 다음 대선에서 대권후보로 도전하는 타협이 관측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 내 세대교체론이 ‘혁신의 동력’이 아니라, ‘계파 갈등 불씨’로 변질되고 있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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