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께서 보기에도 이 사건 영상에 등장한 여성의 행위가 '폭행'이 아닙니까?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이게 폭행이 아니라고 하길래 내 눈을 의심했다. 전·현직 경찰관과 검찰 수사관, 변호사 등, 내가 물어볼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문제의 영상을 보여주며 이게 ‘폭행’인지 아닌지 봐 달라고 부탁했다. 적어도 내 부탁을 반은 이들은 모두 ‘폭행’이 맞는다는 답변을 했다.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는 동생이자 부산 지역 취재원인 부산 동구 주민 장 아무개가 주(駐)부산일본영사관 앞에서 미신고 불법집회를 벌이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관계자에게 우산으로 맞아 해당 인물을 부산 동부경찰서에 ‘특수폭행’ 혐의로 고소했더니 황당한 수사 결론이 나왔다며 내게 하소연했다.

나는 해당 사건을 2021년 8월19일자 기사 〈[단독] “우산을 휘둘렀어도 폭행 아냐”…법리 창조하는 경찰, 왜 이러나〉에서 이미 다룬 바 있다. 장 아무개가 내게 보여준 영상을 보면 장 아무개가 영사관 앞에서 불법집회를 진행 중인 대진연 관계자들에게 “나는 이곳 주민인데,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며 경찰의 해산명령을 따라 불법집회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와중에 사건이 일어났다. 장 아무개와 대진연 관계자로 보이는 성명불상의 여성 간의 시비가 붙은 가운데 문제의 여성이 소지하고 있던 우산을 장 아무개를 향해 휘두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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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3일 부산광역시 동구에 소재한 일본영사관 앞에서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관계자들이 미신고 불법집회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에 항의하는 지역 주민 장 아무개에게 신원 불상의 여성이 소지하고 있던 우산을 휘두르는 장면.(영상=제보)

형법상 ‘폭행’이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일체(一切)의 불법적인 유형력(有形力) 행사’를 뜻한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폭행죄를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유형력을 행사함을 뜻하는 것”으로 정의(定義)하고 “반드시 피해자의 신체에 접촉함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장 아무개로부터 고소장을 접수하고 고소인 조사를 실시한 부산 동부경찰서 형사과 형사2팀(팀장 이판기·경감)은 해당 사건에 대해 “우리 형법 제260조에서 필요한 폭행은 협의(狹義)의 폭행이라고 할 것이므로 고소인이 제출한 영상 증거와 참고인 진술내용을 볼 때 피고소인의 행위 태양(態樣)을 폭행 실행의 착수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장 아무개는 황당하다고 했다. 문제의 여성이 자신을 향해 우산을 휘두른 동영상 증거도 있고, 경찰 조사에서 실제로 맞았다고 진술했는데도, 경찰이 피고소인(피의자)을 특정해 조사할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사건을 서둘러 종결해 버렸다는 것이다. 장 아무개는, 그래서, 당시 수사 담당자인 동(同) 경찰서 수사관 방인배 경사를 찾아가 수사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따져 물었더니, 방 경사가 “그래서 다쳤느냐?”고 되물었다며 내게 하소연했다.

장 아무개는 ‘불송치’ 결정 사건에 대해 개정 ‘형사소송법’의 절차에 따라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을 담당한 당시 부산지방검찰청 소속 한지혁 검사(사시 47회·연수원38기) 역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나 역시 납득하기 힘든 결론이었다. 내가 접한 사건들에서도 조금만 부닥치거나 하는 시비가 있거나 맞지는 않았어도 손을 치켜들거나 한 증거가 있는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전부 ‘폭행’ 혐의로 입건해 검찰로 송치했고 검찰 역시 경찰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 피의자들을 모두 재판에 넘겼기 때문이다.

부산 동부경찰서.(사진=연합뉴스)
부산 동부경찰서.(사진=연합뉴스)

하도 황당해서 검찰에서 수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지인에게 사건 개요를 설명하고 장 아무개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검사가 서류를 아예 보지 않았네요.”—그는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대답을 내게 해 줬다. 검사가 사건 서류와 증거물들을 제대로 검토했다면 ‘불기소’ 처분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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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검사가 지난 4월15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게시물의 내용.(캡처=페이스북)

최근 논란이 된 이른바 ‘가평 계곡 살인 사건’에서도 해당 사건을 단순 변사로 내사 종결한 안미현 검사(사시 50회·연수원41기)는 SBS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해당 사건의 내용이 알려지며 국민적 분노가 일자 지난 4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계곡 살인 사건 관련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에 대해 (경찰의) 의견대로 내사 종결할 것을 지휘했다”며 “나의 무능함으로 인해 피해자 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묻힐 뻔했다”는 표현으로 대(對)국민 사죄에 나섰다.

안 검사는 “경찰이 변사사건 수사를 하고 저는 그 기록만 받아보다 보니, 사건 당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진술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서류에 매몰되어 경찰의 내사종결 의견대로 처리하라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고 말았다”고 변명하면서 특히 “변사사건 단계라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이어서 이 단계에서는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안 검사는 책임을 경찰로 돌리면서 마치 ‘보완수사만 가능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취지로 자신을 변호했다. 하지만, 안 검사가 해당 사건을 내사종결토록 수사 지휘한 때는 2019년으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되기 전이었기에 검찰 송치 전이라고 하더라도 해당 사건의 주임을 맡은 안 검사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검사로서 얼마든지 사건을 파고들 수 있었다. 안 검사의 변명 내용과 달리, 당시에는 ‘보완수사 지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산 장 아무개 사건도 그같은 식으로 처리됐을 것이라 짐작한다. 방 경사가 말한 것처럼 문제의 여성이 휘두른 우산에 맞은 장 아무개는 다치지 않았고, 굳이 수사 인력을 동원해 가해자(피고소인)의 신원을 특정하는 노력을 기울일 만한 사건이 아니라고, 경찰과 한 검사는 판단한 것 아닐까?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 처리한 후부터 검찰은 그 폐해로써 경찰이 고의로, 또는 실수로 잘못 처리한 민생(民生) 사건들에 대한 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여론전을 펼쳐왔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검찰이나 경찰이나 그 나물에 그 밥일 뿐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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