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주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 전에 이미 대부분의 여론조사 지표들이 여당 압승을 예고한 상태에서 마치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의 아시안 투어처럼 누가 이기는가 보다는 얼마나 이길까가 더 관심사였다. 그중에도 일부 특히 여당을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들의 관심이 주목되었던 선거가 있다. 서울특별시 광역의원 선거였다. 결과는 국민의힘 후보가 112석 중 77석을 차지해 의석수 2/3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 역시 동틀 때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던 경기도지사 개표 중에도 서울시의회 선거 결과에 더 많은 신경이 갔던 게 사실이다. 수도 서울이라는 상징성, 압도적 의석수를 가진 민주당의 정책 방해 등에 대한 비판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TBS 아니 김어준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TBS는 교통방송이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게 정치방송 아니 정권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왔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수많은 비판과 심의·제재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허위·과장·편파방송을 견지해 온 그야말로 ‘빌런 중의 빌런’이었다.

TBS는 방송이 그것도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소유·운영하는 방송이 당초 허가 목적을 벗어나 정치적으로 오·남용 아니 악용할 수 있다는 독재자 지망생들에게는 너무 좋은(?) 성공 신화를 남긴 것이다. 언론 윤리 아니 기초적인 도덕심조차 없는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은 얼마든지 방송을 통치도구화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처럼 반공익적·반민주적 교통방송은 서울시 의회가 정한 조례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니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장이 교체되어도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반대하는 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를 아는 김어준은 지난 1년 동안 도리어 바뀐 시장과 비판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편파방송 톤을 더 높이는 ‘역대급 빌런’이 되어버렸다.

선거 결과 집권 여당이 서울시 의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게 되자 모든 언론들이 TBS와 김어준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관심을 쏟아내고 있다. 당연히 지금처럼 공익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방송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 오세훈 시장 역시 선거 직후 TBS를 교통정보방송이 아니 사회교육방송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였다. 그렇지만 TBS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조급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신중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

우선 TBS가 이렇게 변질된 것은 서울시 만의 책임이 아니다. 지상파 주파수를 사용하는 교통방송은 방송법상 가장 높은 수준의 허가 절차와 심의·규제를 받는다. 그러므로 허가 목적인 교통 및 생활정보를 벗어나 보도·시사 특히 정치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은 분명 허가취소 사안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이를 방관한 방송통신위원회와 적당히 솜방망이 제재만 했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게 더 큰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 이 기구들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TBS 같은 파행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오세훈 시장이 발표한 교육매체로의 전환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교통·생활정보라는 용어를 확대·해석해 시사·정치 프로그램 편성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라디오라는 음성매체의 물리적 한계는 교육 매체로서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구나 교육정보는 교통정보처럼 우연한 접촉이 아닌 수용자들이 필요해 의해 능동적으로 접근하는 즉, 몰입도가 요구되는 콘텐츠로 라디오 매체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미 교육방송인 EBS나 OUN 역시 라디오보다 유료방송 채널과 인터넷·모바일에 치중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대명사라 하는 영국 BBC도 청소년·교육 채널의 지상파 주파수를 포기하고 온라인채널로 전환한 것도 같은 이유다.

더 큰 우려는 교육방송으로의 전환이 과연 방송의 정치도구화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바람직한 제도도 운영하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용도로 악용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TBS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5년 교통방송 출범 당시 서울시가 소유·운영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이후 어떤 시장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과 박원순 시장은 과감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교육방송으로 명칭과 목적이 바뀌어도 누군가는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 있을 가능성을 남겨놓고 있는 셈이다.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항상 합리적이고 공정한 시장만 선출된다는 보장이 없다.

이론적으로 정치와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을 정파성을 배제할 수 없는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모순이다. 그러므로 교통방송이 아니더라도 서울특별시가 어떤 방송매체든 직접 소유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공공영역 과대 성장국가’로 수십여 개가 넘는 공공·공역·공익 매체들이 난립하고 있다. 심지어 TBS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여 경기도의회도 방송설립 조례를 통과시켜놓고 있다. 자칫 공영방송을 빙자한 정치방송들이 창궐할 수도 있다. 이를 정리하는 것도 새 정부가 당면한 미디어 정책과제 중에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교통방송 문제는 주파수 반납에서부터 목적 전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의견수렴과 신중한 판단을 거쳐야 할 것이다. 굳이 방송목적을 변경한다면 지구온난화, 대기 악화, 새로운 바이러스 창궐 등에 대비하는 환경·재난·기상 관련 방송을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전체 방송환경과 시청자 수요 등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사족이지만 TBS 같은 공공기관·공기업 등이 소유·운영하는 이른바 공영 미디어들의 재정적 기반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독점·운영하는 연간 1조2천억 원이 넘는 정부광고라고 하는 점도 중요하다. TBS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 광고 수입이 모두 정부광고라는 사실을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황 근(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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