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이후 저물가, 저성장 국면이 도래할 수 있다고 진단하며 양극화 심화를 우려했다. 

이 총재는 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BOK 국제 콘퍼런스('변화하는 중앙은행의 역할: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 개회사에서 "인플레이션이 진정됐을 때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인지 아직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며 "이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진정된 뒤 선진국을 위시해 한국, 태국, 중국 등 인구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부 신흥국에서 저물가, 저성장 환경이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만약 그렇게(저물가·저성장) 된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선진국 중앙은행에 조언한 것처럼, 한국이나 여타 신흥국도 무책임할 정도로 확실하게 (완화적 통화정책을 지속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자산매입 등) 비전통적 정책수단을 활용하면 통화가치 절하 기대로 자본유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신흥국의 중앙은행은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 더욱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향후 개별 신흥국이 구조적 저성장 위험에 직면해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와 비슷한 수준의 확장적 정책을 홀로 다시 이어간다면 환율과 자본흐름, 인플레이션 기대에 미치는 함의는 사뭇 다를 것"이라며 "효과적 비전통적 정책수단은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찾기 쉽지 않으며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제시했다.  

이 총재는 또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이라는 기본 역할에만 집중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며 "디지털 혁신, 기후변화 등에 대한 대응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이를 위한 중앙은행의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계속될 것"이라며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충격과 회복이 계층·부문별로 불균등했기 때문인데, 이런 양극화 현상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더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소득 양극화와 부문 간 비대칭적 경제 충격의 문제를 과연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김진기 기자 mybeatle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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