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은 평생에 걸쳐 이 땅의 고질병이나 다름없던 전제왕정에 대항한 근대화 혁명,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민족주의 혁명,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주의 혁명 등 세 번의 혁명을 일으켜 이 땅에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입지전적인 혁명가라는 주장을 담은 책

필자는 지난 2019년 펴낸 『박정희 혁명』(1·2)이란 책에서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만 일으킨 것이 아니라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 1972년 10월 유신 등 재임기 18년 동안 세 차례 정변을 일으켜 근대화의 주춧돌을 쌓았다는 관점을 제시했다. 세 차례의 거사를 ‘정변’이라 표현한 이유는 세 사건 모두 당시 국민이나 지식인, 사회 지도층의 통념과는 반대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무력을 동원하여 반대파의 저항을 분쇄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는 공통점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만약 박정희가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3 사태에 굴복하여 한일 회담을 중단시켰다면, 그리고 10월 유신을 하지 않고 1975년에 퇴임했다면 그 후 이 나라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절차적 민주주의가 수립되었으니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었을까? 후에 김영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의 가치관을 뒤엎는 모습을 경험한 필자로서는 이런 추론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추론보다는 중화학공업 건설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나라를 지키는 데 필요한 방위산업은 출범조차 못했을 것이요,  산업화·근대화의 싹도 황당하게 잘려 나갔을 것이다. 김대중이 부르짖었던 '대중경제론'의 핵심은 시멘트와 비료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은 부르주아들 돼지처럼 살찌게 하는 사치 향락산업이니 모두 폐기해야 마땅하며, 수출은 무슨 개뿔 내주 위주로 산업구조를 통째로 바꿔 북한식 주체 체 경제로 회귀하겠다는 선언이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당시 이 나라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를 깔아뭉개고 추진한 세 차례의 사건은 정변에 해당하는 일이었으나, 그것이 강물처럼 흘러 국가 근대화를 위한 ‘혁명’을 이루어냈따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를 제시한 책이다.

이승만과 관련하여 필자의 생각과 비슷한 관점을 제시한 책이 선을 보였다. MBC 보도본부장 출신 오정환 씨의 신작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이다. 박정희는 세끼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이 땅의 민초들에게 이밥(쌀밥)과 고깃국을 배부르게 먹이고,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 살도록 해주기 위해 세 차례에 걸친 다단계 쿠데타를 몰아붙였다.

반면에 이승만은 평생에 걸쳐 이 땅의 고질병이나 다름없던 전제왕정에 대항한 근대화 혁명,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민족주의 혁명,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주의 혁명 등 세 번의 혁명을 일으켜 이 땅에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입지전적인 혁명가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이다.

이승만이 민족정기를 흐려놓았나?

사실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소위 이 땅의 먹물 지식인들 사이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다. 장준하는 이승만을 ‘희대의 협잡꾼이자 정치적 악한(惡漢)’으로 치부했고, 문인 신상초는 ‘교활하기 짝이 없는 에고이스트’로 몰아세웠다. 언론인이자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삼웅은 이승만의 죄악상이라면서 ‘분단 책임, 친일파 중용, 한국전쟁 유발과 예방 실패, 독립운동가 탄압, 헌정 유린, 정치군인 육성, 부정부패, 매관 경제, 양민 학살, 극우 반동, 언론탄압, 정치보복’ 등 무려 12가지를 제시했다.

‘언론계의 살아 있는 양심’, ‘진짜 언론인’이라는 평을 들었던 송건호는 이승만을 다음과 같이 비난한 바 있다.

‘이승만은 여러 일을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가 범한 많은 과오 중에서도 민족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외세의 국가이익 추구에 편승하여 이 나라를 분단하는 데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 때 민족을 배반한 친일 역적들을 싸고돌아 민족정기를 흐려놓은 점과 12년의 통치 기간에 이 나라를 자주 아닌 열강 예속으로 전락시켰다는 사실도 들어야 할 것이다. 이승만의 집권기간 동안 그로부터 직접 간접으로 혜택받아 영화를 누린 층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오늘 한반도가 겪고 있는 민족의 수난은 다름 아닌 이승만의 지도노선에 일단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송건호, 「이승만」 『한국현대인물사론』 한길사, 1984, 253~254쪽).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 표지.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 표지.

오정환의 저서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은 이따위 저급한 먹물들의 오염된 정신세계를 통렬하게 후려갈기는 죽비와도 같은 책이다. 이승만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부관참시당한 지 이미 오래인 세상에 한 줄기 광명과도 같은 책이 등장한 셈이다.

이 책은 ‘이승만’이라는 한 인물의 평전을 뛰어넘어 서세동점의 기운이 뻗쳐오기 시작한 시기부터 이승만의 서거하기까지 100여 년에 걸친 한국 근대사의 물줄기를 꿰뚫는다. 이승만에 관한 책들은 그 동안 여러 차례 선보였지만 그의 혁명가적 삶의 궤적이 워낙 광범위한 덕에 어느 한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거나, 지나치게 학술적이며, 혹자는 역사와 선동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를 악인으로 묘사하는 데 몰두해 왔다는 심각한 문제점과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이승만을 재평가하는 데 너무 깊이 빠져든 나머지 그를 사사로운 감정조차 없는 초인(超人)으로 우러르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숱한 시대적 역경에 맞서 나갔던 이승만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그가 무엇을 기뻐하고 아파했는지 함께 느끼려 했다고 밝히고 있다. 때문에 그가 태어난 1875년부터 서거한 1965년에 이르는 과정을 정밀 복기하는 작업은 페이지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위 벽돌 책의 공포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래도 페이지가 480쪽으로, 참을성이 현저히 부족하고 성격이 냄비 끓듯 하는 한국인의 성미로 미루어 볼 때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현대사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

하지만 저자는 이론이나 학설의 틀에 매달려 자기도 잘 모르는 내용을 현학적으로 추상화하는 데 익숙한 학자가 아니라, 사건의 핵심 본질을  도끼로 빠개듯 추적하는 저널리스트 출신이다. 때문에 박력 있는 문체로 서사적 구성을 이룸으로써 마치 한 편의 흥미진진한 오락에 빠져든 듯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스피디한 전개로 독자를 시종일관 긴장감으로 몰아넣는다.

저널리스트란 평생을 ‘새로움’을 갈구하는 직업이다. 그들이 써내는 글에 ‘something new’가 없으면, 그것은 기자라 부를 수 없다. 오정환 저자도 한 시절 날리던 저널리스트였으므로 그의 저서에는 새로 빛을 보게 된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몇 사지 예를 들어 보겠다. 

독립운동가 김좌진이 이승만에게 오로지 각하의 지도를 받겠다는 편지를 썼고, 박용만이 김성수에게 독립군 자금을 받으러 밀사를 보냈으며, 이승만이 건국 노선이 갈라진 다음에도 김구의 큰 허물을 가려주었고, 초대 내각에 들어온 진짜 독립운동가들은 반민특위법을 반대했다는 내용 등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 소개함으로써 현대사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에도 일조했다는 평을 듣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머리말에 대학 시절 종속이론 저서를 탐독했음을 실토한 것으로 보아 이 책을 쓴 저자도 한 시절 좌파적 역사 인식에 사로잡혀 이승만과 한국 현대사를 거꾸로 해석하는 데 동조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저자가 이승만을 재평가하는 책을 세상에 내놓은 이유는 이승만에 대한 잘못된 주장들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인 동시에,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이승만에 대한 참회록의 목적도 겸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책 저자 오정환 씨. MBC 보도본부장을 역임한 저자는 이승만학당 6기 수료생이다.
책 저자 오정환 씨. MBC 보도본부장을 역임한 저자는 이승만학당 6기 수료생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이승만의 일대기를 뛰어넘어 우리가 온몸으로 헤쳐 나온 근현대사 100년의 빛과 그림자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절대왕정국가에서 태어난 이승만이 어떤 의지와 집념으로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국을 세우려 했는지, 엄혹했던 식민지 시대에 지지자를 결집하여 미국의 도움을 받아 한국을 일본으로부터 분리시켜 독립을 이루어낸 독립외교의 진면목을 여과 없이 추적해 냈다.

뿐만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공산주의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와의 전면 투쟁을 선언하고, 좌우합작으로 용공 정부를 수립하려는 미·소의 압력에 저항해 가며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을 건국해낸 혁명의 소용돌이 과정을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필자가 이승만을 연구하며 불가사의하게 느낀 느낀 점은 세 가지다. 첫째, 그가 독립운동 과정에서 너무나 강대한 적들과 맞서 투쟁하면서도 단 한 번도 조국의 독립과 자유민주 체제를 바탕으로 한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목표를 포기한 적이 없는 불굴의 투혼이다. 둘째는 문제의 핵심 본질을 꿰뚫어보는 현실감각과 국제 정세의 분석에 대한 통찰력이다. 셋째는 세계 전략 하에서 자신들의 국익에 의해 움직이는 미국의 정책을 거슬러가며 주류 사회를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쟁취해 낼 수 있는 휴먼 인프라의 조직이다.

이승만의 미국 내 인맥 연구가 필요하다

이승만이 놀라운 성과를 이룬 저변에는 이 세 가지 요인이 복합 작용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이승만의 외교독립운동, 대한민국 건국, 공산 침략을 격퇴하기 위한 미군 및 유엔군 참전의 거대한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승만의 미국 내 인맥, 즉 휴먼 인프라에 대한 심층적 연구와 추적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체 카이로 선언에서 연합국 수뇌들은 무엇 때문에 수많은 식민지 상태의 나라 중에서 유독 ‘한국’ 한 나라만을 콕 찍어서 “한국인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유 독립하게 할 것을 결의”했는지, 공산군의 남침 급보를 접한 트루먼 대통령이 무슨 이유로 전광석화처럼 미 해공군 참전 및 지상군 파병을 결정했는지, 맥아더 장군은 어쩌자고 1948년 8월 15일 한국정부 수립 기념식장에서 “캘리포니아를 지키듯이 한국을 지키겠다”라고 발언했는지,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무었 때문에 미 군부가 에버레디 작전을 통해 이승만을 제거하려는 위기 상황에서 이를 물리치고 이승만이 간절히 원했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주었는지.... 그 배후에 얽힌 수많은 인맥들과 이승만의 관계를 복원해 내야만 이승만 외교의 거대한 실체가 명맹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승만의 미국 내 인맥 연구는 어느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는 전인미답의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때문에 이 연구가 대단히 시급하고 필요한 상황이다. 무려 480쪽의 거작을 방금 전에 빚어낸 저자에게 “이승만의 미국 내 인맥 연구도 그대의 몫”이라고 떠넘기기에는 너무 비정한 것 같지만, 사나이가 이왕 이승만 연구라는 칼을 빼 들었으니 하루빨리 이 작업에도 매진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한 가지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을 제기한다면 각주나 미주 등을 통해 참고문헌을 밝힘으로써 내용의 근거에 대한 출처를 밝히지 않은 점을 들고 싶다. 인용한 내용을 출처를 밝힘으로써 저자 주장의 근거를 확보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글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승만 연구에 지갑을 열어주신 고마운 분들

이 책은 ‘방일영문화재단’의 지원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에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참여하여 빛을 보게 되었다. 사실 어떤 저자가 이승만과 관련한 책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 비용을 투자를 하여 죽어라고 써내도 몇 권 안 팔리고 소멸되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 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억압한 독재자요, 6·25 때 시민을 버리고 도주한 런승만이며, 친일파를 싸고 돈 민족 반역자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된 건국 지식을 쌓지 못해 지적 저열성이 극한의 도를 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제 나라 건국사를 망나니 칼춤 추듯 아작내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니 『해방전후사의 인식』 따위는 열심히 사서 베스트 셀러를 만들어 주면서도 필부필부들에게 개인의 자유, 시장경제의 혜택을 선물한 선지자요 혁명가인 이승만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책에는 침을 뱉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시대의 흐름이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승만 관련 책을 공들여 낸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상식으로는 미친 짓을 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심의 흐름을 거슬러가며 다양한 시민들이 이승만의 진면목을 밝히려는 책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주셨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다양하다.

독자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저자 오정환의 이력이다. 서울대 법대와 한양대 대학원 행정학을 공부한 학력도 그렇거니와, MBC 보도본부장을 역임하고 좌익 건달 파쇼 전체주의 추종 세력에게 강점당한 MBC를 정상화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전력이 그의 이름 뒤에 붙는다.

그는 시대의 등불이신 이영훈 교수가 설립하고 필자도 강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이승만학당을 6기로 수료하고 현재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자문위원으로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간 이승만학당은 ‘대한민국 건국 정신의 배움터’란 슬로건 아래 이승만의 진면목을 시민사회에 전파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승만학당의 당훈이 ‘1,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다. 2,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다. 3, 우리는 자유통상과 영구평화의 세계를 지향한다. 4, 우리는 거짓을 배격하며 명리(名利)에 현혹되지 않는다’란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이란 부분은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하는 기념 연설에서 “민주정체의 요소는 개인의 자유를 극력 보호하는 것”이란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땅에 이승만학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가치를 전파하는 이승만학당에서 ‘자유인의 공화국’임을 공부하고 수료한 분들이 독자적인 연구 영역을 확보하여 이승만을 알리는 저서를 발간하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섰다는 사실. 이것이 더더욱 이 책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더 많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이승만학당에서 공부하여 자유와 개인의 가치, 자유인의 공화국의 진면목을 깨달을 때 이 땅에서 건국을 둘러싼 낯부끄럽고 협잡스런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두서없는 희망가를 상상해 본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념과 체제를 둘러싼 죽기 살기 식의 투쟁, 건국을 능멸하는 세력의 위세는 시민들이 독서와 공부를 게을리한 결과 무지의 극치가 만개한 자연발생적 현상이다. 이승만의 가치를 밝히는 책이 없어서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무지와 무식의 상태가 오히려 편하고 안전한 길이라 믿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대충대충 무지와 무식으로 무장된 군상들에겐 포퓰리즘과 전체주의, 무상과 공짜, 나의 탓이 아닌 남의 탓, 나의 땀 흘린 노력이 아니라 타인의 것을 빼앗아도 괜찮은 범법의 일탈이 선물로 제공되는 세상이니 말이다.

아무도 이 나라의 건국정신을 가르치지 않는 상황에서 그나마 남산 비빔밥집 2층을 빌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승만학당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이승만학당이 문을 닫으면 "대한민국은 자유인의 공화국"임을 외치는 진지가 영원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온갖 마음 고생을 해 가며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을 세상에 내놓은 저자 오정환 씨가 이승만학당 수료생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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