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경련 회장겸 GS그룹 명예회장/사진=연합뉴스
허창수 전경련 회장겸 GS그룹 명예회장/사진=연합뉴스

2004년 LG에서 분가한 GS그룹은 얼마전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재계순위에서 자산총액 76조8000억원으로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자산총액은 LG그룹의 절반 정도지만 계열사는 93개로 LG보다 20개나 많아 그룹 분리 이후의 활발한 사업확장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GS 창업주 허만정(許萬正. 1897~1952) 은 일제하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백정들의 해방운동인 진주 형평운동을 후원한 독립운동가이다. 또 역시 동향인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높이 평가해 삼성 창업에도 돈을 보탰으니 대한민국의 독립과 산업화에 동시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1947년 경남 진주 출신 구인회(具仁會.1907~1969) 허만정 두 사람에 의해 LG그룹이 탄생한 뒤 2004년 허씨 집안이 GS그룹으로 분리하기 까지 57년간 이루어진 두 집안의 동업은 ‘57년간의 아름다운 동행’으로 불린다.

이는 창업때부터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간의 지분을 65대 35로 고정한 뒤로 이 비율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고, 무엇보다 “경영은 구씨 집안이 맡아서 한다”는 허만정 창업주의 양보, 절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GS그룹과 LG그룹의 유대관계는 끈끈하다. GS 계열사는 지금도 LG유플러스의 전화 회선을 사용하고 GS25에서 U+알뜰모바일의 알뜰폰 요금제를 내놓는다든가 LG유플러스 멤버십 할인이 되는 식이다. GS건설도 견본주택 전시품이나, 주택 기본 옵션 가전제품은 모두 LG전자 제품으로 제공한다.

LG는 구인회 창업주 이래 2세 구자경, 3세 구본무를 거쳐 현재 구광모 회장의 4세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GS그룹은 2세 허준구 회장을 거쳐 아직 3세경영 체제다.

현재 GS그룹의 공식적인 경영은 허창수 명예회장 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의 동생인 허태수 회장이 맡고있지만 공정위가 지정한 동일인, 그룹의 대표는 여전히 허창수 명예회장이다.

허창수 회장은 ‘재계의 신사’로 불린다. 가지런한 치아, 하얀 피부, 단정한 차림, 선(善)해 보이면서도 조선시대 선비같은 외모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여기에 더해 허창수 회장은 지난 5년 동안 ‘의리와 지조의 기업인’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전경련은 지난해 2월, 정기총회에서 제38대 회장으로 허창수 회장을 다시 추대했다. 허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5연임 함으로써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기존에 갖고있던 연임 기록을 깼다. 말이 좋아 ‘추대’지 실제로는 문재인 정권이 적폐로 규정한 전경련 회장을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총대’를 맨 것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 전경련은 박근혜 전대통령과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에서 정경유착의 통로로 지목됨으로써 1961년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경련을 해체대상으로 여기면서 대통령의 재계 행사나 해외순방에도 전경련 회장을 부르지 않았다.

삼성과 현대·기아차, LG, SK 등 주요 기업들이 이런 기류를 의식, 줄줄이 전경련을 탈퇴하는 바람에 절반 까까운 직원을 구조조정 하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 쳐야만 했다.

사실, GS그룹만 생각하면 전경련 회장직이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회장은 반기업 정서에 기업활동을 옥죄는 각종 규제정책이 난무하는 문재인 정권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재계를 대변했다.

허창수 회장과 전경련은 문재인 정권이 친중(親中)노선으로 치닫던 2019년 2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미국의 전 하원 의원 초청행사를 갖고 미·중 통상갈등으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가 된 상황을 지적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 그는 “경제와 안보 모든 면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요하다”면서 “한미동맹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1인당 GDP 79달러의 작은 나라가 오늘날 3만달러 국가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소신발언을 해 주목을 끌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어려운 시기에 허창수 회장이 자신을 희생해서 회장을 맡아주지 않았으면 전경련은 이미 해체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와 GS그룹 관계자들은 선비같은 그의 품성, 지조와 책임감, 희생정신 때문에 전경련 회장이라는 ‘독배(毒盃)’를 놓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경련은 과거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있었던 재계 관계자 간담회에 가장 먼저 초청을 받았고,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행사에도 참석했다.

허창수 회장과 전경련은 문재인 정권하에서 멀어졌던 한일관계 회복에도 적극적인 역할에 나설 예정이다.

전경련은 최근 일본 최대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 3년 만에 한일재계회의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경련과 게이단렌은 1983년부터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및 악화된 한일관계의 여파로 열리지 못했다.

한일 재계회의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9월~11월 사이에 열렸지만, 올해는 7월말쯤으로 앞당겨질 예정이다. 2019년 일본에서 개최됐던 만큼 올해는 한국에서 열리게 된다. 도쿠라 회장을 비롯한 게이단렌 회장단이 방한, 윤석열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들을 면담하는 것을 계기로 재계발 한일관계 정상화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허창수 회장은 문재인 정권에서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관계의 끈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20년 9월 새 총리로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게 "과거사를 둘러싼 견해차로 한일관계가 원활하지 않고 코로나19 확산으로 상호 인적교류가 막혀 더 멀어졌지만 신임 총리 취임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2021년 10월 스가 총리의 후임으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취임했을 때도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출규제가 조속히 폐지되고 경제인 교류가 확대되길 바란다"는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재계인사 간담회에 초청받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재계인사 간담회에 초청받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사진=연합뉴스

 

현재 허창수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 전념하고 있어 GS그룹의 경영은 동생 허태수 회장이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다.

GS그룹은 GS칼텍스의 정유산업, GS건설ㆍGS네오텍, GS리테일(GS25) 등 유통과 서비스 산업을 주업종으로 하고 있다. GS칼텍스를 제외하면 내수경기에 민감한 사업구조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를 갖춘 종합상사, 쌍용(현재 GS글로벌)을 인수하는가 하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다.

특히 그룹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GS칼텍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매출과 영업이익이 기복을 보이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2018년까지만 해도 재계순위가 한화보다 한칸 위, 7위였지만 문재인 정권들어 약진한 한화에 뒤처지는 상황이다.

이에따라 허태수회장 체제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신사업 발굴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GS 또한 4세승계가 임박, 허씨 가문의 양대 축인 허창수 허태수 회장의 선친 허준구(許俊求. 1923~ 2001) 가문과 큰 아버지 허정구(許鼎九. 1911~1999) 가문간의 계열분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GS 또한 재계가 앞다퉈 뛰어들고 있는 배터리 등 첨단산업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0년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회사 GS퓨쳐스와 GS비욘드를 설립한 뒤 에너지의 디지털화, 미래형 모빌리티, 친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스타트업들을 물색하고 있다.

이와관련, 허태수회장은 지난해 9월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과 그룹 교류회를 열고 2차전지(배터리) 재활용 및 모빌리티, 수소사업 등에서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GS그룹과 포스코그룹은 배터리 재활용사업을 위해 합작법인(JV)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을 통해 배터리 재활용에 필요한 원료공급사업을 펼친다. 또 GS에너지가 투자하고 있는 ‘전기차배터리상태 진단 및 평가기술’을 바탕으로 폐배터리를 정비, 재사용하고 재활용 여부를 판단하는 등의 서비스형 배터리사업까지 협력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두 그룹은 또 수소사업 분야에서 해외프로젝트 공동참여, 신규 수요처 발굴 등 수소 생산부터 저장, 운송 및 활용에 이르는 수소 가치사슬(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GS그룹은 전기차 충전사업 등 친환경 미래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오랫동안 투자해온 미국 유전개발사업에서 손을 뗐다. GS글로벌과 GS에너지는 2012년 미국 셰일 개발업체 롱펠로의 자회사 롱펠로 네마하가 보유한 네마하 광구 지분을 인수하며 미국 자원개발사업에 진출한 바 있다.<펜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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