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칼럼]'보리스 고두노프'를 읽고
[김상규 칼럼]'보리스 고두노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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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 전 조달청장

보리스 고두노프’를 읽고 

1591년 황제의 배다른 동생인 드미트리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그 후 1598년 차르 표도르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차르의 처남인 보리스 고두노프가 황제로 등극했다.

고두노프는 표도르 황제를 도와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뛰어난 정치 감각을 지닌 재상이었다. 하지만 황제가 된 후 3년 동안 기근이 지속되어 러시아 인구의 삼분의 일이 굶어죽는 재앙이 발생했다. 역병이 뒤따랐고 민심은 이반되어 갔지만 고두노프 황제는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점성술에 빠졌고, 불만분자 색출 등 강경책을 이어나갔다. 한편 백성들은 황제의 덕이 부족해서 생긴 재앙이 아닐까 생각했다. 황태자 드미트리의 죽음과 표도르 황제의 이른 죽음, 황후 독살혐의, 공주가 과부가 된 것도 다 고두노프 탓이란 소문이 퍼졌다. 

귀족들은 황가의 혈통 없이 황제가 된 고두노프를 시기했고, 자기들이 황제에 더 적합하다며  고두노프를 축출하려고 했다. 또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등 이웃국가들은 허약해진 러시아를 공략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다.
 

참칭자의 등장은 권력쇠망의 신호

이때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 사나이가 등장했다. 참칭자는 수도원에서 도망친 일개 수도사였으나 화려한 언변으로 자신이 1591년 우글리치에서 죽었다는 태자 드미트리이며,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진짜 황제는 자신이므로 고두노프를 쫒아내고 러시아를 되찾겠다고 공약했다.

근거 없는 거짓말이었지만 도탄에 빠진 백성은 참칭자의 말을 믿고 싶어했고, 권력에 눈먼 귀족들은 기회라 생각했다. 자연히 오늘 날 선거캠프와 유사한 캠프가 꾸려졌고 가장 큰 후원자는 이웃 왕실이었다. 오늘날은 돈을 대는 자가 가장 큰 후원자이지만 당시는 군대를 제공할 수 있는 왕가의 후원이 결정적이었다. 드디어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폴란드 왕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해 들어갔다. 인기를 잃어버린 고두노프는 생각보다 맥없이 무너졌고 참칭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가짜가 가짜를 대신하는 기괴한 사회

 가짜가 가짜를 대신하는 기괴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나 그 후 정통성 없는 참칭자의 가짜 정권도 쉽게 허물어졌고 내란은 계속되었다. 오랜 전쟁과 기근으로 백성들의 삶은 생지옥이 되었는데 1613년 백성들의 염원을 담아 로마노프왕조가 세워진 이후 겨우 혼란은 종식되었다. 이 시기를 러시아의 ’대 혼란기‘로 역사는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으나 푸슈킨은 정치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를 통해 정통성 없는 권력의 위험성을 그렸다.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는 사필귀정을 설명하는 것 같다. 드미트리 왕자를 죽인 고두노프가  황제가 되었으나 신의 징벌인 기근과 역병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고, 군주가 인기를 잃어버리자 참칭자가 나타나 고두노프 왕조를 교체했다는 내용으로 신의 섭리를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좀 더 복잡했을 것 같다. 고두노프가 드미트리가 죽은지 7년후에 황위를 계승하는데 7년 뒤의 일을 미리 계산해서 왕자를 죽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였듯이, 황제가 자라나는 배다른 동생, 즉 잠재적인 정치권력을 죽였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정치권력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으니.... 고두노프는 황제의 의중에 따라 2인자에 대한 처단을 치밀하게 집행한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정치권력이 인기를 잃어버리면 순식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라 생각된다.

위기대처능력을 잃을때 권력도 잃어

  정치권력이 인기를 잃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를 잘못한 것일 텐데, 구체적으로는 위기대처능력을 상실할 때 몰락하게 되는 것 같다. 광해군의 영창대군 살해도 마찬가지다. 영창대군이 성인이 되면 광해군의 경쟁자가 될 것이고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이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는 속성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광해군은 지나치게 미래를 두려워했다.

아무 죄도 없는 영창대군을 죽인 것은 두려움의 소산이지만 명백한 잘못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때를 기다려야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선정을 베풀어 민심을 얻는 것이고 영창대군 주변에 역모자들이 모이지 않도록 해야 했다. 대동법 등 선정을 베풀었으나 단기적으로는 양반들의 불만을 샀고 친후금 정책도 반정의 명분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도 광해군이 실패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성들이 여전히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데도 무리한 궁궐공사를 벌려 민심을 이반한 것이었다. 

공무원 속죄양 분위기가 박근혜 정부 불신으로 작용

 비슷한 사례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대책도 잘못된 것이었다. 자연재해나 사고는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지도자의 역량이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정면대응하지 않고 민생경제 살리기 등으로 회피했고 공무원 퇴직후 취업불가기간을 늘리고, 김영란 법 등으로 공무원을 속죄양 만드는데 몰두했다.

공무원들의 반발도 문제였지만 김영란법으로 식당들이 대단히 힘들어져서 민심이 이반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우조선을 살리기 위해 한진해운을 재물로 삼은 정책도 실패였다. 한진해운은 바닷길을 관리하는 회사였다. ’길‘은 SOC이며 정부의 몫이다. 당연히 정부가 개입해서 살려야했다. 경영권은 빼앗더라도....이 정책으로 식자층까지도 박근혜정부를 불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일부 언론이 최순실 사건을 끄집어냈다. 마치 참칭자가 나타나 거짓 선동으로 고두노프정권을 무너뜨렷듯이 “박근혜는 바보이고 실제 통치는 최순실이 했다”는 거짓 소문이 퍼뜨려졌다. 여기에는 여당도 야당도 다 한 패가 되었고 모든 불만세력이 규합되었다. 그 동안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던 때문인지 박근혜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한순간에 정치권력이 허물어졌다.

작은 생선 삶듯 신중하게 국정운영해야

SNS가 발달하고 소문이 퍼뜨려지기 쉬워 선동이 쉽게 이루어지는 시대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이 들어섰으나 여소야대의 국회 등 어려운 환경이다. 대국을 다스릴 땐 작은 생선을 삶듯 조심해야한다(治大國 若烹小鮮)는 말처럼 신중하게 국정을 운영해야한다. 조금만 잘못하면 참칭자가 나타나는 세상이다. 

어쭙잖게 지난 정부를 모방하려하면 안 되고 처음에는 인색하고 나중에 풀어주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했으면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그랬지만 처음 언론의 찬사에 도취되어 이미지 정치에 경도되었다가는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尹정부,여유부릴 시간이 없다

한 가지 조언을 한다면 문재인 정부는 세금을 많이 걷고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해서 인기를 잃었다. 따라서 재정을 알뜰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오고 있어 이자율을 올리고 가계부채 대책도 세워야 한다. 돈 쓸 일은 많은데  지나치게 올라간 종부세 법인세 등 세금을 깍아줘야 한다. 여유부릴 겨를이 없다. 계속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책적 실수를 하지 않고 국정을 잘 운영해 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김상규 전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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