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거둔 최대 성과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결정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한미한보동맹이 경제안보동맹으로 격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함께 방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함께 방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한미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의 원칙에 기초해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공동 성명은 나아가 "디지털경제, 회복력 있는 공급망, 청정에너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촉진 등 우선적 현안에 대한 경제적 관여를 심화시킬 포괄적인 IPEF를 발전시키는 데 함께하기로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한미정상이 합의한 IPEF는 ‘반중국 경제안보 플랫폼’...인민일보 인터넷판, “한국인 미국 편들면 한국 이익에 심각한 손상 입힐 수도”

IPEF는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안보 플랫폼으로 불린다. ‘반중국 경제안보동맹’이라는 개념이 부각돼 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공동성명에서 IPEF와 관련해 "공동의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에 맞게 기술을 개발, 사용, 발전시킬 것을 약속했다"고 언급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국가 간 기술·통상 협력을 거론하면서 '민주주의 원칙'과 '보편적 가치'라는 단서를 넣은 것이다. 이는 공산당 독재국가인 중국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시사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공식 반응은 없지만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 특히 IPEF참여 합의에 대해 맹비난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해외 인터넷판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미국이 대중 압박에 한국을 끌어들인 것”이라면서 “ 미국이 주도하는 IPEF는 말로만 개방을 지향할 뿐 사실상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 매체는 “한국과 중국은 이웃 국가이고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기 때문에 한미관계에 종속되면 안 된다”면서 “한국이 미국 편을 든다면 미국의 국익에는 맞겠지만 한국의 이익에는 심각한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 매체인 중국 신문망은 “IPEF는 관세 인하를 검토하고 있지 않아 미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려는 아태 국가들에게 좋지 않다”라고 지적하고, 관영 신화통신 국제판도 “미국 주도의 IPEF가 중국 주도로 만들어진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 비해 아시아국가들에 가져다주는 이익이 적을 것”이라고 언급하는 등 미중대립구도를 부각시켰다.

지난해 10월 제안된 IPEF의 세부적 내용은 아직 몰라...초기 참여하는 윤석열 정부의 주도권 기대감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0월에 처음으로 제안했던 IPEF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백악관이 지난 2월 11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면서 첨부 문서에 IPEF를 51개 단어로 설명한 게 전부이다. 이에 따르면 IPEF는 △노동·환경 기준을 준수하는 무역 △디지털 경제·데이터 유통에 대한 규제 △안전한 공급망 △탈탄소 클린 에너지 공동 투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매슈 굿맷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은 “IPEF는 CPTPP(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동반자협정) 등을 대체하는 거대한 무역협정의 개념이 아니라 더 큰 포괄적인 범주의 경제안보 틀을 짜려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한국이 IPEF에 초기에 들어와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동조해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 같은 미국측의 손짓에 화답했다.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IPEF 초기 단계에 참여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 구상을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실천한 것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한국이 향후 IPEF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바이든 구상의 핵심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과 중국 누르기

IPEF의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IPEF를 통해 달성하려는 최대 전략적 목표는 ‘미국과 동맹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구축’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우려도 이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과 앤드루 헤럽 주한 미국대사관 부대사(공관 차석)는 3월 말 매일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IPEF의 핵심 주제는 공급망이다”면서 “한미 양국은 공급망과 관련해 긴밀히 협력 중이며, 기업(민간)은 공급망의 품목을 생산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헤럽 부대사에 따르면,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이 한미 양국의 공급망 협력 우수 사례이다. 그는 "램리서치,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최근 해당 분야에서 양국 기업의 쌍방향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특히 한미가 협업해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는 상호호혜적 파트너십이 더욱 기대되는 부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의 방한은 ‘IPEF 행보’...재계총수 면담에 주력하고, 100억 달러 쏘는 정의선에겐 두 손 모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약 6조3천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손을 단정하게 모으고 정 회장의 연설을 지켜봐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2일 오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약 6조3천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두 손을 단정하게 모으고 정 회장의 연설을 지켜봐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진=연합뉴스]

실제로 IPEF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글로벌 경제를 재편하겠다는 바이든 구상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방한기간(20일~22일) 중 재계총수들과 집중적으로 면담한 것은 미국 중심 공급망 구축이라는 IPEF 구상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기존의 텍사스 오스틴 공장 이외에 170억 달러(약 20조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현대차가 6조3000억원 규모의 전기차 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미국의 조지아주에는 이미 SK이노베이션이 5조 6000억원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2일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한 자리에서 “미국에 2025년까지 로보틱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50억달러(약 6조3천억원)를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공장 및 배터리셀 공장을 신설하는 데 투자하기로 한 50억 달러를 합치면 현대차그룹의 대미 신규투자 규모는 총 100억 달러에 달한다.

정 회장이 이처럼 획기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모습을, 바이든 대통령은 두 손을 단정하게 모으고 지켜봤다. 두 손을 모은 바이든의 태도에서 IPEF에 대한 그의 확신과 집념을 재확인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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