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자율성으로 둔갑해버린 이념 편향적 ‘계기(契機)교육’을 걱정한다
‘교육 중립성 확보를 목적’으로 박근혜정부에서 시행한 계기교육 기준 2018년 폐지
‘기존’ 계기교육 지침은 통제적인 성격이 강했다?
어긋난 형평성, ‘세월호’는 ‘공문’으로, ‘서해수호의 날’은 ‘게시글’로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학교현장에는 ‘계기교육’이라는 것이 있다. 교육부의 고시에 따르면 ‘계기(契機)교육이란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았던 특정 주제에 대하여 교육할 필요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교육을 총칭하여 사용하는 명칭’이라 되어 있다. 즉 6.25 기념일엔 6.25에 대해, 제헌절엔 법제정에 대한 의미에 대해, 그리고 총선이나 대선 즈음엔 대의정치와 민주정치에 대해 교육하는 것 등을 말한다. 그러한 계기 교육의 지침 덕에 시의적절한 시사적 현안을 적절히 교육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다.

● 계기교육실시 시 꼭 유념해야할 ‘교육의 중립성’

2016년 교육부는 ‘헌법 및 교육기본법에 근거한 교육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과정의 정상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 각 시도교육청 별 계기교육 지침을 마련하고, 초․중등학교교육과정에 명시되어 있는 계기교육의 목적과 절차에 충실하도록 할 것을 강조하였다.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2013-7호(2013.12.18.))에도 학교에서는 교육과정에 제시되지 않은 사회 현안에 대해 학생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계기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명시되어 있다. 단, 계기교육을 실시할 때에는 학년 및 교과협의회 등을 통해 작성한 교수․학습과정안 및 학습자료에 대하여 학교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실시하도록 교육과정 해설서에서 정하고 있다. 이하 세부적 지침으로 ‘교육의 중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있는 계기교육 및 부교재 활용’ 등에 관해 각 시도교육청에서 계기 교육 지침을 정비한 후, 2016년 4월 중 각 급 학교에서 시행하도록 하여 학교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도록 한 것이다.

교육부에서 재차 삼차 계기교육의 중립성에 무게를 둔 이유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가치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이 편향된 시각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육의 중립성’ 확보에 만전을 기하라는 교육부의 지침은 교육이 교육으로서 가치를 가지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판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러한 2016년부터 학교현장에서 잘 지켜지던 계기 교육 지침은 2017년 12월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정한 ‘교육자치 정책 로드맵’에 따라 사라지고 말았다.

● ‘통제적 성격’을 내세워 사라진 계기교육 지침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2017년 12월 12일 정한 ‘교육자치 정책 로드맵’에 따라 시도교육청이 1단계 우선 정비 과제 가운데 하나로 ‘각종 계기교육 지침 폐지’를 명시했다. 광주교육청은 2018년 3월 곧바로 계기교육 지침을 폐지했다.

박근혜정부 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념 편향적 교육은 ‘교육의 중립성 확보’라는 이유로 일선 학교에 계기교육 지침이 강조되었었다. 그 당시의 지침은 사회적, 정치적 현안 문제를 다루는 계기교육을 할 경우, 학교 교육과정위원회 또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구체적인 실시 방향을 설정하도록 했었다. 예를 들어 황사에 대비한 환경교육은 적합한 사례이고, 전교조 법외 노조 반대와 한국사 교과서 부당 검정 등은 부적합한 사례로 제시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교육은 지침에 따르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2018년 3월 광주교육청은 관내 전체 학교에 공문을 보내 ‘계기교육 지침이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학교 민주주의 실현과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과 책무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는 배경과 함께. 광주교육청은 초등학교 교육과정과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계기교육에 관한 사항에서 ‘계기수업을 실시할 경우, 계기교육에 따른다’는 문구를 ‘국가·사회적 차원에서 지도의 방향을 신중히 검토한 다음 학교장의 책임 아래에 실시한다.’로 바꾸어 학교가 자율적으로 방식 등을 정하여 학교장의 재량에 따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광주시교육청 관계자는 “기존 계기교육 지침은 통제적인 성격이 강했다”며 “학교 민주주의 실현과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계기교육 지침을 폐지했다”고 말했다. ‘통제적 성격’이 강했던 계기교육 지침을 학교 자율성을 위해 폐지하겠다는 선언이 달갑지 만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일체의 계기교육이 교육부나 교육청 단위로 전달될 경우, 형평성 있게 다루어져야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불편함은 필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 ‘업무경감’을 위한 ‘공문 줄이기’는 ‘서해의 날’ 공문에만 적용?

교육청에서 일선학교에 전달하는 ‘공문’은 두 가지 형태로 주어진다. 학급학교를 지정하여 수신을 명기하여 내려 보내는, 말 그대로의 ‘공문’이 있고 ‘공문 게시’라고 하여 공지사항처럼 관심 있는 각급 학교 담당자가 자의에 의해 확인을 해야만 하는 공문이 그것이다. 일일이 수신자를 지정하는 경우 의무사항이든 협조사항이든 담당자가 지정되고 공문을 반드시 수령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게시공문은 공지사항과 유사하다. 관심 있는 사람만이 열람할 뿐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뒤져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해마다 ‘서해수호의 날’ 홍보를 위한 공문이 각급 학교로 배포되었었다. 올해로 제3회를 맞는 ‘서해수호의 날’. 그런데 올해 그간 지방보훈청이 보내오던 공문이 보이지 않았다. 지방보훈청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혹시 외압(?)이 있거나 담당자의 실수나 판단착오였는지 확인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지방보훈청에 전화를 걸어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보훈청 담당자도 교육청에 따져 물었다고 했다. 왜 해마다 각급학교에 공문으로 발송하던 것을 ‘게시공문’으로 바꾸었느냐고. 그랬더니 교육청의 담당 장학사로부터 들은 답변은 ‘교사들의 업무경감을 위해 공문 줄이기 일환 때문에 “게시글” 형태로 발송했다’는 것이었다. 뒤져보니 게시공문 안에 와 있기는 했다.

(좌)지방보훈청이 직접 발송한 '서해 수호의 날' 공문. 게시공문 형태로 공지됨.
(우)시교육청이 발송한 세월호 공문.각급 학교로 일괄 발송됨.

그러나 ‘세월호 추모’를 위한 공문은?
게시 글이 아니라 수신처가 명기된 “공문”으로 전달되어있었다.
업무경감은 ‘선택적’으로 필요한 모양이다.

게다가 지방보훈청의 ‘서해수호의 날’ 공문은 발송처가 발송하는 형태였으나, ‘세월호 추모’ 공문은 생성한 곳이 시교육청이었고, ‘각급 학교에 일괄 발송한다.’는 내용이 공문에 포함되어 있었다. 공문을 수령하는 일선학교에서 두 개의 공문을 받아들이는 무게감(?)은 어떨 것이며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또 어떨 것인가. 나라사랑을 강조하는 ‘서해수호의 날’과 ‘세월호 추모’가 다르게 취급되고 있다는 이 사실을 일선학교 교사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백번 양보해 ‘서해수호의 날’도 ‘세월호 추모’도 계기교육 대상이라 해야 한다면, 이런 상황을 두고 형평성을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누가 좀 명쾌한 설명을 들려주면 좋겠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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