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결론부터 말하지요. 당신은 희대의 독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독재자라는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구요? 아마 인정하기 싫겠지요. 어쩌면 독재자라는 개념 자체를 모를지도요. 한국의 어느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시구를 남겼지요. 지난 5년간 당신을 '위원장'으로 또 당신의 아내를 '여사'로 존대하며 꼬박꼬박 불러주었을 때 당신들은 진짜 그런 인물인 듯 행세했겠지요? 평화쇼로 눈 가리고 독재자를 마치 평화의 전도사인 양 미화한 우리 정부의 책임도 있으니 억울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지금 당신이 독재자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절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수많은 북한 주민이 고통 가운데 있으니까요.

지난 4월 25일 심야에 개최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110돌 열병식>을 보며 당신의 존재를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주석단에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며 쌍엄지를 치켜든 당신이었지요. 화성포 17형이라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입장하는 순간 당신은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당신이 입고 나온 하얀색 ‘원수복’은 또 어떠했습니까? 6.25 전쟁이 휴전을 맺던 바로 1953년 7월 27일로 거슬러 가볼까요. 당신들은 그 날을 미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며 전승절로 기념하지요. 아무리 역사를 왜곡, 날조해도 그렇지 너무하다고 생각지 않는지요.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점철된 남침을 감행해 놓고선 그 책임을 ‘미제국주의와 남조선 괴뢰도당’에 전가하니 말입니다. 그리고는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요. 7월 27일을 전승절이라는 명절로 지정까지 했으니 그 뻔뻔함에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전쟁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 당시 김일성이 입었던 원수복을 자랑하며 다시 전쟁의 결의를 다지면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김정은(왼쪽)이 지난 4월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년 기념 열병식에 흰색 원수복을 입고 등장해 병력을 사열하고 있다. 흰색 원수복은 김일성 주석(오른쪽)이 1953년 7월 6·25전쟁 휴전협정 직후 평양에서 전승 열병식을 열었을 때 처음 입고 나타나 최고통수권자의 권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으로 주민들 뇌리에 남았다. 이에 북한이 김정은을 김일성과 동일시하며 우상화 수위를 한층 높인 것으로 해석된다(연합뉴스). 

열병식을 지켜보며 당신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런 당신을 지켜보는 우리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시렸습니다. 21세기에 대체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지 분하기도 했지요. 그러면서도 김일성의 후광에 기대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는 당신이 가엾게도 느껴졌습니다. 당신의 존재의 이유라고 해야할까요? 처음으로 ‘원수복’을 입고 나온 당신을 향해, 마치 ‘전승광장에 선 김일성 장군님을 뵙는 것 같다’라며 선전했지요.

5월 3일 자 로동신문의 내용은 더욱 억이 찼습니다. “원수복을 입으신 천출명장의 거룩하신 모습으로 전세계 앞에 사상초유의 조선의 힘을 선언하시고 공화국정예무력을 사열하신 우리의 김정은장군”이라 표현되어 있더군요. 심지어 “전세계가 시선을 모으고 전례 없는 관심 속에 보고 또 보았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당신의 잔인한 병정놀이를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우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 자리에 동원된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불쌍하게 보이지는 않던가요? 수개월 동안 기계의 한 부속품처럼 자신을 내던지고 열병식을 준비해야 했던 그 가련한 청춘들의 짓밟힌 꿈은 보이지 않던가요?

당신은 ‘리틀 김일성’으로 인식됩니다. 김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김일성의 권위를 빌려야만 그나마 존재할 수 있는건가요? 설마 매일 밤, 거울 앞에서 김일성의 걸음걸이와 몸동작을 연습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마치 모델처럼 김일성이 입었던 옷을 걸치기 위해 몸무게까지 조절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김일성의 말투를 배우기 위해 김일성의 육성을 밤낮으로 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니가 있다는 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니가 있어 살 수 있는거야”라는 한국의 대중가요 가사처럼 존재의 이유를 묻고 싶어지는군요. 당신도 설마 조국을 더럽힌 ‘아빠찬스’를 쓰고 있나요?

통렬하고 애통한 심정으로 당신께 꼭 한마디 건네고 싶습니다. 이제 그만 세상을 직시하는 게 어떨런지요. 설마 당신이 정말 무오류의 전지전능한 존재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요? 당신의 선택 하나에 따라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70여 년 전 전쟁의 참혹한 아픔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분단의 고통으로 매일밤 눈물 짓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제나저제나 두고 온 고향 땅 한번 밟아보는 것이 죽기전 소원이라는 실향민들의 절규가 들리지 않습니까. 또다시 원수복을 입고 전쟁준비에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총칼을 버리고 다 같이 살길을 도모하는 건 어떨런지요.

특별히 오늘(5월 3일) 신정부의 110대 국정과제가 발표되었습니다. 당신도 이미 보고를 받았겠지요. 이 나라에 워낙 간첩이 많으니 그 정도 내용쯤이야 어쩌면 저보다 먼저 봤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뒤늦게 언론 보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을 연구하며 통일의 길을 만들어 가는 저에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남북관계 부분이었습니다. ▶북한 비핵화 추진 ▶남북관계 정상화,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준비 ▶남북간 인도적 문제 해결 도모 등을 제시했지요.

비핵화의 길은 당연히 당신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일 것입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며 더욱 핵무기에 목숨을 맡길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건 당신의 비핵화에 대한 과감한 결단과 선택이 당신은 물론 모두를 살린다는 점입니다. 그만 총칼을 내려놓읍시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 평화의 땅을 일구어 가십시다. 그것만이 지금 당신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시인은 다시 말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라구요. ‘진정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선택한 김정은 위원장’으로 불러주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로 와 꽃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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