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황우섭 객원 칼럼니스트

왜 미디어 공정성 원칙이 필요한가? 민주주의를 지탱하게 하는 초석은 건강한 사회적 소통이다. 건강한 사회적 소통은 미디어 공정성이 전제되어야 성립한다. 우리 사회는 질적 성숙을 위해 높은 수준의 사회적 소통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디어의 공정성 결여는 사회적 소통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제되지 아니한 표현이 그대로 노출되고, 소위 ‘가짜뉴스’라는 허위사실이 난무하고, 진영 논리의 적대적 정치 양상까지 발현되고 있고, 미디어 공정성을 정치적 잣대로 판단하면서 공정성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우리의 미디어 공정성 갈등은 미디어 영역을 넘어 사회 체제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소통의 기본 원칙, 절차, 책임에 대한 소통규범을 재설정해야 할 시점이다. 지난 3월 2일 필자가 상임대표로 있는 미디어연대 토론회에서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의미 있는 제안이 있었다. 미디어연대 고문인 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가 판결의 바탕을 철학적 논증에 두고, 미디어 관련 분쟁을 총괄하는 독자적인 가칭 ‘미디어공정재판소(MFC: Media Fairness Court)’ 설립을 제안한 것이다. 필자는 미디어 공정성에 대한 적절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미디어공정재판소가 미디어 공정성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사법적 재판기능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미디어 수준을 높게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미디어 공정성 판단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 필요

현재 미디어 공정성에 대한 문제는 1차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가 담당하고, 이 기관의 결정에 대해 불복이 있는 청구인은 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여야 정당이 6:3으로 방송통신위원을 추천하여 많은 공정성 문제가 정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이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조정ㆍ중재를 통해 언론보도로 인한 분쟁을 실효성 있게 구제하기 위한 준사법기구이다. 필자도 미디어에 보도된 기사와 관련하여 몇 차례에 걸쳐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ㆍ반론보도를 구하는 중재신청을 하여 분쟁을 해결한 바 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신청된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와 법률관계를 설명ㆍ조언하거나 절충안을 제시하는 등 당사자간 원만하게 분쟁해결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데 치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공정성 문제를 노사 단체협약 등에 바탕을 두고 종사자들의 정치적 타협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KBS의 경우도 노사 동수의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이슈가 된 공정성 문제를 다룬다. 정치적 경향성을 띄고 있는 공영방송 노조와 사측이 공정성 문제를 노사합의로 해결하는 방식은 방송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는 궁극적인 방안이 되지 못한다. 방송 공정성은 저널리즘 원칙을 온전히 실천할 때 달성할 수 있는 가치이다. 필자는 KBS 이사 시절 경영평가 시 “공정성 문제를 공정방송위원회에서 노사간 합의라는 비인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저널리즘 원칙에 입각하여 공정성을 체계적으로 고양할 수 있도록 재설계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법원에서 공정성 문제를 다룬 사건들도 한계를 보여주기는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방송 공정성을 근로조건’이라고 판결한 사례이다. 유의선 교수는 “방송 공정성 문제를 단체협약으로 해결하겠다는 접근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보조적 수단은 될지언정 인과 관계에 기초한 방송 공정성 확보수단은 되지 못한다”고 주장했고, 여러 학자들도 이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진영논리와 정치논리에 따라 공정성 문제를 판단해서는 미디어 공정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마땅한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철학적 논증을 원용하는 ‘미디어공정재판소’ 운영 방향

‘미디어공정재판소’는 미디어 관련 분쟁을 총괄하는 독자적인 기구이다. 최창섭 교수는 “미디어공정재판소는 법학회ㆍ법조계, 철학회, 언론학회 등의 전문가로 구성하고, 공정성 심의 시 미디어의 존재이유를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특성인 윤리ㆍ도덕성(ethicsㆍmorality)을 구심점으로 삼고, 분석틀로서 수사학(retoric)의 Ethos(송신자의 관점), Pathos(수용자의 관점), Logos(메시지 내용적 관점)에 판결 근거의 바탕을 제공해주면서 최종 판결의 근거는 논리학(logic)에 둘 것”을 제안했다. 저널리즘의 공정성과 직결되는 수사학과 논리학 원리를 공정성 판단에 원용하는 것이다. 철학적 수사학이 제공하고 있는 잣대 적용을 통한 저널리즘 공정성 확립, 논리학이 제공하고 있는 각급 논증에 대한 평가 잣대를 미디어공정재판소에서 적용하는 방안이다.

필자는 현재 운영 중인 언론중재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나름대로 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두 기구에서 해결하지 못한 미디어 관련 분쟁을 일반 법원에서 판단하게 함으로써 한계점이 드러났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한 미디어 관련 분쟁을 미디어공정재판소를 통해서 심층적으로 해결하자는 제안이다. 다만, 미디어공정재판소 결정에 불복할 경우 표현의 자유는 궁극적으로 헌법적 가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미디어 관련 분쟁에 대한 최종 심급은 헌법재판소로 하는 방안이 있다. 법학회ㆍ법조계, 철학회, 언론학회 등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미디어공정재판소는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가치론, 의미론, 수사학 등의 언론 역할에 대한 철학적 조망을 거쳐 미디어 분쟁을 해결하면서 축적된 지식은 ‘저널리즘 공정성’을 체계적으로 제고할 것으로 본다.

미디어 공정성 파쟁 해결,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언론을 공기(公器)로 인정하고, 언론인에게 언론의 자유와 함께 사회적 책임도 부여했다. 그래서 언론인은 여타 직업과 달리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사회적 봉사자로서 책무가 있다. 미디어는 자유로운 공론장에서 가장 뜨겁고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도발적이며 창의적인 사고들이 자유롭게 생동하고 표출될 수 있어야 한다. 공정성 원칙은 사회적 소통을 최고의 수준에 이르게 하고, 언론인에게는 언론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최고의 원칙이 된다.

윤석민 교수는 “공정성 원칙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으로 간주되거나 금기시되는 사안을 정당한 논쟁 대상으로 만들고, 이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며, 이러한 시도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지켜줌으로써 표현의 자유에 비례해 강화되며, 표현의 자유를 지켜주고 확장시켜주는 제도적 수단이 된다”고 주장하고, “우리 미디어가 공정성을 고양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것은 도식적인 공익성 준수가 아니라 적극적인 공익성 실천을 위해 한계를 타파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달 28일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원회 과학기술분과위원회 박성중 간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미디어의 공정성ㆍ공공성 확립과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정책방향’을 설명했다. 새 정부가 미디어 공정성을 국정과제로 삼고, ‘미디어혁신위원회’를 설치하여 미디어 진흥을 위한 제도정비와 함께 새롭게 수립할 미디어 공정성 정책을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미디어 공정성 파쟁을 해결한다는 것은 미디어의 신뢰를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우섭 객원칼럼니스트 (미디어연대 상임대표, 전 KBS 이사, mirifica@naver.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