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육영수 이미지와 스타일 뛰어넘을만한 영부인 과연 있을까 싶다
역대 어느 영부인도 김정숙처럼 과한 액세서리 즐겼던 모습 보인 적 없었어

오세라비 객원 칼럼니스트
오세라비 객원 칼럼니스트

육영수 여사의 격조 높은 패션 아우라

때는 1974년 8월15일 광복절이었다. 육영수 여사가 갑작스레 서거한 날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가족들이 모여 TV로 광복절 기념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1963∼1979년 재임)이 경축사를 하던 중이었다. 그때 탕 탕 탕 소리가 몇 차례 났었고, 의자에 앉아있던 육 여사의 고개가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당시 컬러TV 방송이 도입되기 전인 흑백TV 시절로, 육 여사의 피격 장면이 고스란히 방송되었다. 범인 문세광의 총에 피격된 그 순간, 흑백TV로 비춰진 육 여사의 의상은 흰색 한복이었다. 서거하는 순간까지도 육 여사의 한복 자태는 참으로 고고한 자세였고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필자는 육 여사의 영부인 시절 의상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보통 여성의 신장보다 훌쩍 키가 큰데다 목이 길고 호리호리한 몸매는 우리나라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으면 실루엣이 돋보였다. 육 여사의 한복 패션은 화려하거나 번쩍이는 디자인이 아닌 전통 복식에 충실했다. 물론 당시만하더라도 한복은 고전적인 복식에 충실했다. 흑백TV시대가 끝나고 1980년 12월부터 컬러TV가 도입된 이후 방송 자료 화면으로 확인된 육 여사의 한복 색채는 은은한 황금색, 미색, 옥색을 주로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단언컨대 건국 이래 역대 정부의 어떤 영부인 한복 차림도 육 여사가 지닌 아우라를 뛰어넘지 못했다. 요즘 말로하면 ‘넘사벽’ 수준이다. 특히 육 여사의 얼굴형과 잘 어울리는 올림머리 헤어스타일은 한복과 조화를 이뤄 고아한 품격을 자아냈다. 외국을 방문할 때도 육 여사의 한복 스타일은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아름다운 자태였다.

육 여사는 가끔 양장을 입은 모습도 TV에 비췄는데 체형이 좋아 양장도 아주 잘 어울렸다. 지금도 기억하는 양장 차림새는, 흰색 바탕에 검정색 도트 무늬 플레어 원피스로 우아하고 여성스러웠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는 우리가 일명 ‘땡땡이’라 부르는 물방울무늬가 크게 유행을 했던 시절로, 육 여사의 원피스 의상과 비슷한 스타일의 옷이 여성들 사이에 크게 인기를 끌었다. 육 여사는 한복 뿐 아니라 양장 스타일도 빼어나게 세련미를 갖춘 영부인이었다. 그렇다고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거나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영원한 영부인의 이미지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육 여사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뛰어넘을만한 영부인이 과연 있을까 싶다.

역대 영부인 의상 유형

역대 영부인들은 공식 행사나 외국 방문을 위한 국제적인 자리에서 우리나라 전통 복식인 한복을 의례적으로 입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1948∼1960년 재임)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스트리아인임에도 늘 한복을 입었던 모습으로 남아있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한복도 전통적인 디자인에 은은하고 수수한 색채가 주를 이뤄 화려한 차림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별세 후 입관 때도 한복 착용을 생전에 원했다고 한다.

전두환 대통령(1980∼1988년 재임)의 부인 이순자 여사 의상 스타일은 막 도입된 컬러TV 시대로 말미암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80년대 초는 패션 스타일의 급격한 변화가 시작돼 종전의 고전적인 의상과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다. 이 여사의 한복은 은박과 은사. 금사로 수놓인 화려한 당의 차림의 공식 예복을 즐겨 입었다. 이 여사의 양장 스타일도 당대 유행의 영향을 받았다. 80년대 들어 이른바 유니섹스(uni-sex)패션이 도래하자 중성적인 패션 스타일로 일대 변화가 왔던 시기다. 노태우 대통령(1988∼1993년 재임) 부인 김옥숙 여사는 육영수 여사의 한복 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듯 단아한 멋을 선호했다. 뒤를 이어 집권한 김영삼 대통령(1993∼1998년 재임) 부인 손명순 여사는 조용한 내조형이라 한복, 양장 패션이 튀지 않은 쪽이었다.

김대중 대통령(1998∼2003년 재임) 부인 이희호 여사는 공식 석상에 한복이 아닌 클래식한 정장을 주로 입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체형이 한복보다는 양장이 맞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2003∼2008년 재임) 부인 권양숙 여사는 평소 수수한 차림이지만 공식 자리에서는 한복보다는 가끔 강렬한 원색 정장 차림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명박 대통령(2008~2013)부인 김윤옥 여사는 한복이나 양장을 골고루 입었지만 특징이 있는 스타일로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다.

위 사례를 통해 역대 영부인들의 복식 유형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한복이든 양장이든 유행의 변화가 잦았고, 한복을 만드는 섬유산업도 70년대 말부터 크게 발달하여 고급화된 시기다. 그럼에도 육영수 여사만큼 기품 있게 한복이 잘 어울리고 실루엣이 아름다운 영부인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외교 무대에서도 우리나라 한복의 맵시를 알리는데 많은 역할을 한 영부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호사스러운 의상, 그리고 옷값

오는 5월 9일 퇴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옷값이 크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영부인 중 공식 행사에서 튀는 의상과 각양각색의 현란한 스타일로 인식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부인으로서 김 여사의 의복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5년 임기 내내 지나치게 유행을 좇는 호사스러운 의상이었다 할 수 있다. 특히, 명품 패션 브랜드의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선보인 의상을 김 여사도 동일한 옷을 여러 차례 입었다.

김 여사의 해외 순방이나 국제행사용 의상을 보면 복식 문화로 외교의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의지가 지나칠 정도로 굳건한 듯하다. 의상 뿐 아니라 장신구, 핸드백에도 공을 많이 들여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시 총 51개국 순방을 하며,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김 여사의 의상 또한 때와 장소에 맞춰 늘 변화무쌍한 패션이었다. 한 눈에 봐도 고가의 명품 양장 패션과, 한복은 전통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가미한 스타일이었다. 또 한복 섬유 소재의 다양함을 살리고 큼지막한 노리개 장식으로 매치한 것이 특징이다. 김 여사의 전체적인 한복 맵시는 자연스러운 한복의 곡선미를 살리기에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앞서 살펴본 육영수 여사를 포함한 역대 영부인들의 의상은 본인만의 스타일과 선호하는 패션이 대부분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부인 중 한 인물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패션 특성도 같이 겹친다. 하지만 김 여사의 의상들은 해외순방 때마다 변화가 잦았고 과도한 액세서리 사용은 사치스러운 영부인의 이미지를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을 눈앞에 둔 김 여사에 대한 인상은 수 백 벌에 달하는 화려한 의상과 값비싼 보석류로 치장한 모습으로 각인되었다. 역대 어느 영부인도 김 여사처럼 과한 액세서리를 즐겼던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더구나 문 정부 집권 동안, 2019년 12월 말경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 확산이 현재까지 3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국민들은 경제적, 사회적 활동에 큰 타격을 입었고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 문화예술계는 일거리가 사라진 채 고통의 연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김 여사의 화려한 의상 퍼레이드는 임기 내내 계속되었다. 물론 해외순방 기록이 역대 최고이다 보니 공식행사에 입어야할 의상이 많아 언론에 비춰질 때마다, 한편으로는 옷값을 포함한 의전 비용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다보니 급기야 시민단체 한국납세자연맹은 지난 2월에 ‘청와대 특수활동비 집행내역과 김정숙 여사 옷값 공개’라는 성명서를 냈다. 김정숙 여사의 의상·액세서리·구두 등 품위 유지를 위한 의전비용과 관련된 정부의 예산편성 금액 및 지출 실적 공개 요구는 일파만파 번졌다. 청와대는 “임기 중 의류 구입 목적으로 특활비 등 국가예산 사용한 적이 없고 사비로 부담했다”고 발표하며, 김 여사가 옷을 구입하며 사비로 얼마를 썼는지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김 여사의 옷값이 공개될지, 또 다른 의혹이 불거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 정부 임기 5년 동안 김 여사가 입었던 수 백 벌의 의상은 모두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옷값 공개 여부를 떠나 판단과 평가는 국민들의 몫이다. 럭셔리를 추구했을지는 몰라도, 결코 럭셔리하지 못한 패션의 특성을 남겼으니까 말이다.

오세라비 객원 칼럼니스트 (작가, 미래대안행동 공동대표, 성차별교육폐지시민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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