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김어준에 속수무책인 것은 TBS정관의 알박기 때문

작년 4.7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으로 대표되는 교통방송 TBS의 편향성 문제였다.

“민주당에 불리한 이슈에는 ‘해명방송’으로, 국민의힘을 공격하는 이슈에는 ‘네거티브 특집방송’으로 쓰이는 이런 편향적인 방송에, 1년에 300억원이 넘는 서울시민의 세금이 지원되는 것이 옳으냐며 여론이 들끓었다.

더군다나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생태탕 사장 등과 ‘아님말고’식 전화 인터뷰를 6차례나 보도하면서, 오세훈 시장의 당선을 막으려는 노골적인 편향성을 보였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이후에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하지만 오 시장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의 이강택 TBS 대표는 여전히 건재하며, 김어준씨는 이번 대선에서도 ‘생태탕 시즌2’인 ‘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오 시장이 김어준의 자리를 보장하는 대신 김어준도 오 시장에게 도움을 주기로 밀약을 했다.”는 황당한 음모론까지 유튜브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우파 시민들의 좌절감이 컸다는 反證일 것이다.

오세훈 시장이 속수무책이었던 이유는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와 ‘TBS 정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원순 前 시장 시절인 2019년 7월에 제정되어 2020년 2월부터 시행된 이 조례는, 혹시 서울시장이 바뀌더라도 박원순 前 시장 때 구축된 TBS의 지배구조를 손대기 어렵게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에 우연히 이 조례 내용을 읽어보고, 아무리 서울시의회를 민주당이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기 진영끼리 다 해먹겠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지 어이가 없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의 자문을 받아 만든 이 조례의 주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명무실한 이사회다. 정관에는 TBS 미디어재단 운영에 관한 최고 의결기관으로 이사회를 둔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정기이사회는 연 2회만 개최되는 데다, 대표이사 추천은 별도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에서 맡기 때문에 악세사리에 불과한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사회의 업무 범위에 KBS 이사회나 방송문화진흥회와 같이 방송사의 ‘공적 책임’에 관한 규정이 없어, 방송 내용에 대한 관여도 불가능하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편향성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러도 시정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TBS 이사회가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사장과 대표이사를 별도로 두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KBS 사장이 KBS 이사를 겸하고, MBC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겸하는 것과 같은 해괴한 구조다. TBS 이사회는 이사장 및 대표이사를 포함하여 11명 이하로 구성되는데, 대표이사만 상근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대표이사가 이사장 역할도 겸하는 셈이다. 총 11명의 이사 중 당연직 이사는 6명으로 서울시 공무원 2명, 방통위 추천이 2명, TBS 종사자들이 직선으로 뽑는 노동자 이사가 2명이다.

셋째, 이사장, 대표이사 및 감사는 이사회와 별도로 구성된 임원추천위원회에서 2배수 이상을 추천하면 시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원추천위원회는 총 7명으로 서울시장이 2명, 서울시의회가 3명, 이사회가 2명을 추천하는데, 서울시 공무원인 당연직 이사는 임원추천위원을 선출하는 이사회 결정에는 관여할 수 없다. 따라서 이사회에서 추천하는 임원추천위원 역시 과거 박원순 前 시장 체제에 가까운 인물이 선정될 것이다.

넷째, 임기 중에 이사진에 결원이 생기면 그 후임자의 임기는 임명일로부터 새롭게 起算한다는 점이다. 다른 공영방송에서 잔여임기만을 수행하는 것과는 다르다. 서울시장 선거를 불과 3개월 앞둔 작년 1월 서정협 당시 시장권한대행은 6개월이나 궐위 상태였던 TBS 재단이사장을 새로이 임명하는 ‘알박기’ 인사를 단행했다. 2024년 1월까지는 박원순 전 시장 체제의 이사장이 이사회 사회권과 임시 이사회 소집권을 틀어지게 된 셈이다.

오세훈 시장 자신이 편파방송의 피해자이면서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직접적인 시정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예산 삭감이라는 우회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TBS 조례와 정관에서 이중삼중으로 박원순 전 시장체제의 지배구조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공영방송 운영위원회 방안은 TBS 사례 벤치마킹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공영방송 운영위원회’案은 TBS의 사례를 상당 부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의 선거 결과가 TBS 지배체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것이 TBS 조례의 목적이라면,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현재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공영방송 운영위원회’ 案의 목적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여야 7:4 구조의 KBS 이사회, 여야 6:3 구조의 방문진 이사회, EBS 이사회가 사라지는 대신, 각각 2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로 확대된다. ‘운영위원 추천권’은 당초에 알려졌던 내용보다도 더 親언론노조 진영의 우위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개악되었다. 우선 KBS, MBC, EBS의 종사자 대표, 즉 언론노조가 2명의 추천권을 배정받고, 방송직종의 대표성을 고려한다며 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협회, 방송기술인연합회도 각 1명씩 모두 3명의 추천권을 배정 받는다. 또 시청자위원회가 3명을 추천하게 되는데, MBC의 경우 노사합의로 구성된 ‘시청자위원 선정위원회’가 시청자 위원을 선정하기 때문에 보수 성향은 시청자위원이 될 수 없는 구도다. 다음으로 방통위가 선정한 방송 및 미디어학회가 3명을 추천하는데, 이들 또한 성향상 親언론노조 진영으로 분류된다. 그 외 지상파 3사 사장이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는 방송협회가 2명의 추천권을 받는데, 차기 방송협회장은 언론노조 세력인 김의철 KBS 사장이다. 이렇게 非정치권에서 추천하는 운영위원은 13명인데, 거의 모두가 親언론노조 계열로 충원될 것이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방지한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속내는 공영방송을 자기 진영의 정치적 후원세력으로 존속시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모두 12명을 추천한다. 국회 교섭단체가 의석수 비율에 따라 7명, 비교섭단체가 1명을 추천하는데, 현재의 국회 구도대로라면 민주당 4명, 국민의힘 3명, 정의당이 1명을 추천하는 구조다. KBS와 MBC의 경우 시·도의회 의장협의회가 4명을 추천한다. 당초에 알려졌던 시·도 광역단체장 협의회가 아니라 시도의회 의장협의회가 추천하는 것은, 서울과 부산의 현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이 법안이 통과되어 지금의 구도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한다면, 親언론노조 계열이 최소 18석 이상은 무난히 확보하여, 특별다수제 통과에 필요한 17석은 가볍게 돌파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대선 패배 이후에 허겁지겁 발의해서 그런지 ‘공영방송 운영위원회’案에는 중대한 허점이 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독일식 방송평의회’ 모델을 준용했다고 하면서도, 운영위원회와 이사회의 성격 차이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방송평의회는 우리나라 공영방송 이사회가 수행하는 역할에 더하여 방송 내용의 심의·평가 기능을 함께 수행하며, 편성위원회와 경영진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치면 이사회에 해당하는 행정위원들을 방송평의원 중에서 별도로 선출한다. 그런데 민주당의 운영위원회案을 보면, 기존의 이사회가 수행하는 역할과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7:4 또는 6:3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단순 ‘물타기’해 자기네 진영 숫자만 늘리기가 민망해서인지, 이름만 운영위원회로 바꾼 셈이다. 특히 방문진은 재단법인인데, 재단법인은 민법 제 57조에 따라 이사를 두게 되어있다. 운영위원회로 바뀐다면 민법 제57조를 위반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정필모 의원이 KBS 출신이어서인지, 방문진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법안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多元主義를 도리어 침해하여, 민주적 여론형성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점이다. 세계의 공영방송은 핵심적인 존립 근거로 ‘의견의 다양성과 다원주의의 보장’을 들고 있다. 독일의 경우 과거 나치 시대에 대한 반성으로, 방송평의회 구성에서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을 가진 정치, 사회, 이익, 종교단체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제2 공영방송 ZDF의 경우 노동계에서 3명의 방송평의원을 추천하면 경영계에서도 3명을 추천하고, 개신교에서 2명을 추천하면 카톨릭에서도 2명, 유대교에서도 1명을 추천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민주당의 운영위원회 방안은 친노조 방송 일색으로 가자는 것

민주당의 ‘운영위원회’案은 얼핏 보면 다양한 단체로부터 운영위원을 추천받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운영위원을 추천하는 非정치권단체의 이념적 성향은 거의 모두 親언론노조 일색이다. 언론노조가 ‘노사동수 공정방송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언론노조가 보기에) 공정방송을 저해한 구성원에게 징계 심의를 요구할 수 있을 정도로, ‘내부적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공영방송의 실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운영위원회마저 親언론노조 일색으로 구성되어 ‘외부적 다양성’도 보장되지 않는다면, 공영방송은 점점 국민의 보편적 상식과 멀어지게 되고, 조만간 이런 공영방송을 왜 유지해야 되냐고 공영방송 무용론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이제는 공영방송의 문제를 방송 종사자, 언론노조원의 관점이 아니라 多元主義라는 헌법적 가치에서 바라볼 때가 되었다. 즉, 공영방송이 조직 구성에서 얼마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특히 뉴스룸 구성에서 얼마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는지, 보도 및 시사 프로그램 아이템에서 얼마나 다양성을 구현하고 있는지, 인터뷰를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과 하고 있으며, 얼마나 다양한 의견을 소개하고 있는지, 이런 관점에서 공영방송을 바라봐야 한다. 민주당이 발의할 것이라는 ‘공영방송 운영위원회’案을 계기로 방송 종사자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의 관점에서, 多元主義라는 헌법적 가치의 관점에서 공영방송 문제를 바라보는 논의를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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