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이제는 친오빠나 아버지에게도 함부로 애정표현을 하면 안 되는 모양이다. 얼마 전 한 여성 아이돌 가수가 친오빠에게 잘해줬다는 이유로 여초 사이트에서 악성 댓글 폭탄 세례를 받았다. 그녀에게는 ‘흉자’라는 타이틀이 붙었는데 ‘흉자’란 신체적으로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이익을 대변하며 여성에 대한 억압에 무관심한 여성을 가리키는 ‘명예 남성’을 한 차원 더 비하한 단어로 ‘흉내 자지’라는 의미다. 보통 ‘남성주의 사고방식에 동조하는 여성’ 또는 ‘페미니즘에 동조하지 않거나 비판하는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된다. 남녀갈등에 이어 여여갈등을 상징하는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9년 무렵이다. 화장이나 치마, 하이힐 등을 ‘꾸밈 노동’, 또는 ‘코르셋’으로 명명하고 이를 거부한다는 탈脫코르셋 운동이 벌어지면서 오랜 친구 사이가 틀어졌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예쁘게 차려입어도 ‘흉자’, 화장을 곱게 해도 ‘흉자’였다. 미러링이 없을 리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흉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신체적으로는 남성인데 여성을 옹호하며 남성에 대한 억압에 무관심한 남성이라는 뜻이다(뭐의 약자인지는 설명 안 해도 짐작하실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일시적인 언어 일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아니었고 그 언어들은 꾸준히 생명력을 이어갔으며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인류 초유의 성별 간 적대 사회.

여성이 남성을 혐오하고 남성이 여성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내가 아는 한 인류 역사에서 대한민국이 처음이다. 대부분의 역사에서 남녀가 죽고 못 살아 벌어진 문제는 많지만 둘이 미워해서 생기는 문제는 없었다. 10대 섹스물인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춘향전’을 보시라. 고 또래부터 서로 미치는 게 정상적인 남녀다. 그런데 이제 서로 적대시하고 미워하는 신인류가 탄생했다. 지난 대선 전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가장 큰 사회적 갈등으로 전 연령대에서 이념 갈등이 꼽힌 반면 2030세대에서는 남녀 갈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리고 실제 투표 결과에서도 이대남과 이대녀는 데칼코마니 현상을 보였다. 윤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둘을 화끈하게 갈랐음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절박했을 것이다. 페미니스트임을 내세우는 대통령이 있는 당으로 젊은 여성들이 몰려갔으니 젊은 남성들의 표를 잡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선거는 끝났고 당선인은 ‘정치’를 해야 한다. 당연히 한쪽에 편향적인 발언을 하면 곤란하다. 혹시라도 그런 발언이나 정책을 말하면 주변에서 뜯어말려야 한다. “전임자와 닮았다는 소리 듣고 싶으십니까?” 기분이 나빠서라도 안 할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럼 대통령이 남녀 갈등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을까. 못 한다. 젊은 여성들에게 다가가면 징그럽다고 기겁할 것이다. 젊은 남성들은 선거 끝났다고 바로 배신 때리네 분개할 것이다. 그럼 어쩌라고요.

변하지 않는 진리, 恒産恒心.

문제의 본질은 그런 정서적인 갈등이 아니다. 앞서 인용한 대선 전 유권자 설문조사에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의제를 물었다. 그 결과 101명의 전문가들은 36개의 의제 중 집값 안정을 7위로 뽑은 반면 일반인들에게는 집값 안정이 1위였다. 먹고 살만하니까 전문가들이라는 분들은 그런 배부른 예측을 내놓는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답이다. 남녀 갈등의 핵심은 일자리와 주택이다. 현재의 기형적인 상호 증오는 박탈감과 불안감이 서로에게 적대적인 화풀이로 표출된 결과다. 일자리가 충분하면, 주택 문제가 해결되면 이 갈등의 대부분은 해소된다. 항산이어야 항심이라고 했다. 일정한 직업과 재산을 가진 사람에게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늘 불안정하고 공격적이 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은 공산주의가 타고 들어오는 통로라고 했다. 마찬가지다. 빈약한 일자리와 내 집 마련의 전망 없음은 2030 성별 갈등이 폭발하는 화약고다. 가장 예쁘고 멋진 시기에 남녀가 연애하고 사랑하는 너무나 정상적인 인간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궤도 이탈하는 기간이 모쪼록 짧았으면 좋겠다.

그냥, 사족 몇 개.

글이 너무 드라이해서 평소 생각 몇 개 적어본다. 한남충이라며 한국 남성 무시하는 여성들 있다. 우리나라 남자들 여자들에게 잘하는 편이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 사회다. 일본 지하철에서 여성이 쪼그리고 앉아 남자 친구의 신발 끈 묶어주는 장면 보고 기절한 분들 많다. 그래서 일본 여성들 한국 드라마에 미치는 것이다. 툭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남성분들 계시다. 죄송하지만 여성들이 평생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시간을 다 더하면 복무 기간 훌쩍 뛰어넘는다. 여성의 출산을 변비 환자가 일주일 만에 똥 한 번 누는 것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들도 있다. 절대 아니다. 여성의 출산은 몸이 다 망가지는 끔찍한 일이다. 서로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며 살아야 하는 게 남자와 여자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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