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말해, 방송 편성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공영방송 이사회가 방송 편성에 개입하는 것은 금기시하면서, '방송의 공정성은 근로조건'이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언론노조의 편성 개입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진짜 문제점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국민에게 더 좋은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사의 '내적 다양성'을 말살하고, 특정 진영의 편에 서서 노골적인 '정치병행(政治倂行)성'을 보이는 언론노조에, 제 자리와 제 역할을 찾아주는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김도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더불어민주당이 공영방송 운영위원회 설치와 특별다수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소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당론으로 확정하고, 4월 임시국회 때 통과를 시키려 할 것이라 한다. 이 법안의 목적이 정말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서, 국민에게 더 좋은 공영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법안은 언론노조를 위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언론노조는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동료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저질렀다. 또 같은 진영을 위해서는 편파방송을 서슴지 않았다. 과거에 언제 공정방송을 외쳤느냐는 듯이 말이다. 정권이 바뀌자 과거 5년간의 악행에 대한 단죄를 걱정하는 강성 언론노조원들을 안심시켜주는 것이 이 법안에 담긴 의도다. 노영방송의 부작용을 바로잡을 공영방송 사장이나 이사회가 들어서는 것을 막고, 언론노조가 사실상 지배하는 현재의 공영방송을 유지하려는 것이 이 법안을 밀어붙이려는 민주당의 목적이다. 표현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할 독자들도 있을 텐데, 필자가 몸담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과 문화방송(MBC)의 예를 통해 설명하겠다.

민주당의 설명에 따르면, 공영방송운영위원회는 독일의 ‘공영방송평의회’를 축소 준용해 25명으로 구성한다고 한다. 국회에서 6명, 시·도 광역단체장 협의회에서 4명, 정부에서 2명을 추천하고, 미디어·방송 관련 학회가 5명, 방송 관련 직능단체가 8명을 추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얼핏 보면 정치권이 12명, 방송 전문가 그룹이 13명을 추천해서, 정치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방송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는 선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미디어·방송 관련 학회가 대부분 진보 성향이고, 방송 관련 직능단체들이 ‘언론노조의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2017년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소속 학자 468명은 MBC 김장겸 사장과 KBS 고대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지난 10년간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급격히 위축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들이 문재인 정권 때의 공영방송 문제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2021년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MBC는 ‘가장 신뢰하는 매체’ 부문에서 7.4%의 응답으로 3위를 차지했지만, ‘가장 불신하는 매체’ 부문에서는 11.7%로 2위를 차지했다. 종편을 포함한 방송사 중에서는 단연 불신도 1위였다. 사회통합에 앞장서야 할 공영방송이 특정 진영에게만 공정하게 보이는 방송을 했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 보도는 어떠했는가? 정치평론가 유창선씨는 이번 MBC의 대선 보도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재명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MBC의 모습은 이번 대선 보도에서 언론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장면으로 기억될 것 같다. 윤석열 이름만 나오면 서슬 퍼런 MBC는, 이재명 이름만 나오면 축소하거나 덮어버리는 보도 태도를 내내 보여왔다. 권력의 편에 서서 의혹들을 축소 보도하는 이런 행태는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의 MBC로 돌아갔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시절의 보도 행태를 보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편파보도를 한 MBC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학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지역대표보다 더 많은 운영위원을 관련 학회에 배정하겠다는 것은 이런 점을 믿어서일 것이다. 가장 많은 8명을 추천하도록 배정받은 방송 관련 직능단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등 대부분의 직능단체 회원은 동시에 언론노조원이기도 하다.

현재 9명인 방문진 이사회를 독일 공영방송의 방송평의회처럼 숫자를 늘려 25명의 운영위원회로 바꾸는 것에도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 독일의 방송평의회는 방문진 이사회보다는 훨씬 포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공익적 편성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방송 프로그램 품질을 감독하며, 방송사 경영을 평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경영진과 제작진 사이에 제작 자율성 이슈가 발생할 경우, 중재기구로서의 역할도 담당한다. 독일의 방송평의회는 우리나라로 치면 방문진 이사회, 시청자위원회,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기능을 겸한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수의 평의원들이 필요한 것이다. 방문진 이사회의 경우, 한 달에 두 번 꼴로 두 세 시간 동안 MBC의 주요 현안에 대해 보고를 청취하는 것이 전부인데, 25명이나 되는 운영위원이 참석한다면 과연 심도 있는 회의가 가능할까? 수박 겉핥기식 회의로 흘러 방송사 경영진에 대한 견제 기능은 더 약해질 것이다.

특별다수제의 경우도 문제다. 사장 선임이나 방문진 이사 선임을 앞두고, 언론노조는 자신들이 반대하는 인물을 탈락시키기 위해 음해성 성명서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낸다. 심지어 지원을 철회하라고 압력을 넣기도 한다. 지난번 MBC 사장 선임 때도 유력한 후보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중도에 포기하는 사태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다수제에 의해 선임되는 사장은 어떤 사람일까? 적어도 공영방송을 망치고 있는 노영방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이를 바로잡겠다는 사람은 되기 힘들 것이다.

노영방송이라는 말을 하면 그동안의 방송 민주화 노력을 부정하는, 수구꼴통들의 주장이라 폄훼하는 독자들도 꽤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한때 언론노조원이었다. 권위주의 시대에 언론노조가 방송사 내부 부조리를 개선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이 잇따라 사장에 오르면서 언론노조가 기득권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의 감시자가 아니라 특정 정치진영의 선수가 되어버리는 ‘정치 병행성’ 현상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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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MBC).(사진=연합뉴스)

노영방송의 문제점을 쉽게 파악하는 방법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대명사인 BBC의 경우 프로그램 편성권은 회사의 배타적인 권한이다. 편성, 제작에 관한 결정이 직원의 고용조건에 영향을 미칠 때만 노조가 개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영방송 제도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공영방송에서도 노조가 편성에 개입하는 경우는 없다. 편성규약에 따라 제작 자율성과 관련된 불만 처리를 담당하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기자협회나 PD협회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방송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제작 자율성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사장을 쫓아내겠다며 파업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경영진과 기자·PD협회 간의 의견이 불일치할 경우는 방송평의회가 중재기구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직원대표가 사장과 직접 협상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결정은 사장의 몫이다. 사장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재임용 때 그 책임을 묻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언론노조의 경우 단체협약을 통해 방송 편성과 인사권에까지 개입하고 있다. MBC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국장 책임제’이다. 편성, 보도, 제작상의 실무 책임과 권한은 해당 본부장이 아닌 국장에게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방문진 이사회가 MBC 임원에 대한 임면권을 가지고 있지만, 국장에 대한 임면권은 안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언론노조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진다. 편성, 보도, 제작 국장을 임명할 때는 임명동의제 투표를 거쳐야 하고, 국장으로 보임된 지 6개월이 지나 해당 局 재적인원의 과반이 중간평가를 발의할 경우 중간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또 주요 국장은 보임 또는 중간평가 이후 6개월이 경과하면, 정책간담회를 개최하여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국 운영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게다가 단체협약의 공정방송위원회(공방위) 운영규정을 보면,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공방위는 공방위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로 담당 보직자에게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출석을 요구할 수 있으며, 출석을 요구받은 당사자는 이에 응해야 한다. 더 나아가 공방위는 과반수의 찬성으로, 방송강령과 윤리강령을 위반한 보직자나, 자료 제출이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보직자에 대해 보직 해임과 인사위원회 회부를 요구할 수 있으며, 사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수용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MBC 보도와 편성, 제작의 실무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주요 국장은 방문진 이사회에 대해서가 아니라, 언론노조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다.

아무리 언론노조의 입김이 거세다 해도, 시청자위원회가 제 역할을 한다면 방송의 다양성과 균형성이 심하게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시청자위원회는 ‘방송 편성에 관한 의견 제시 또는 시정요구’, 그리고 ‘방송 사업자의 자체 심의규정 및 방송 프로그램 내용에 관한 의견 제시 또는 시정요구’를 할 막강한 권한을 방송법에 의해 부여받고 있다. 그런데 MBC 단체협약에는 시청자위원을 노사 합의로 구성된 ‘시청자위원 선정위원회’를 통해 선정하게 되어 있다. 언론노조와 성향이 다른 사람은 애초에 시청자위원으로 선정될 기회가 봉쇄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언론노조가 이중삼중의 장치를 통해 MBC의 보도, 편성, 제작을 장악하고 있으니, MBC를 노영방송이라 부를 수밖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KBS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말해, 방송 편성의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공영방송 이사회가 방송 편성에 개입하는 것은 금기시하면서, ‘방송의 공정성은 근로조건’이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언론노조의 편성 개입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현재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진짜 문제점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국민에게 더 좋은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사의 ‘내적 다양성’을 말살하고, 특정 진영의 편에 서서 노골적인 ‘정치병행(政治倂行)성’을 보이는 언론노조에, 제 자리와 제 역할을 찾아주는 입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도인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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