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혼란과 이념 붕괴 현상은 지난 30여 년간 좌익 전체주의 추종 세력이, 역사교육의 콘텐츠를 180도 뒤집어 교육한 결과.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과 가치관, 그중에서도 근현대사를 좌익 민중사관으로 바꿔버린 데서 가치관의 혼란이 발생한 것. 따라서 새 역사 교과서는 일국사적 관점의 가치관을 모두 폐기하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적어도 동북아 관계사적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조명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국가의 정체성,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가르치는 내용으로 바뀌어야

#. 천동설과 지동설

한 시절 천동설(天動說·geocentric theory)이 시대의 정의였습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다른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이론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회전운동을 한다는 지동설(地動說)을 내놓자 두 사람의 책은 금서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가택연금을 당했습니다.

중세 천주교 시각으로 보면 지동설이 이단이 되듯, 한국의 국사학계가 빠져 있는 소위 ‘일국사적(一國史的) 관점’의 역사 해석은 마치 중세 천주교 시각을 전 국민에게 강요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 결과 우물 바닥에 앉아서 하늘 보기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군집을 이루어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러한 군집을 사회라 하는데, 사회의 단위는 가정, 학교, 직장을 비롯하여 크게는 국가(國家)로 구분됩니다. 개개인이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하듯이, 나라도 이념과 가치가 맞는 상대와 합종연횡, 동맹을 통해 안보를 유지하고, 여러 나라와 교류·통상으로 살림을 윤택하게 만듭니다.

한 나라가 체제 유지를 하겠다고 국경을 폐쇄하고 외래 문물 도입을 차단한 채 독야청청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를 우리는 구한말 위정척사와 쇄국의 결과를 통해 생생하게 체험한 바 있습니다.

#. 한민족의 참모습은 어떠했을까?

우리는 한민족이 반만년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 만주 대륙을 호령하고 금속활자, 한글 창제를 통해 문명을 떨친 사실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그런 주장을 외쳐도 외부에서는 한민족이 세계사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 단군의 자손, 배달겨레라는 순수혈통이나 순혈주의도 순진한 착각입니다. 단군이란 존재가 일반에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이며, 그전까지 이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을 중국에서 온 기자(箕子)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중국이 새로 건국된 왕조 이름을 ‘조선'으로 정해준 이유는 한반도에 들어선 새로운 왕국이 중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진 기자가 건국한 기자조선의 후신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주석은 세계를 향해 "한국은 재래로 중국의 속국이었다"라고 천명했습니다.

조선 국왕의 권위는 중국 천자의 책봉을 통해 발휘되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과학적인 문자라고 자랑스러워하는 한글 창제에도 불구하고 조선 지도부는 19세기 말까지 중국 문자를 공용어로 사용했고, 중국의 역사, 철학, 문학, 사상을 알아야만 지식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습니다.

구한말 청나라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통해 조선을 식민통치했습니다. 만주벌판에서 풍찬노숙하며 일제와 싸워 독립을 쟁취했다는 항일 무장투쟁도 알고 보면 거의 자폐적 수준의 주관적 환상일 뿐입니다. 

#. 세계사의 판 위에서 우리 역사 바라보기

한 나라의 생존은 주변국과 날줄과 씨줄로 얽혀 있고, 세계와 교류·통상하며 흥망성쇠를 거듭해 온 것이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입니다. 이처럼 세계사 혹은 동북아 관계사의 판 위에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하고 가난한 나라의 모습이 자꾸 보이는 것은 저만입니까?

중국의 제후국이었던 자존심 상하는 발자취, 변방의 오랑캐, 야만의 족속이라 멸시했던 여진족 청나라와 쪽발이 왜놈에게 지배당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정면에서 응시하는 작업은 너무나 고통스럽죠. 그러한 수치와 고통이 인내의 한계점을 넘어서면 이 나라와 민족의 어두웠던 과거를 웅장하고 당당한 역사로 부풀리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마련입니다.

한 시절 제국을 경영했던 나라와, 제국의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의 국민성은 완연히 다릅니다. 제국을 경영해본 나라의 국민성은 당당하고 긍정적이지만, 식민 지배를 당했던 나라의 국민은 굴곡이 심했던 자신들의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 창피하고 괴롭습니다. 따라서 기회만 나면 탈출구와 핑계를 찾게 됩니다. 우리에게 닥쳤던 불행을 ‘내 탓’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지정학적 요인이니, 냉전체제니 하면서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말입니다. 

세계사라는 판 위에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역사 진행 과정에서 이 땅의 지도부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일국사적 관점의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판 위에서 망국의 원인을 추적해 보겠습니다.

1600년대 초 일본이 나가사키를 개항할 때 조선은 쇄국의 빗장을 닫아걸었습니다. 서양에 조선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소개한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은 조선을 ‘잠자고 있는 나라’로 기록했습니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조선은 다른 세계 역시 자신들과 같은 환경에서 잠자고 있다고 믿었기에 조선은 안심하고 잠들었습니다. 그 결과 조선에선 개화·개항·변화란 의미 없는 것이 되었고, 시간은 정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나라 전체가 가난해졌고, 가난했기에 나라를 지킬 군대를 양성하지 못했으며,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인프라 건설에 실패했습니다.

서양 세력이 동아시아로 몰려오던 19세기에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으로 명명된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일본은 패권국 영국과 손잡은 반면, 조선은 패권 도전국 러시아와의 합종연횡을 택했습니다. 러시아는 틈만 나면 영국이 구축한 포위망을 뚫고 태평양으로 나가는 부동항을 얻으려 노력했습니다. 이 와중에 조선이 188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 세력을 집요하게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바람에 영국의 대러시아 포위망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영국은 일본을 대리로 내세워 한반도에서 러시아 세력을 구축(驅逐)하고 한반도 관리권을 일본에 위임합니다. 이것이 1910년 한일합방의 근본 원인입니다.

#. 망국의 진짜 원인 찾기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한 나라가 내외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내적 취약성이 국가 패망의 원인이라고 밝혀냈습니다. 그는 “외부의 적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역할은 한 사회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숨소리가 멎지 않을 때 최후의 숨통을 누르는 것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국가 붕괴는 자체의 힘으로 도저히 나라를 지탱할 수 없는 상태로 쇠잔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조선왕조는 개항으로 외부 세력이 침투해오기 전에 이미 내부로부터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해체의 길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외부 대응에 실패하여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

조선의 망국을 제3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청나라 지식인 량치차오(梁啓超)는 일본이 정예를 길러 남의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조선이 망하는 길을 취했기 때문에 망한 것이라고 통탄합니다. 량치차오는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이지 일본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무릇 조선 사람들은 망하는 것을 스스로 즐겼으니, 또한 무엇을 가엾게 여기겠는가”라고 말입니다(최형욱 엮고 옮김, 『량치차오, 조선의 망국을 기록하다』, 글항아리, 2016, 103~105쪽).

상황이 이랬으니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일본 천황에게 통째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절대다수 백성들은 일본 통치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했습니다. 『1910년 일본인이 본 한국병합』의 저자 이데 마사이치(井手正一)는 거의 모든 대한제국 백성들은 한일병합을 환영했다고 기록합니다. 상민들은 양반과 관리들에게 생명·재산 등 모든 자유를 박탈당해 왔는데, 병합으로 인해 양반-상놈의 속박에서 벗어나 법률상·사회상 양반과 동등한 인격자가 되었기에 그 기쁨이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특히 병합이 다른 나라처럼 병력을 동원하여 강제로 빼앗거나, 의회에서 독단적인 결정을 통한 강행이 아니라, 군주의 임의적 판단에 의한 평화적 합병이었음이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대한제국처럼 조약을 통해 한 나라의 주권을 통째로 넘긴 사례는 인류 역사상 지극히 드문 사례였습니다(이데 마사이치(井手正一) 지음·신동규 옮김, 『1910년 일본인이 본 한국병합-「조선사정」과 「조선사진첩」』, 동아대학교 역사인문이미지연구소, 2020, 32~37쪽).

#. 정신승리법

일국사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이런 증언들을 "토착왜구의 천인공노할 망언"으로 규탄하겠지만, 세계사의 판 위에서 우리 모습을 보면 상당 부분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마디로 조선은 개방해야 할 시기에 위정척사, 쇄국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사의 주류 세력 편이 아닌, 주류 세력에 도전하는 편에 서는 바람에 망국의 화를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와 시대착오를 기만하기 위해 소위  국뽕 국사학자들은 정상적인 역사 보기에서 세계사와 동북아 관계사라는 관점을 치워버리고, 우리의 모습만 들여다보기로 작심합니다.

이러한 자폐적 역사 인식은 중국 작가 루신(魯迅)이 쓴 『아Q정전(阿Q正傳)』의 주인공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떠도는 날품팔이 룸펜 노총각 아Q(阿Q)는 어느 날 동네 깡패에게 폭행을 당합니다. 그들에게 복수할 힘도,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아Q는 재빨리 자신을 폭행한 동네 깡패를 아들놈이라고 생각하고, 아들놈에게 한 대 얻어맞은 셈 치기로 작정합니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아Q는 얻어맞은 자기보다 때린 아들놈을 불쌍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자신이 현실에서는 패배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승리했다는 착각과 자위에 빠진 것이죠. 아Q는 그런 자폐적 세계에서 새로운 자아를 탐닉합니다.

이러한 ‘정신승리법(spiritual victory)’이 바로 일국사적 역사 해석의 전형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국사학계는 아Q식의 정신승리법 역사 해석 작업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판타지 소설처럼 꾸며 교과서에까지 실어놓았습니다. 일국사적 관점에 의해 왜곡된 대표적 사례는 우리 역사에 끼친 중국의 패악질은 철저히 은폐하거나 미화하여 진상을 알 수 없게 하여놓은 것, 일본을 악(惡)의 제국으로 만들기, 조선 멸망의 모든 원인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근성과 을사오적의 매국 행위의 결과로 왜곡한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수백 년을 주자성리학에 중독되어 양반과 상놈, 남과 여, 적자와 서자, 노장과 소장을 차별하고, 제 나라 백성을 노예로 사고파는 행위를 근절시킨 것은 일본이었고, 신석기 시대나 다름없던 봉건 한국인들을 세계사에 편입시켜 근대의 싹을 틔워준 것도 일본이란 사실은 철저하게 부정됩니다.

을사오적이 없었다면 대한제국은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서세동점으로 동아시아가 격변할 때 조선과 대한제국의 지도층은 어떤 대응을 했기에 식민지로 전락했을까요? 대한제국은 을사오적이 나라를 팔아먹어 망한 것이 정말로 사실인가요?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탄하지 않았으면 대한제국은 자생적 근대화의 길로 착실히 발전해 나갈 수 있었을까요?

#. 역사 해석에 이념이 개입되면…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성리학적 민본주의를 기둥으로 삼고, 문치(文治)로 일관했던 왕조가 500년 역사를 마감하고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게 되었으니 분명 망국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국사적 관점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국뽕 국사학자들은 조선 멸망의 이유를 을사오적의 매국 행위와 일제의 침략 근성 때문으로 수학 공식처럼 도식화해놓았습니다.

만약 일제의 침략 근성이 아닌 다른 이유를 댔다간 당장 친일파니, 토착 왜구라는 화살이 날아옵니다. 이러한 자폐적 역사 해석은 민족주의·민중사관과 만나 반일 종족주의라는 광신적 사이비 종교로 승화되어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망령처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국사적 관점으로는 조선의 흥망성쇠를 불러온 핵심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세계사와 어우러진 역사 보기, 적어도 동북아 관계사적 관점으로 지평을 넓힐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동북아 관계사, 세계사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조명하면 동양에서는 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도대체 조선은 왜 “착취할 것조차 없을 정도”로 가난한 나라로 전락해 버렸는지 그 답이 명쾌하게 드러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틀에서 세계사라는 관점을 제거하고 일국사적 역사 보기를 강조하다 보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이념적 해석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소도구가 동원됩니다.

우선 조선은 자신들 힘으로 자생적 근대화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과, 그 연장선상에서 고종의 계몽군주설이 화려하게 등장합니다. 고종은 전력투구하여 자생적 근대화를 추구했으며, 나름의 성과를 내려는 순간 일제가 침략 본성을 발휘하여 대한제국을 겁탈하는 바람에 자생적 근대화에 실패하여 온갖 모순이 발생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수치스러운 역사를 박살내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 항일무장투쟁론이란 판타지입니다. 항일무장투쟁의 정신적 주인공으로 신채호와 김원봉을 민족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했고, 그 후예로 김일성이 등장합니다. 급기야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낙엽으로 전투함을 만드시며, 모래알로 쌀밥을 지으시는 백두혈통 김일성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이 그 무엇을 초월하는 으뜸 가치로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일국사적 역사 보기가 가져온 ‘혁혁한 공로’입니다.

이처럼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폐적인 역사 해석은 필연적으로 민족과 민중을 중심으로 한 내재적 발전론으로 이어지고, 통일국가를 수립해야 할 시기에 분단국을 세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역사 서술로 결론을 맺게 됩니다.

#. 새 역사 교과서에 담겨야 할 내용들

지금까지 우리는 망국의 원인을 단 한 번도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심지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성찰한 적이 없습니다. 지더라도 잘 져야 실패에서 오는 교훈이라도 얻을 수 있는데, 전 국민이 대체 조선이 왜 망했는지조차 모르도록 만든 죄는 일국사적 역사 보기에 그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희대의 허동현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에 근거해 국망(國亡)의 이유를 일본의 침략 탓으로 돌리거나, 일제에 맞선 독립운동이 나라를 되찾게 해준 동력이었다고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뼛속 깊이 우러나오는 진정한 자긍심은 길러지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교과서 문제점 해결 못 한 고교 한국사 개정안’, 「조선일보」, 2011년 7월 8일).

허 교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는 비교사적 시야에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근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독립을 일구어내지 못한 이유를 성찰하는 동시에, 광복 이후 오늘의 성공을 이끌어낸 요인을 인과관계가 맞게 서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통일된 국민국가의 완성을 추구하는 내용으로 집필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한국은 근대국가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해방을 맞았고, 건국했습니다. 그렇게 출발한 나라였기에 국민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국민 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국가를 이끌어 갈 확고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부가 구성되어야 하고, 이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기 위한 시민 개개인을 대상으로 한 자유민주시민으로서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근대국가 운영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출발한 한국이니 지금부터라도 부단한 노력을 통해 자유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한다는 데는 모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시민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교육내용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합니다. 미국의 교육 분야 석학인 로버트 프리먼 버츠(Robert Freeman Butts)는 『민주시민의 도덕』이라는 저서에서 민주시민이 책임 있는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정리했습니다.

첫째는, 건국이념 즉 그 나라 건국의 역사를 정확히 가르쳐라.

둘째, 국가의 정체성 즉 법치주의를 제대로 가르쳐라.

셋째, 민주시민의 덕목으로서 시민의 권리와 함께 의무도 가르쳐라.

이 세 가지가 제대로 교육되어야 하나의 시민이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하는 주체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갖출 수 있다고 버츠 교수는 설파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역사교육의 핵심 콘텐츠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 혼란과 이념 붕괴 현상은 지난 30여 년간 좌익 전체주의 추종 세력이, 버츠 교수가 말한 역사교육의 콘텐츠를 180도 뒤집어 교육한 결과입니다.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과 가치관, 그중에서도 근현대사를 좌익 민중사관으로 바꿔버린 데서 가치관의 혼란이 발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새 역사 교과서는 일국사적 관점의 가치관을 모두 폐기하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적어도 동북아 관계사적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조명하고,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국가의 정체성,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가르치는 내용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계사의 판 위에 우리 역사를 포개놓고 우리의 진짜 모습을 조망하는 작업은 우리 근현대사의 있는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일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그러한 작업이 고통스럽다 해서 외면하거나 미화하면 역사 왜곡이 시작됩니다. 그 고통스러운 작업을 통해 실패에서 교훈을 도출하는 땀과 눈물의 결과물을 새 역사 교과서에 담아내야 합니다. 일국사는 이제 그만 박물관에 집어넣고, 세계사와 연결된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나와야 할 때입니다.

* 이 원고는 지난 3월 19일 열린 제2차 기독교계 대안학교용 중등학교 근현대사 교재 개발을 위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기조강연문입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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