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선진국 중 한국의 기업과 기업인처럼 정치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나라는 드물다.박정희 시대 산업화 이후 한국경제는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확대와 성장이라는 한 길을 걸었고, 삼성과 현대, SK, LG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했다.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념 대결과 정치변동 과정에서 온갖 반기업, 규제정책이 난무하고 많은 기업인들이 반기업 정서의 희생양이 되면서 재계의 판도는 변화를 거듭했다.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경제운용 원칙으로 내걸었다. 윤석열 시대, 재계의 질서는 또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15일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10월15일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인사를 나누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정몽구 회장 체제의 현대차그룹에서 ‘정주영’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금기어(禁忌語)’였다.

창업주 정주영이라는 ‘산’이 워낙 높다보니 정몽구 회장의 리더십을 가리는 측면과 2000년 발생한 경영권분쟁, ‘현대그룹 왕자의 난’도 원인이었다. 당시 정주영 창업주는 장남 정몽구가 아닌 5남 정몽헌에게 현대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했다.

대그룹에서 창업주 정주영을 기리는 일은 오랫동안 정몽준 아산재단이사장과 그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의 몫이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 가면 정주영 창업주와 관련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반면, 울산 현대중공업에는 곳곳에 정주영의 사진과 어록이 전시돼 있다.

현대그룹 3세 적자,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회사경영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94년 상무로 입사한지 10년 뒤인 2004년 현대자동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에 오르면서다. 2018년 9월 총괄 수석부회장을 거쳐, 2020년 10월, 건강이 좋지않은 아버지 정몽구 회장을 이어 회장에 올랐다.

정의선 회장이 경영에 나서면서 눈에 뛰는 것 중 하나가 현대그룹 창업주이자 할아버지인 ‘정주영 DNA’를 찾는 일이다. 대표적으로 2019년 3월, 정주영 창업주가 오랫동안 살았던 ‘현대가의 상징’,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을 자신의 명의로 옮겼다.

지난달 21일 정의선 회장은 정주영 회장 21주기를 맞아 이곳 청운동에서 정몽준 이사장과 사촌 등 일가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제사를 주재하면서 장손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대한민국 산업화, 근대화의 주역이자 도전과 혁신의 아이콘인 ‘정주영 DNA’를 현대차그룹 경영의 뿌리로 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대그룹의 적장자 기업을 놓고, 현대차그룹과 고 정몽헌 회장의 현대그룹이 경쟁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2011년 현대차그룹이 현대의 간판기업이자 모체,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을 인수함으로써 정리됐다.

 

1970년생, 52세의 나이, 현대차그룹을 실질적으로 경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선 회장의 지분문제 등 상법상 승계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다. 삼성그룹의 경우, 그 보다 두 살 위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된 것과 비교된다.

정의선 회장의 그룹 지배권은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최근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통해 본인이 다량 보유한 주식을 매각해 실탄을 마련하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주식시장 사정으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정의선 회장으로의 3세승계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처럼 우여곡절을 겪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와 대주주의 지분, 시가총액 등에서 삼성과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손자들과 등산하는 모습. 앞눌 왼쪽이 정의선 현대차 회장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손자들과 등산하는 모습. 앞눌 왼쪽이 정의선 현대차 회장

재계 1.2위 그룹인 삼성과 현대를 비라보는 한국사회의 엇갈린 시선도 정의선 회장으로의 승계에 무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그동안 삼성이 좌파 시민단체 및 민주당 강경파 의원 등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은 것은 대한민국 대표 재벌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무노조경영이 큰 빌미가 됐다.

반대로 현대차, 현대중공업은 진보 좌파정권에 큰 지분을 가진 민주노총 소속 노조 때문에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의 견제가 덜한 측면이 강했다. 현대그룹 성장과정에서 삼성에 비해 특혜성 차관(借款)이나 정경유착 사건이 적었던 것도 작용했다.

여기에 김대중 정권 때였던 1998년에 있었던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 이벤트’로 삼성과 달리 현대는 ‘민족기업’으로 보는 시선도 생겼다.

지난 5년간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은 현대차와 삼성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2020년 10월, 현대차 울산공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선 회장을 “우리 회장님”이라고 부르며 각별한 친근감을 보였다. 정 회장은 “너무 영광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현대차는 혁신에서 1등 기업일 뿐만 아니라 코로나 위기 극복 노력과 노사협력, 미래비전에서도 1등 기업”이라고 칭찬했다. 현대차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런 덕담을 놓고 정부가 ‘반(反)대기업, 반재벌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이 현대차에 대한 칭송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또 문재인 정권 탄생의 직접적 계기가 된 촛불시위와 관련, 민주노총에 대한 채무의식의 발현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현대차노조가 민주노총의 골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금강산 관광 등 남북화해 공로에 대한 이 정권 관계자들의 평가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5년 내내 구속과 재판 등 사법리스크에 시달려온 것과 비교되면서 현대차와 삼성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이중적 접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9년 1월,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행사를 위해 울산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은 당시 수석부회장이던 정 회장을 만나 “요즘 현대차, 특히 수소차 부분은 내가 아주 홍보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생겨난 말이 문재인 정권과 현대차의 ‘수소동행’이다.

현대차가 엔진구동 자동차의 미래로 수소차를 선택한 것은 20여전 전인 1990년대말, 2000년대 초반이다. 탈원전 등 탄소중립, 친환경에 골몰한 문재인 정권은 수소동행을 넘어 수소경제라는 단어까지 만들었다.

현대차와 문재인 대통령의 수소동행이 윤석열 정권에서도 계속될 것인지 주목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2006년 대검 중수부 파견검사로 근무하면서 정몽구 당시 회장을 비자금조성(횡령) 혐의로 구속한 적 있지만 현대차그룹 또는 정의선 회장 등 오너 일가와 특별한 인연은 없다.

윤석열 시대, 현대차그룹의 최대 이슈는 노사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5년만에 등장한 보수정권, 윤석열 당선인의 친기업, 자유 시장경제 공약을 두고 민주노총이 전의를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계속)<펜앤 특별취재반>

<펜앤 특별기획:윤석열 시대,재계의 새 질서 목차>
①SK와 최태원, 질주는 계속될까?(上,下)
②이재용의 ‘굴레벗기’와 삼성의 미래(上,中,下)
③‘정주영 DNA’ 찾는 정의선과 현대차의 새로운 도전(上,下)
④구광모의 LG자존심 회복은 이루어질 것인가
⑤김동관 체제 가동되는 한화의 앞날...태양광 다음은?
⑥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와 롯데,신동빈
⑦지조와 의리의 상징된 GS, LG를 넘어서
⑧왕회장의 5백원 지폐, 그리고 정기선의 꿈
⑨신세계의 ‘정용진리스크’ 윤석열시대에 득(得)되나?
⑩한류는 계속된다...CJ의 진격
⑪문재인 정권 최대 수혜자 한진과 조원태, 빛과 그늘
⑫윤석열의 ‘원전강국’과 두산의 ‘희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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