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문학&영화] 평화를 위한 왜곡과 망각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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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5.04 09:28:30
  • 최종수정 2018.05.05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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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파묻힌 거인'
평화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면 과거의 기억을 왜곡해도 될까.
집단 망각해도 괜찮은 것일까.
고통스럽더라도 낱낱이 기억하며
진실과 거짓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김규나 소설가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

노부부가 사는 마을은 언제나 중국먼지 같은 안개로 자욱하다. 이웃 마을 역시 마찬가지다. 높은 산 정상에서 뿜어내는 용의 입김 때문이다. 안개를 마신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을 잃는다. 미워하고 저주하고 살육했던 기억뿐 아니라 마주보며 사랑하고 용서했던 아름다운 추억들까지도 기억에서 모두 사라졌다. 그래도 노부부는 사랑만은 잃지 않고 산다. 어떻게 만나 결혼했는지, 그 긴 세월 어떻게 살았는지 다 잊었지만 단 하루도 사랑하지 않았던 날 없는 부부처럼 서로를 아끼며 살고 있다. 그래도 늘 가슴 한구석은 허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부부는 자신들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아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아들은 왜 그들을 떠난 것일까. 두 사람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리운 아들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차츰 드러나는 무서운 진실들.

우리나라 문인들이 그토록 타고 싶어 안달하는 노벨상을 지난 해 수상했던 가즈오 이시구로는 장편소설 <파묻힌 거인>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기억을 되찾은 뒤에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지금 행복하기 위해 불행했던 기억은 몽땅 파묻어도 괜찮은 것일까. 앞으로 평화로운 세상만 올 수 있다면 과거의 추한 기억쯤 마음대로 왜곡하거나 차라리 집단 망각시키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낱낱이 기억하며 진실과 거짓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얼마 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리에 앉은 사람과 북쪽에서 핵무기로 불장난 하는 사람이 만났다. 국민들 일부는 이제야말로 ‘한반도의 봄’이 왔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믿거나 말거나 여론조사에서는 남쪽 맨의 지지율이 80퍼센트를 육박하고 있다 하고, 북쪽 핵 장난 맨의 신뢰도 역시 치솟고 있다고 한다. 남쪽 맨에 대해서는 일단 접어두더라도 일부 국민의 눈에는 북쪽 맨이 귀엽고 솔직하고 소탈해 보인단다. 눈앞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고사포를 쏘아 갈가리 찢어 죽인 것을 시작으로 수백 명을 숙청한 공포정치의 장본인, 고모부를 잔혹하게 고문한 뒤 기관총으로 난사해 처형했으며, 배다른 형을 독극물 테러로 암살했다는 사실은 기억에서 지운 것 같다. 독재를 그토록 증오한다면서도 북한 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그들의 피고름과 주검 위에서 호위호식 한다는 것도 그들의 기억에는 없다. 대한민국을 침략해서 수백만 목숨을 빼앗은 선대의 잔혹한 유지를 잇느라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위기와 혼란으로 몰아갔고, 그렇게 갈취한 자본으로 핵무기를 만들어 우리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도 까마득히 잊었다. 이미 여러 번 평화무드를 가장했지만 매번 파기했다는 사실도,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처럼 북한을 믿은 대가가 점점 더 큰 희생이었다는 것 또한 망각했다.

그런데도 이번만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실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편의에 따라 이익에 따라 묻을 것은 묻어버리고 왜곡할 것은 왜곡시켰을 뿐이다.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정치를 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오죽하면 그랬겠어. 젊은 나이에 통치라는 부담을 안아야 하다니 가엽잖아. 우리가 좀 너그럽게 봐줘야지.'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통령,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친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전히 독재자를 운운하며 치를 떤다. 우리에게 대대손손 해를 입힌 중국은 대국이라 추켜세우고 주적은 귀엽다고 포용하면서도, 우방국인 일본과 미국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뒤지고 따지며 아웃!을 외친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보자. 아들을 찾아 나선 노부부는 자신의 종족과 이웃 종족 사이에 끔찍한 학살과 살육을 되풀이해온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승리한 아서왕이 죽고 죽이는 복수의 사슬을 끊고자 마법사를 시켜 용에게 망각의 안개를 내뿜게 했던 것이다. 아서왕의 기사는 망각이 가져온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용을 죽여선 안 된다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오래된 과거이고. 이제는 죽은 뼈들도 기분 좋은 푸른 풀밭 카펫 아래 편히 쉬고 있다오. 젊은 사람들은 그 뼈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부탁하건대 용이 조금만 더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요. 한두 계절일 거요. 기껏해야 그 정도밖에 살지 못해요. 하지만 오래된 상처들이 영구히 치유되고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가 정착되기에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할 거요. 자비를 베풀어 이 땅을 그냥 두고 떠나요. 이 땅이 망각 속에서 쉴 수 있게 해줘요.”

그러나 진실이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기억을 되찾아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기사는 하루라도 빨리 용을 죽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어리석은 소립니다. 구더기가 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오래된 상처들이 나을 수 있겠습니까. 학살과 마법사의 술수 위에 세워진 평화가 영원히 유지될 수 있을까요? 오래된 두려움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기를 당신이 얼마나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는 잘 압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땅속에 하얀 뼈로 묻힌 채 사람들이 파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안개는 모든 것을 지웠다. 그 덕에 두 종족은 원한을 잊고 복수를 잊고 평화롭게 살았다. 그러나 안개가 빼앗은 것은 전쟁의 잔혹함만이 아니었다. 노부부는 자신들의 삶 전체와 아들을 잃었다. 비록 그들이 젊은 시절 서로를 배신했었고, 그런 부모의 모습에 넌더리를 내며 아들이 떠나버렸다는 것이 진실이었다 해도.

노부부는 화상흉터가 남겨진 서로의 나신을 처음 본 사람들처럼 과거의 진실 앞에서 놀란다. 이제 그들은 기억이 없던 시절처럼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괴로운 기억을 묻어버린 채 살았다면 행복했을까. 하지만 노부부의 과거가 아무리 부끄러운 것이었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삶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다. 두 종족의 역사가 아무리 참혹했다 해도 그것이 그들의 현재와 미래가 극복해야 할 역사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용기다. 진실이 드러나 폐허밖에는 남지 않았다 해도 인간은 그 위에서만 사과하고 용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뿌연 용의 입김처럼 이 땅에 중국먼지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역사를 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거짓 기억 위에서 ‘한반도의 봄’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대한민국의 봄’은 멀어진다. 만약 한두 계절 더 그들의 외침이 지속된다면, 이 땅의 역사와 그 시간을 살았던 개인의 삶은 완전히 왜곡되고 망각될 것이다. 용의 입김이 이 땅의 과거와 개인의 진실을 영원히 파묻어버릴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것인지, 그 전에 용을 물리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간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그 용을 처단할 기사와 칼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TMTU. TRUST ME! TRUST U!

*‘TMTU. TRUST ME! TRUST U!’는 김규나 작가가 ‘개인의 각성’을 위해 TMTU문화운동을 시작하며 ‘전체에서 개인으로 깨어나라!’는 의미를 담아 외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김규나 객원 칼럼니스트(소설가,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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