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선진국 중 한국의 기업과 기업인처럼 정치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나라는 드물다.

박정희 시대 산업화 이후 한국경제는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확대와 성장이라는 한 길을 걸었고, 삼성과 현대, SK, LG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념 대결과 정치변동 과정에서 온갖 반기업, 규제정책이 난무하고 많은 기업인들이 반기업 정서의 희생양이 되면서 재계의 판도는 변화를 거듭했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경제운용 원칙으로 내걸었다. 윤석열 시대, 재계의 질서는 또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 알아본다. <편집자 주>

SK그룹과 최태원 회장은 문재인 정권, 지난 5년간 사세를 키우면서 순항해왔던 기업, 기업인으로 꼽혀왔다.

SK그룹은 매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자산규모 기준 재계순위에서 올해는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설 것이 확실하게 예상되고 있다.

기업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가 지난 2월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공정자산 변화를 분석한 결과 SK그룹의 공정자산 규모는 270조7470억원으로 현대차그룹(250조140억원)에 20조원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SK그룹이 재계 2위 재벌로 올라선 것은 1939년 오늘날 SK의 시작인 선경직물이라는 회사가 설립된 이래 처음이다. SK는 2006년 이후 줄곧 3위에 머물렀다.

SK의 약진은 반도체 시장의 활황으로 인한 SK하이닉스의 매출 및 영업이익의 급증이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하이닉스를 과감하게 인수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은 최태원 회장의 리더십을 빼놓을 수 없다.

최 회장은 2011년 주변의 적지않은 반대를 뿌리치고 하이닉스반도체 인수를 강행했다. 이를 통해 SK그룹은 정유와 통신에 머물렀던 내수기업의 한계를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하이닉스 인수는 신중하면서도 일단 결단을 내리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최태원 회장의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최 회장과 SK는 하이닉스 인수에 이어 2015년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 2017년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인수, 반도체 부문의 수직계열화 체제를 구축하면서 주력사업으로 키워왔다.

SK그룹의 이같은 약진과 함께 최태원 회장은 한국 재계의 얼굴로 부상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3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 경제5단체장 중 한명으로 국내 정· 관계는 물론 해외를 오가며 활동중이다.

최 회장이 재계의 얼굴로 부상한 것은 활동적인 성격과 더불어 지난 10여년간 삼성 현대차 등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이 창업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창업 2세지만 3세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그의 연배가 작용했다.

1960년생인 최 회장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1968년생), 현대차 정의선 회장(‘70년생) LG 구광모 회장(’78년생)과 나이가 크게 차이 나지않는 맏형격으로 편하게 반말을 하는 등 리더 역할을 해왔다.

2020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최태원 회장과 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등 재계 총수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2020년 한 행사장에서 만난 최태원 회장과 이재용 정의선 구광모 등 재계 총수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전국경제인단체연합회(전경련) 회장 추대설까지 나오고 있다. 전경련은 이른바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문재인 정권 5년간 ‘적폐’ 취급을 받으며 ‘패싱논란’을 겪은 바 있다.

전경련은 문재인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주요 대기업이 줄줄이 회원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해체 직전 상황까지 몰렸지만 ‘의리의 기업인’ GS그룹 허창수 명예회장이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회장직을 두 번씩이나 흔쾌히 맡아주면서 지난 5년간 버텨왔다.

윤석열 당선인은 21일 경제단체장들과 오찬간담회 일정을 잡으면서 전경련을 통해 최태원 회장의 대한상의 등 나머지 단체에도 연락해 화제가 됐다. 전경련을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이에따라 최태원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과 더불어 대기업의 대변자 역할을 해온 전경련 회장까지 맡아 명실상부하게 재계를 이끌어 갈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하지만 대한상의 회장 등 최태원 회장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한편으로는 정부와 가까운 기업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농단 및 탄핵의 영향으로 삼성쪽 보다는 SK나 최태원 회장과 자주 만났던 점도 원인이다.

2020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이천 하이닉스를 방문했을 때, 청와대는 이 행사에 ‘연대와 협력의 현장방문“이라는 주제를 붙이고 “최태원 회장 상생 노력에 웃음 지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2020년 7월 이천 하이닉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최태원 회장이 안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7월 이천 하이닉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최태원 회장이 안내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상의 부회장단에 문재인 정부들어 약진한 친민주당 진보성향 기업인들이 상당수 합류하면서 전경련 대신 대한상의를 친정부 경제단체로 만들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지난해 1월에는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가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한창 배터리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을 두고 "정말 부끄럽다"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자 LG 쪽에서 이를 정부의 일방적인 SK 편들기라며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악연 등으로 LG그룹과 구광모 회장은 최태원 회장에 대해 편치않은 감정을 갖고있고, 삼성과 현대차, 이재용 부회장 정의선 회장과도 알려진 것 보다 썩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는 재계 내부의 소문 또한 최 회장이 앞으로 재계에서 역할을 확대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지난 대선의 최대 이슈였고, 윤석열 정부 들어 특검 또는 검찰의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해 보이는 대장동 사건에서 불거진 SK 자금 유입설 또한 최 회장의 행보에 변수로 꼽힌다.

최태원 회장의 여동생이 600여억원을 킨앤파트너스라는 회사에 대여했는데 킨앤파트너스는 이 자금을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에 투자했던 것으로 밝혀진 데 따른 것이다.

작년 9월 한 변호사는 “대장동 사건은 SK 관련자들이 연루된 ‘SK게이트’에 가깝고 화천대유의 실제 소유주는 최태원 회장일 것이다”고 주장, SK로부터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10월 “최태원 회장의 여동생이 화천대유에 왜 400억 원을 투자했는지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고,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였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화천대유 대장동 개발사업이 최태원 회장 사면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2021년 10월 13일 기자들과 만나 “저나 SK그룹이 대장동 의혹에 관련돼 있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면서 “대장동이 무엇인지, 제 여동생이 투자를 했는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등을 저는 추석에야 알게 됐고 저와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뭐가 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른다”고 해명했다. <펜앤 특별취재반>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