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전 공사는 “北, CVID 수용 가능성 낮아...핵무기 끝까지 가지고 갈 것”

지난 2월 북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 (연합뉴스)
지난 2월 북한 '건군절'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 (연합뉴스)

북한은 미북(美北)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협의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방법으로 핵을 전면 폐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소식통을 인용해 3일 보도했다. 그러나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2일 미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CVID)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낮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북한은 핵무기 사찰에도 응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폐기할 의향이라고 한다”며 이같이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폐기하는 비핵화 조치를 받아들일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당국자와 미국 핵전문가 등 3명이 지난 4월 하순부터 1주일 남짓 방북했다”며 “미북 간 협의결과는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이 그간 핵무기는 군사기밀이라며 신고 자체를 거부했지만 이번에는 모든 핵시설과 한미일이 12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 사찰을 시행하는 것에 응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며 “북한은 체제보장, 미국과 국교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등을 요구했으며 단계적 비핵화를 진행하면서 대가를 받아들이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2000년대에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원자로 등 핵 관련시설과 무기용 플루토늄 생산량을 관계국에 신고했지만 과학적 방법을 이용한 사찰을 포함한 검증작업을 거부해 폐기하지 않았다.

신문은 “미북정상이 ICBM 폐기만 합의하는 경우 한일은 북한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내에 남게 된다”며 “한국은 이러한 미사일 위협을 염두에 두고 남북 정상회담에서 상대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고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미북 정상회담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북한 비핵화(CVID)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끝까지 핵무기를 가지고 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태 공사는 이날 RFA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판문점까지 내려왔다는 것은 북한이 그만큼 위기에 몰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가 북한에 가한 정치, 경제적 제재와 압박의 결과”라고 했다. 이어 “판문점 선언은 그 자체로는 대단히 훌륭하고 좋은 문건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7.4, 6.15, 10.4 공동선언 등도 문건 자체로는 완전무결했지만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라며 “원인은 이 합의를 이행하려는 진정성과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육성 연설에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김정은은 ‘나는 핵을 만든 핵보유국의 지도자’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논의해야 할 문제이며 핵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 지도자와 비핵화 문제를 논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북한을 ‘악마’로 규정한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북한 지도자를 만난다는 것은 북한으로선 ‘우리는 정상국가’라는 점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며 “김일성, 김정일은 미국 대통령과 단 한번이라도 만나서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해보려고 대단히 많은 신경을 썼지만 이루지 못했다. 김정은이 이를 이룬다면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자체를 외교적 승리로 간주해 이를 국내 선전용으로 크게 활용하며 할 것”이라고 했다.

태 공사는 “김정은은 아마도 ‘핵무기만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 나머지는 다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북한의 입장에서 핵실험장은 ‘과거’이며 앞으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까지 갖추는 것은 ‘미래’다. 최근 북한은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로 인해 미래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김정은은 현시점에서 ‘미래’와 ‘과거’는 대담하게 포기하겠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것(핵무기)은 끝까지 가지고 가겠다는 입장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핵실험장을 폐기할 때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을 초청해 보여준다는 것은 북한이 이미 계획하고 있던 전략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비핵화를 통해 핵이 없는 한반도를 만든다’고 합의한 것에 대해 그는 “‘핵이 없는 한반도’란 개념은 굉장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태 공사에 따르면 북한이 일관되게 노리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한반도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철수시키는 것이다. 이는 1991년 미국이 전술핵무기를 철수하면서 실현됐다. 둘째, 미국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 핵무기와 전략자산을 전개하거나 반입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핵불사용 선언’을 미국에 요구해 이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태 공사는 “앞으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한국과 미국에 이런 것들을 요구할 것”이라며 “미국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에 대해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전에 선언, 담보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이를 수용할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완전한 CVID의 핵심은 ‘무작위 사찰(Random Access)’ 즉 북한을 강제 사찰하는 것”이라며 “이는 사찰 주체가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지역을 사찰한다는 의미로 '사전에 통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개념”이라고 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CVID를 이행한 전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국의 자주권에 대한 난폭한 유린으로 간주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이 CVID 원칙을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는 핵시설과 미사일 시설이 아니더라도 외부세계에 공개할 수 없는 예민한 지역이 너무 많다”며 대표적인 예로 북한에 존재하는 5곳의 정치범수용소를 들었다. 태 공사는 “북한이 이런 지역들을 사찰 지역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이라며 “이를 수용한다면 북한은 반인도 범죄를 감행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주게 되는데 그 순간 북한 시스템은 존재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했다.

태 공사는 “미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예측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지난 1991년 남북이 채택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수준의 합의를 이루면서 미북 정상회담이 종료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본인은 정상적인 사람이고 북한은 정상국가라는 이미지를 연출하려고 할 것”이라며 “또한 김정은은 핵만 가질(유지할) 수만 있다면 미국인 억류자 석방 등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양보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태 공사는 “국제사회에는 공개된 바는 없지만 중국이 상당한 규모의 대북지원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현재 북한은 대북제재 국면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던 중국이라는 큰 산을 절반 정도 허물었다고 평가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 정부와 당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며,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를 이용해 동북아시아 전략을 실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며 “핵심은 미국의 핵전략 자산을 중국으로부터 좀 더 멀리 밀어내는 것이며 이런 점에 서 북중 간 전략은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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