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승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랍 속의 기념품 펜

서랍에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펜 박스가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로고가 찍힌 기념품입니다. 5년쯤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소위 ‘블랙 리스트’로 혼비백산 중이었고, 몇 개 산하기관도 홍위병이 발호한 양 북새통이었습니다. 그해 겨울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영상물 구입 건으로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박물관 직원 여러 사람이 함께 인천으로 찾아오겠다기에, “제가 광화문으로 가는 편이 간편하겠다”고 했습니다. 몹시 반기는 눈치였습니다.

◇역사박물관 회의실에서 생긴 일

회의실로 안내받으며 책임자로 보이는 분에게 “직전 관장은 이승만 전공자이고, 신임 관장은 〈백년전쟁〉 제작진과 같은 편이라 머리가 아프시겠습니다” 했더니 ‘그걸 알고 계시냐’며 눈이 왕방울만해졌습니다. 사실은 그 점이 그날 회의 주제와도 관련 있었습니다.

박물관 소장품 구매 담당팀 전원이 회의실에 모인 듯했습니다. 새 관장이 부임하자마자 ‘몽구미디어 전편(全篇) 구입을 명하셔서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습니다. 당시 ‘몽구미디어’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터라 잠시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이명박 전(前) 대통령이 유인촌 전 장관 등 참모들을 뒤로 하고 서울구치소로 떠나는 영상이 보였습니다. “나는 저것들도 다 감옥에 가는 것을 보고 싶다” - 그런 비슷한 음성이 깔려 나왔습니다. 바로 느낌이 왔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소장품목으로 적절하지도 않은데, 관장님 명에 따라 몽구미디어 제작자를 접촉해 보니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여 예산상 부담도 크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정권이 바뀌면 구매 업무 담당자들이 곤욕을 치르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책임을 지더라도 기관장이 책임을 질 일이지 실무자들에게 화가 미치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적폐 수사 기준을 다음 정부에서 역(逆)으로 적용한다면, ‘몽구미디어 구매 사실’은 바로 실무자들에 대한 ‘영장 기재 범죄사실’이 되겠다 싶었습니다.

몇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첫째, ‘전편 구매’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을 문서로든 전자메일로든 계속 기록으로 남기시라. 둘째, 만일 구매를 한다면 ‘일부’를 다른 영상물과 ‘함께’ 구매하시라. 셋째, 외부 전문가 중심으로 구매(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실상의 결정권을 넘기시라.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그 위원으로 들어와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원입니다. 혹시라도 저를 추천했다가는 관장님께 혼나실 겁니다.”

책임자 되는 분이 거의 울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보의 그 위원을 안 하시면 안 되나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펜.(사진=홍승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펜.(사진=홍승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관장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주년 기념 경축사에서 현대사 박물관 건립을 공포했습니다. 그래서 2012년 12월 21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문을 엽니다. 초대 관장은 김왕식 이화여대 교수, 2대 관장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2017년 7월 12일 임기를 6개월 남기고 사임합니다. 2017년 11월 1일 주진오 상명대 교수가 3대 관장으로 취임합니다.

2017년 7월 13일 자 한겨레신문 보도입니다.

김(용직) 관장은 2008년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진에 참여했고, 박근혜 전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고시된 뒤인 2015년 10월에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의 국정화 지지성명에 이름을 올려 관장 임명 당시 자격 시비를 빚었다. 지난해 3월 기획전 간담회에서는 “임시정부 수립 당시는 일제 강점기여서 선거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닌 민족운동단체다”라고 발언해 구설을 불렀다. 그의 발언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헌법을 정면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3대 관장 주진오 교수는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출연하여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공격하였답니다. 〈백년전쟁〉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 잠깐 영상물을 들여다보다가 화면을 돌렸습니다.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하였습니다. ‘주진오’가 누구인지도 몰랐으니 그가 출연한 장면을 보았던지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의 2013년 3월 16일자 보도에 의하면, 주진오 교수는 〈백년전쟁〉에서 “이승만이 학업능력 부진으로 하버드대에서 석사도 마치지 못했으나, 미국 장로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프린스턴 입학이 가능했고,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된 것도 한국의 원주민 교역자를 프린스턴대학에서 배출하려는 의도”라고 깎아내렸답니다.

배재학당 출신의 조선인 청년이 1910년경 미국 명문대학을 오가며 이룬 놀라운 성취를 단칼에 격파하고자 덤비는 ‘국내파’ 토종 교수의 ‘감투’ 정신이 놀랍습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이 안중근과 같은 독립투사로 보이기 위해 손끝에다 입김을 부는 괴상한 행동을 했고, 하와이 한인들이 궁금해 하면 “내가 일본감옥에서 고문을 당해 아직도 손끝이 시리다”라는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하와이 한인들이 자신을 추종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답니다. 이에 대해 주진오 교수는 이승만이 일본에 의해 감옥에 갈 이유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이승만을 박해할 이유도 전혀 없다고 주장했답니다. 

뉴데일리의 기사는, “그것은 단지 일본의 고문을 이겨낸 독립투사로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하려는 시도였고, 거짓말이었다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주진오 교수의 주장이라는 뜻인지, 기자의 판단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박영효의 고종 폐위 모의에 연루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한성감옥에서 5년 7개월간 수감생활을 하고 1904년 8월 석방되었습니다. 권총 탈옥 시도, 동지들의 사형 집행, 수감생활 중 집필활동, 재소자 교육, 옥중 도서관 설치 등 드라마틱한 수감생활만으로도 더 이상 투쟁경력을 과장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홍보 포스터.(출처=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의 홍보 포스터.(출처=민족문제연구소)

◇헌법전문 - “임시정부의 법통”

임기 6개월을 남기도 사표를 낸 김용직 교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짝꿍입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석사를,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박사를 끝낸 성실한 연구자이지요. 청년 시절, 길바닥에서 마주쳐 ‘이화장에서 이승만 자료를 정리 중’이라던 소식을 들은 후로 한 번도 만나지는 못했으나, 그의 학문적 엄밀성에 대해서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한겨레신문은 김용직 교수가,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닌 민족운동단체다”라고 발언해 구설을 불렀(고), 그의 발언은 “대한민국이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고 명시한 헌법을 정면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헌법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표현은 제헌헌법이 공표된 후 40년이 지나 1987년 처음 등장합니다. 광복군 출신 김준엽 전 고대 총장이 국회에 귀띔하여 이루어진 변화라는 풍문이 있습니다. 

1948년 제정헌법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1962년 헌법 전부개정 당시 ‘4 · 19’와 ‘5 · 16’이 추가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ㆍ19의거와 5ㆍ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1980년 전부개정으로 다시 ‘4 · 19’와 ‘5 · 16’이 사라집니다.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1987년 전면개정 헌법의 전문입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당대를 살아온 우리 선배들이 임시정부의 위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단서입니다.

◇세월이 흘러

대법원은 2019년 11월 21일 〈백년전쟁〉을 방송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였습니다(2015두49474 판결, ‘제재조치 명령의 취소’ 참조). 영상물의 내용이 사실을 왜곡하고 고인이 된 이승만 · 박정희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전제에서, 〈백년전쟁〉에 대해 방송위원회가 내린 ‘제재조치’가 적법하다고 판결한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입니다. 대법관 6명은 하급심 판단이 적절하다고 보았으나, 다른 대법관 7명이 다수의견으로 파기환송을 결정했습니다. 우리 사회 건전성의 보루가 무너진 단면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임기 마지막을 카운트 다운하고 있습니다. 그날 역사박물관 회의실에서 수심 가득한 얼굴로 저를 반긴 그분은 이제 정년을 맞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선량해 보이던 그분의 걱정스런 표정이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홍승기 인하대학고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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