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시내로 옮겨보겠다는 발상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구중궁궐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터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윤 당선자도 광화문 시대를 언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히 대통령실을 새 장소로 옮기는 문제는 이렇게 졸속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외교부 청사에 2,3개 층을 쓴다면 대통령이 겸손한 실무형 장소로 옮겨 나온다는 점이 적절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용산의 국방부 빌딩 전부를 대통령궁으로 쓴다는 것은 정말 황당하다. 

용산 공원을 대통령이 차지하는 사태로 인식될 것

용산의 좋은 공원터를 오히려 대통령이 사유화하는 뒤집힌 기분까지 느끼게 된다, 대통령의 정원을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공원을 대통령이 차지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국방부 건물을 대통령이 차지하면 국방부와 합참 등 지금의 군 관련 시설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고 한다. 웃기는 짓이 되고 만다. 멀쩡한 청와대를 놔두고 왜 옮긴다는 말인가. 참모들은 “절대로 청와대로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니 무슨 전래 풍수의 기괴한 기피지로라도 지정되었다는 것인가. 절대라니!

청와대 너무 비대해 어디든 마찬가지

 대통령실이 무슨 그렇게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높은 빌딩을 쓴다는 것인가. 지금 청와대는 실장만도 비서실장 정책실장 안보실장 등 3명이다. 그 아래에 정무, 민정, 소통, 인사, 시민사회, 일자리, 경제, 사회 등 수석이 8명이나 군림하고 계신다. 경제보좌관 과학기술 보좌관이 또 계시고, 다시 안보실장 아래에 1차장 2차장 위기관리 센타가 또 가동하고 있다. 이들 외에 총무, 의전, 부속실, 상황실 등 벼라별 조직을 거느리고 있다. 연설 비서관이 또 있어야 하고 이 모든 사무실이 수명 수십명씩 또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조직이 왜 필요하나. 경호실 빼고도 그렇다. 이런 구성은 내각의 장관들과 정확하게 겹칠 뿐 아니라 특히 수석 자리는 업무가 자기들끼리 겹쳐서 오히려 갈등요인이 된다고 할 정도다. 왜 청와대가 이렇게 비대한 또 하나의 정부가 되고 말았나. 한마디로 대통령이 장관을 거느리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래에 수석비서관을 데리고 일을 하는 그런 구조로 되어 왔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한마디로 대통령에게서 단물을 뽑아먹으려는 자들이 내각의 각부 장관들을 바보로 만들고 대통령과 격리시키고, 자기들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대통령을 황제로, 그래서 바보로 만드는 일을 줄기차게 이어 왔기 때문이다. 정부 위에, 대통령실이라는 또 하나의 정부가 책임은 안 지고 내각에 올라타 권력은 누리는, 사실상의 권부로 행세해오고 있는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이런 구조를 깨뜨리지 못한다면 그 사무소의 소재지를 용산으로 옮기든 광화문으로 옮기든 세종으로 옮기든 청와대는 구중궁궐이 되고 첩첩이 인의 장막에 쌓인 곳이 되고 만다. 대통령이 성공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같다. 대통령실 그 자체에 실패의 이유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무능이 비서조직만 늘린다

이렇게 거대한 조직을 만들어 놓고 제왕적이니 아니니 하고 떠드는 것 자체가 웃기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세들이 벌써 움직이는 것을 보니까 이 역시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대통령 구중궁궐’이 될 것같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감이 들어 온다. 그런 청와대가 용산이면 달라질 것이며 광화문이면 달라질 것인가. 국방부 건물이 통째로 필요하고 외교부 건물을 몽땅 써야 하고, 해당 부처는 타지로 또 건물을 구해서 천지사방으로 옮겨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런 청와대가 주소지를 어디로 하든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벌써부터 윤석열 청와대는 한 두 개 수석 자리를 폐지하는 대신에 수많은 사람들이 위원회라는 이름의 민관 위원회를 구성하여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니 이런 청와대는 그 자체로 내각을 또 핫바지 저고리로 만들고 위원회라는 이름의 부나방 껍데기들을 줄줄이 내세워 실세들이 해쳐 먹는 3중 구조의 권부로 만들어질 것이 너무도 뻔하다. 정말 개명 천지에 이런 바보짓을 또 할 것인가. 청와대가 비대화하는 근본 이유는 대통령의 국정에 대한 무지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은폐할 수 있도록 비서조직만 계속 불어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긴다커니 하는 등의 한가하고 돈만 많이 드는 주장을 내놓기 전에 청와대를 어떻게 슬림화하고 권한을 각부 장관들에게 실질적으로 넘기고 대통령의 몸집을 가볍게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라야 마땅하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처음으로 한다는 일이 살던 집 버리고 새집으로, 살림집부터 거창하게 미국식으로 짓는다는 것이니 벌써 윤 정권의 행보를 짐작할 만하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모방해서 뭘 한다는 것인가. 청와대 조직이 커질수록 대통령은 구중궁궐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용산이 아니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의 장막이 켜켜이 세워지기 시작하면 이미 대통령 자리를 끝장나는 것이다. 

대통령실에는 정무와 민정 총무 정도면 충분한 것이고 똑똑한 안보 보좌관 한 명이면 그만이다. 비서실장 외에 정책 실장이 왜 필요하며, 그 수 많은 수석 비서관들이 왜 필요한가. 각부 장관들이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청와대 개혁의 올바른 길이다. 이 모든 비계 덩어리를 그대로 싸안은 채 이사 갈 집을 찾으니 서울 천지에 들어갈 집이 마땅치 않는 것이다.

용산 국방부 청사와 주변

 

그 외에도 용산 불가의 자잘한 다른 이유도 있다. 지금의 청와대는 백악산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보안처로서는 서울에 그만한 장소가 없다. 용산은 노지에 노출된 곳이라서 북한의 장사정포를 비롯한 장거리 포격에조차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국방부 앞을 거쳐 반포로 연결되는 길들도 협소하기 짝이 없어서 대통령의 행차 시마다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이 여간이 아닐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 일을 왜 한다는 것인지. 우려지만 오로지 풍수 때문이라는 것인지! 

풍수는 일본에도 중국에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하의 그 모든 것과 하늘의 바람에서 드러난 물길까지 그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과학적으로 파악되는 오늘날 풍수를 말하고 사주팔자를 언급하는 것이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나라가 되었으니 실로 통탄할 일이다. 하물며 대통령과 그 부인이 그렇다면---.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