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우크라이나의 용감한 항전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가슴 벅찬 뉴스를 보며 몇몇 우크라이나 작가가 떠올랐다.” 얼마 전 신문에 실린 한 칼럼의 첫 줄이다. 그런데 ‘용감한 항전’이 대체 뭐지? 항전 앞에 상황을 수식어로 쓰는 것은 이해가 된다. 절박한 항전, 결사적인 항전, 뭐 이런 건 말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용감한 항전이라니. 그럼 안 용감한 항전도 있단 말인가. 그럼 반대말은 비겁한 항전인가. 대체 왜 항전의 가치 판단까지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용감한 항전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대체 그게 왜 ‘가슴 벅찬’ 뉴스지? 누구한테? 왜? 문장을 봐서는 글쓴이도 그렇고 주변도 대체로 그렇다는 뉘앙스다. ‘용감한 항전’과 ‘가슴 벅찬’을 더하면 글의 심정적인 배경이 드러난다. 그것은 강하고 악한 나라에 맞서 싸우는 선하고 약한 나라에 대한 심리적 지지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강하고 악한 나라다. 거기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는 약하지만 선한 나라다. 정말 그럴까. 우크라이나는 소련 연방이 해체될 당시 두 번째로 군사력이 강했던 나라다. 80만의 현역병과 전차, 전투기의 숫자도 무시 못했다. 물론 30년 동안의 몰락은 경이적이었지만 절대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럼 우크라이나는 선한 나라인가. 2014년은 우크라이나 민주혁명의 해로 기억된다. 친 러시아 성향의 정부가 유럽연합(EU)과의 협정을 파기한 2013년 11월부터 친親유럽 행보를 촉구하는 시위가 벌어진다. 해가 바뀌면서 시위는 확대된 끝에 유혈사태도 번졌고 결국 시가전 끝에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정권은 반反러시아, 친 유럽 세력으로 넘어간다. 이 시가전에 네오 나치의 깃발이 휘날렸고 특수부대 수준의 군사 전문가들이 개입되었다는 얘기는 논쟁만 불러일으킬 뿐이라 생략한다.

2014년 이후의 우크라이나 상황

문제는 2014년 이후의 우크라이나다. 정권을 장악한 친 유럽 정부가 친 러시아 세력에게 가한 폭력은 상식을 넘어선다. 공용어로 사용해오던 러시아어를 금지했고 문화와 관습까지도 적폐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다. 무장한 민병대는 무법의 폭력을 행사하며 친 러시아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지리적으로 러시아와 가까운, 그래서 당연히 친 러시아적이고 러시아어를 쓰는 동쪽 지역의 피해는 심각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동쪽 국경에 세워진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대통령은 건국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2014년 5월, 시민들의 집회가 열리던 장소에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군인들 뿐 아니라, 학교, 유치원, 민간 시설에도 포탄이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라는 우리 형제, 우리 역사,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을 간직하고자 한다는 이유로 우리를 죽였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분리주의 노선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협상을 하려고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간직해온 역사와 문화와 땅을 간직하겠다는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독립을 선택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서방 뉴스를 통해서만 그쪽 소식을 접했던 사람들은 동쪽의 친 러시아에 대한 폭력이나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창건 이후 8년간 그 지역에 폭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몰랐다. 우크라이나는 과연 선한 나라인가. 지도를 좁혀보면 졸지에 우크라이나는 악하고 강한 나라가 되고 루간스크는 약하고 선한 나라가 된다. 그럼 이번에는 루간스크의 용감한 항전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라야 하는가.

푸틴은 악마고 우크라이나는 천사인가?

주권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모든 나라는 국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정상이다. 심지어 전쟁까지도 그 ‘최선’에 들어간다. 이때 주권 국가는 실수를 했다고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범죄 행위를 했다고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188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때 비스마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가 우리의 요구에 대항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이 없다.” 이 말을 현재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입해보면 ‘러시아는 러시아의 할 일을 했고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이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다. 다만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은 분명 비판의 대상이다. 푸틴은 오판을 했고 세계 경제를 늪에 빠뜨렸으며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 숫자를 숨기고 있는, 그러나 분명 다수 발생한 자국 병사들의 희생을 초래했다. 그러나 그냥 그뿐이다. 여기에는 용감한 항전이 들어갈 자리도 없고 가슴이 벅찰 일은 더더욱 없다. 국제 정치란 그래왔고 그런 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는 외부의 침입에 대해 생래적인 공포가 있다. 동쪽에서는 타타르인들이 쳐들어와 영토를 유린했고 서쪽에서는 (비록 실패했지만) 폴란드가, 스웨덴이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이 침공했다. 1931년 스탈린은 이런 연설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옛 러시아의 역사는 낙후되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짓밟혀온 기록이다. 몽골의 칸이, 튀르크의 총독이, 스웨덴의 왕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주가,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들이 그리고 일본 군벌이 끊임없이 우리를 짓밟아왔다.” 물론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침략의 사례를 나열한 것이겠지만 스탈린의 이 말에 러시아인들은 기꺼이 동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토의 확장과 유럽연합의 팽창은 푸틴이 어떻게든 막아야 하는, 러시아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러시아는 러시아의 할 일을 했고 우크라이나는 자신들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약하고 선한 나라’는 1905년과 1910년의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미지와 오버랩 된다. 그때의 피해망상을 우리는 혹은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간직 중이다. 그리고 그 퇴행적인 정서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의 기본이 된다는 사실이 놀랍다. 조선은 그냥 ‘약한 나라’였고 악함을 저지를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후진국’이었을 뿐이다. 한국인은 가끔,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1905년의 조선으로 돌아간다. 답답해서 쓰다 보니 글이 차갑다. 소생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해 연민을 느낀다. 다만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그렇다는 얘기고 그 나라가 ‘약하고 선한 나라’이기 때문은 아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