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철(베이징대학 철학 박사)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윤석열은 취임하면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첫 출근을 하겠다고 한다. 청와대 부지는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개방하여 국민에게 돌려 줄 것이라 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대선공약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후보시절 ‘구중궁궐의 청와대가 아니라 광화문시대를 열 것’이라고 공약했었다. 그러나 의전과 경호 등의 문제를 구실삼아 임기 중간에 전격 취소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당 후보는 행정수도를 완성하고자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기겠다고 공약했었다.

청와대는 서울 종로구의 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청와대에는 대통령의 집무공간인 본관, 공식행사 기관인 영빈관, 주거공간인 관저, 외빈 접견장소인 상춘재, 부속기구인 비서실, 경호처, 언론 창구인 춘추관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소나무와 넓은 잔디의 녹지원과 북악으로 이어지는 후원 및 연못 등 아름다운 자연미관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북악산 기슭에 자리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밖 후원으로 조선시대 무술을 연마하던 연무장이 있었다. 그래서 이 지대를 경무대(景武臺)라 불렀다.

1927년 일제는 후원에 있던 건물들을 헐고 공원으로 조성하는 한편 조선총독의 관저를 건립하였다. 광복한 뒤 미주둔군 사령관 하지장군이 잠시 사용하다가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가 되었다. 당시에 경무대라는 옛 이름을 회복하였었는데, 윤보선 대통령이 입주하면서 청와대(靑瓦臺)로 이름을 바꾸었다. 본관 건물이 푸른 기와로 덮여있어서 청와대라 하였던 것이다. 영어 이름은 블루 하우스(Blue House)이다. 현재의 청와대 본관은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신축한 것이다. 전통적인 목조 구조로서 궁궐 건축양식인 팔작(八作)지붕의 겹처마에 한식 청기와를 올린 콘크리트 건물이다.

경무대와 청와대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순탄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임기를 무사히 마치거나 온전히 여생을 마친 대통령이 거의 없다. 역대 대통령이 맞이한 비극도 다양하다. 쫓겨나듯 하야(下野)한 대통령, 쿠데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대통령, 재임 중에 서거한 대통령, 임기 말에 아들이나 형을 감옥에 보낸 대통령, 심지어 퇴임한 뒤 자살하거나 재임 중에 탄핵받은 대통령, 그리고 부끄럽게도 영어(囹圄)의 몸이 된 대통령이 무려 네 명이나 된다.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을 둘씩 구속시킨 사례도 있으니, 비운의 연속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터가 문제되기 하였다.

청와대의 터는 북한산과 북악을 거쳐 경복궁으로 내려가는 기맥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평지가 아니며, 기가 모이지 않고 빠져 나가는 지세이다. 게다가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은 바위산으로 악산(惡山)이다. 풍수지리에 따르면 좋은 땅이 아니다. 길지나 명당은 순한 기세를 가진 터로 생기와 명기가 모인 곳인데, 청와대 터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망해서 돌아간 조선총독부터 역대 대통령들에게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같이 말로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자연의 바람과 물의 흐름을 따지는 지리(地理)가 땅의 이치(理致)라면, 무턱대고 외면할 일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문화재청장을 지낸 인사마저 청와대의 터가 풍수지리상 불길하므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청와대는 서울 장안을 전망할 수 있는 높은 곳에 있다. 세종로에서 올려다보면 경복궁의 고래등 같은 지붕들 위로 웅장한 푸른 기와집이 돋보인다. 마치 봉건시대의 권위적인 궁궐의 일부로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구중궁궐(九重宮闕)’로 표현한 듯하다. 일제는 조선왕조를 가두어 놓듯 앞쪽에는 서구식 석조건물로 총독부(옛 중앙청)를 짓고 뒤쪽에 현대식 건물로 총독관저를 세워놓았었다. 답답함을 풀고자 중앙청 석조건물을 폭파하고 옛 양식에 따라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지어놓고 보니, 어느덧 대통령 관저와 집무공간이 왕조시대의 구중궁궐처럼 되어버렸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관저가 제왕적인 모습을 띠고 말았으니,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모순처럼 보인다. 사회주의 독재국가인 북한의 최고책임자가 제왕처럼 주석궁에 살고, 공산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의 주석이 황제처럼 자금성 고궁 안에서 집무하는 것과 다름없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건축가는 콘크리트로 어설프게 목조 흉내를 낸 청와대 본관 건물을 두고 ‘봉건왕조 건축의 짝퉁’이라며, 과도하게 큰 규모의 공간은 ‘통치자의 허위적 위세’만을 높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비서동에서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까지는 걸어서 10분에서 15분이나 걸리는 거리라니 업무효율 또한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 당선인이 기존 청와대의 제왕적 형태를 철저히 타파할 것이라고 했다니, 이왕에 새 정권이 제왕적 대통령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비대한 청와대를 해체하거나 슬림화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기존 청와대는 사라질 것이며 비서실 조직도 축소해서 업무중심의 형태로 바꿀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주거지로 다른 곳을 물색하고 있고, 제2부속실도 폐지한다고 한다. 인수위원회는 청와대 개혁을 위해 이미 TF팀을 조직했다. 취임하기까지 당선인의 거처를 옮기지 않기로 하고 자신의 아파트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결의가 돋보인다. 새 대통령은 제1호사업인 청와대의 축소 개편에 성공하여 구중궁궐의 권위적인 대통령이 아니라 광화문의 민주적인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스웨덴의 명총리 타게 예란데르처럼 검소하고 정직하고 친근한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2022년 5월 10일에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는 새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싶다.

손병철 前 물파스페이스 대표 · 베이징대학 철학 박사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