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상황 다루는 경영자 선택을 법률가가 판단?
범죄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항상 동기를 살펴봐야
대한민국 사업 하다 망하면 여러 이유로 교도소 보내
국민 일자리 제공하고 언제나 돈 대지만 '타도 대상'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

회사의 경영자를 처벌하는 업무상 배임죄에 대해서 우리 모두 판사가 되어 한 번 판단해보자. 먼저 형법 제356조의 업무상배임의 규정을 보면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다.

‘형법 제356조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는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배임죄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배신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상 이익과 관련한 재산범죄다. 이 규정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키워드는 업무란 무엇인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란 무엇인가, 그 임무를 위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재산상 이득이란 무엇인가 등이지만 핵심은 ‘임무에 위배하여’의 해석이다.

임무를 위배한다는 이 추상적인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시장에서 경쟁하는 회사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을 상시 맞닥뜨린다. 이런 복잡다단한 상황에서 경영자의 어떤 선택이 최선의 선택인가를 법률가가 판단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대법원은 이런 난제에 대해 ‘경영판단의 법리’를 확립하고 있는데,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이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발생의 개연성과 이익획득의 개연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업무상 배임의 고의를 엄격하게 인정해야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결국 또다른 추상적인 기준에 불과하다. 실제 사건에서는 결국 담당판사의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본격적으로 실제 사례를 한 번 보자.

피해자 회사 A의 사장 X는 甲으로부터 공사를 수주 받았는데, 당시 A의 경영상황은 매우 악화되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상태였고 甲으로부터 받을 공사대금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러나 甲도 법정관리 상태의 회사여서 공사대금 지급방식이 선지급이 아니라 기성고에 따른 지급방식이었기 때문에 공사에 필요한 자금은 X가 먼저 구해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공사에 관해 일정부분은 A가 시공능력이 없어서 하도급을 주어야 했는데, A의 입장에서는 하도급을 받은 회사 B에게 선지급금을 줄 수 없었다. 오히려 B 회사의 사장 Y는 그러한 사정을 알고 X에게 긴급운영자금을 빌려주었고 X는 그 돈으로 A회사의 직원들에게 임금 등을 지급할 수 있었다. B 회사 사장 Y는 자신들이 A로부터 하도급 받은 공사의 일부를 다시 C와 D회사에 하도급을 주었다. 이후 공사는 원활히 이루어졌고 완공이 되어 X는 甲으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아 하도급 회사 등에 모두 지급하였다.

이후 X는 회사를 팔았는데, 양수한 乙은 X를 회사 A에 대한 업무상배임으로 고소를 하였다.

 위 사례에서 X는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A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끼쳤다고 할 수 있을까? 검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소를 하였다. A회사가 C, D회사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여 공사를 수행할 수도 있었음에도 B를 끼워 넣어 불필요한 자금을 A에게 부당 시켜 A에게 손해를 입혔고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B가 취득하게 했기 때문에 업무상 배임이라는 것이다.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당시 B에게 하도급을 준 이유는 대금을 선지급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재정악화상태로 이미 신용도가 떨어진 A가 직접 C, D와 계약 자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신용도가 높은 B회사를 중간에 끼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1심법원의 판단은 유죄였다. 그것도 실형 1년 6개월이었다. 이유는 하도급 공사를 받은 B회사가 그와 같은 공사 실적이 없었기에 명목상의 회사에 불과하다고 보이며, 이 공사의 자금을 C, D가 자체적으로 먼저 조달했다는 점, B회사에게 결국 재하도급으로 인한 소위 중간 마진을 취득하게 한 점이 A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었다. A회사의 최대주주 Z는 B에게 하도급 주는 것을 승인했다고 진술했지만 그것은 믿기 어렵다고 배척했다.

2심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2심법원의 판사는 1심의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하였다. A회사는 경영난이 심각하여 직원급여 미지급, 세금체납으로 인한 압류, 다른 채권자들의 압류등으로 인해 위기에 빠져있었다. 또한 이 공사는 발주회사 甲이 법정관리 상태라 공사대금을 선지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A회사가 만일 시공능력이 없는 일정 부분에 대한 하도급업체를 구하지 못한다면 A회사가 어렵게 따낸 공사자체가 취소될 위기에 있었다. X는 B회사의 Y로부터 빌린 긴급운영자금으로 A회사를 유지할 수 있었고 A가 B에게 하도급 준 액수가 경영판단을 넘어설 정도로 과다한 액수로 보이지 않는다. B회사는 하도급 받은 그 일정부분 공사에 대한 경력은 없지만 사장 Y는 업계에서 신망이 두터워 회사 C, D와 선지급이 아닌 공사임에도 재하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공사는 제대로 이루어져 완공되었다.

독자들은 어느 법원의 판단이 옳다고 느껴지는가. 필자는 2심법원의 판단이 옳다고 본다.

범죄에 대한 비난가능성은 항상 동기를 살펴보아야 하는데, 전체적인 사건의 흐름을 보면 X에게 개인적인 착복이나 이득 추구에 해당되는 동기가 없다. 공사대금이 선지급금 방식이 아니어서 공사를 시작하려면 자금이 필요했고 회사는 운영자금마저 없었다. 이러한 난국을 타결할 수 있었던 것은 X, Y간의 신용이었고 Y의 회사 C, D에 대한 신용이었다. 이들의 신용이 합해져서 공사는 제대로 완공이 되었고 A, B, C, D 회사 모두가 원하는 대가를 얻었으며 A회사 임직원은 모두 실업자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를 살려냈다. 업무상 배임죄의 피해자는 A회사지만 과연 A회사가 피해자일까?

이런 상황에서 X가 업무상 배임이라고 비난을 받는다면 아마 1심 판사의 속내는 이런 이유일 것이다. 왜 너는 C, D말고 너의 그 상태를 알면서도 공사를 해줄 E, F, G 등등등을 찾지 않았는가. 설사 B와 하도급, B의 신용을 이용한 C, D와의 재하도급 방식을 취했다 하더라도 왜 너는 더 싸게 가격을 책정해서 A회사가 많이 남겨 먹게 하지 않았는가.

결론은 사필귀정이었지만 X가 치뤄야 할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검찰에 수차례 불려가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아무리 검사에게 항변을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생활은 이미 파탄이 났다. 법원에서는 설사 판사님이 보시기엔 부적당한 가액으로 하도급을 주었다 하더라도 회사를 살리기 위한 급박한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사정했지만, 돌아온 것은 실형이었다. 2년이 넘는 법정 다툼 끝에 항소심 판사로부터 무죄를 받았으나 억울했다. 회사를 살리고 직원들 급여를 주기 위해서는 지금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이 케이스는 그래도 당사자들의 노력에 의해 공사가 완료되어 그나마 모양새가 좋았다. 만일 부도가 났다면 어땠을까. 대한민국에서는 사업하다 망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교도소를 가야한다. 그 사업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지 그 사업의 운영이 적정했는지를 사업과 경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법조인들로부터 판단을 받아야한다. 그것도 사후적인 결과를 바탕으로 말이다. 이 사례와 같이 현장의 사정을 잘 아는 명판사를 만나는 것은 전생의 공덕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사업과 경영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처벌하지 않는다. 경제는 원님이 나서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고, 경제주체들간의 계약과 스스로의 리스크에 따라 민사소송으로 해결한다.

“사업이 망하면 사장은 교도소를 가야한다”는 나라임에도 기업가들에게는 언제나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돈을 벌면 사회적 책임을 지라면서 세금 외에도 각종 비용을 헌납해야한다.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언제나 돈을 대지만, 타도의 대상이다.

성공하면 악덕기업가고 실패하면 업무상 배임범이다.

왜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시나요?

묻고 싶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법무법인 에이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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