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복군 고향에 있는 기념비
이승복군 고향에 있는 기념비

우크라이나는 군사력으로 러시아에 게임도 안되지만 국민들의 저항으로 침공을 잘 막아내고 있다.

총 뿐 아니라 화염병 같은 사제무기로 러시아군에 맞서는 시민들의 모습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의지를 드높이고 국제정세까지 유리하게 돌아가는 형국이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항전 모습 중 유독 조회수가 많은 것은 남녀 아이가 러시아군의 탱크와 장갑차에 맞서 삿대질을 하며 “왜 남의 땅에 쳐들어 왔느냐. 당장 돌아가라”고 외치는 두편의 동영상이다.

두 꼬마의 항의에 어쩔 줄 몰라하면서 뒷걸음치는 러시아 병사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세계인들을 감동을 받고 격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댓글을 남겼다.

6·25전쟁이 끝난지 15년 된 1968년 11월 2일, 북한은 울산 삼척지구에 120명의 중대병력 이상의 무장공비를 침투시켰다.

이 무장공비들은 그 해 1월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서울에 침투했던 북한의 민족보위성정찰국 소속 124군 예하 부대원들로 남한 주민들을 인민유격대에 가입시켜 유격대 활동거점을 구축할 목적으로 남파됐다.

공비들은 군복·신사복·노동복 등 갖가지 옷차림에 기관단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했는데, 주민들을 집합시켜서 책자를 통해 북한의 발전상을 선전하고 ‘인민유격대’ 가입을 강요했다.

이 정도면, 북한을 상대로 전면전, 전쟁을 벌여도 될 일이었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국방력도 경제력도 북한에 뒤지고 있었기에 전쟁은 커녕, 공비들을 소탕하는데만 몇 달이 걸렸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에서 태어나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 2학년이었던 이승복 어린이는 12월 9일 밤 공비들에 의해 어머니와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살해당했고 형과 아버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함께 피살된 남동생 승수군은 당시 7세, 여동생 승자양은 불과 네 살이었고, 그날은 이승복군의 10살 생일이었다.

12월 11일 조선일보는 〈“共産黨(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抗拒(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승복군과 가족의 죽음을 보도했다. 당시 기사는 현장을 목격하고 살아 남은 이승복의 형의 증언을 인용하여 "무장공비가 가족을 몰아 넣고 북괴의 선전을 하자 이승복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대답하여 공비들이 이승복의 입을 찢고 가족들을 몰살시켰다"고 보도했다.

이후 이승복군 사건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학교마다 이승복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반공정신의 상징이 됐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민주화 분야에서 활동하던 진보세력은 유독 이승복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큰 집착을 보였다.

계간 저널리즘 1992년 가을호에 당시 미디어오늘은 〈“공산당이 싫어요” 이승복 신화 이렇게 조작됐다〉라는 기사를 통해 조선일보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일보가 이승복의 형의 이름을 잘못 기록했고, 그의 집이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 소리를 듣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후에 이승복의 형이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힌 것 등을 지적하고 이승복 시신의 입이 찢어져 있지 않았다는 일부 주민의 증언을 인용하면서 조선일보의 기사를 “작문”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라는 단체는 전국을 돌며 ‘이승복 사건 오보 전시회’를 열었고, 좌파 매체들도 합세했다.

그러자 1998년 11월 조선일보는 미디어오늘과 언론개혁시민연대 관계자 2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2002년 1심에서 각각 징역 6월과 10월을 선고됐다. 하지만 2004년 10월 항소심에서 미디어오늘 관계자는 무죄를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선일보의 기사는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거기에 대한 의혹보도 역시 충분한 구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언론의 자유에서 용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2006년 11월 24일 대법원에서 항소심에 확정돼 사건이 마무리됐다.

우크라이나 동영상에서 어린이와 맞닥뜨린 러시아 군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쑥스러운 모습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그런데 북한군은 양민 일가족, 그것도 10살 7살 4살 아이를 살해했다.

북한체제를 선전하면서 남한정부에 맞서 인민유격대 가입을 권하는 공비들에게 들에게 학교 선생님에게 배운대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것이 이승복군과 가족이 무참하게 살해된 이유다.

이승복군 사건보도가 오보라고 주장해 고소당했던 인물은 지금 MBC의 라디오 시사프로 진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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