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⑬]현장교육 28년차 교사의 바람, 이런 교육 수장을 바란다.
[유니샘의 교실이야기⑬]현장교육 28년차 교사의 바람, 이런 교육 수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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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이념과 전략과 전술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공짜가 ‘독(毒)’임을 아는 사람
‘중도’를 경계할 줄 아는 사람
자유, 경쟁 그리고 땀의 가치, 개인의 가치를 아는 사람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입시제도는 출렁이고, 표를 의식한 사탕발림은 춤을 춘다. 누가 좌파는 분열로,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 했던가. 좌파는 지금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우파는 분열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지도자를 세우는 일로 세상이 시끄러운 지금. 다른 영역은 알지도 못하고 솔직히 관심도 없으니 눈길은 자꾸 교육 수장을 세우는 일에만 쏠리게 된다. 다들 주워 담기도 힘들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으나 보고 있자하니 가슴이 터질듯하고 답답하여 참고 있을 수가 없다. 특정인을 말하고 싶지도 또 그럴 수도 없는 처지이지만 뱉을 수 없다고 생각조차 없을 수는 없다. 현장을 28년간 지켜오며 또 척박한 시대에 우파교사로 현장을 지키며 가슴 속에 눌러 담았던 생각을 이리라도 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바람을 토로한다. 이런 교육 수장을 바라면서.

● 궁극의 이념과 전략과 전술을 구분할 줄 아는 사람

‘자유’와 ‘개인의 가치’ 그리고 ‘시장경제’와 ‘경쟁’을 가르치고 땀 흘려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평등’과 ‘공동체’ 그리고 ‘더불어’를 외치면서 자신을 탓하기보다 사회를 탓하고 구조를 탓하도록 가르치는 ‘전교조’와는 정면으로 대치하게 된다. 투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오류와 과제가 오직 전교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파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어찌 ‘反전교조’이기만 하겠는가. 아직도 전통의 가치에서 한 발작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전근대적 가치의 타파, 세계시민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전향적 자세 등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할 가치와 이념은 너무도 분명하며 또 높고 원대하다. 땀 흘려 내 손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생활인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또 어떤가. 우리가 목표로 추구할 교육의 가치를 가르치다보면 자연스레 ‘反전교조’가 되는 것일 뿐, 우리의 교육 목표가 전교조 타파에만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反전교조’는 우리의 지난한 싸움을 위한 전략일 뿐, 그것이 우리의 교육 수장이 내걸 원대한 목표일 수 없다. ‘反전교조’와 아울러 우리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 전술도 있겠지만 온통 목표와 전략과 전술이 뒤죽박죽인 선거판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전략이 목표가 되는 순간 우리의 교육은 또다시 방향을 잃고 단타로 일관된 임시적 약방문만 남발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고작 임기 4년에 연속성 없는 정책으로 연명할 수밖에는 구조적 모순도 부정할 수 없지만, 뚝심을 가지고 백년 지 대계를 품을 교육 수장에게 정녕 목표와 전략과 전술을 구분하며 싸워주길 기대하는 것이 과욕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 공짜가 ‘독(毒)’임을 아는 사람

우파 중에 무상 급식과 반값 등록금을 지지한 얼간이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만일 좌파의 대척점에 있다하는 자 중에 무상급식을 주장 한다면 필시 우파가 아니라는 의심을 해도 좋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정책에 손을 들었다면 명백한 좌파가 틀림없으니까. 그러나 ‘무상보육’은 안 되면서 ‘무상진료’는 된다고 말하면 그것은 어찌 되는가. 교육영역이니 만큼 ‘특별’해야 한다고 그래서 무상 진료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좌파들이 틈만 나면 들고 나오는 ‘예외’와 ‘특별’과 대체 얼마나 다르다는 것인가. 세월호 며 뭐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멀쩡한 법들을 두고 ‘특별법’이 난무 했던 경우를 기억한다. 물론 모든 인간은 특별하다.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 그래서 교육법이 있고 아동 복지법도 있고, 청소년복지 보장법도 이미 있지 아니한가! 아동 복지법의 아동 안전 및 건강지원에 나와 있는 법은 보기나 하고 또 다른 특별법의 시행을 주장 하는가. 얼마나 더 ‘옥상옥’에 특별한 법을 덮어씌워야 속이 시원하단 말인가. 청소년복지 지원법의 제3장 청소년의 건강보장에도 나와 있는 청소년 건강보장 관련법들. 법이 없어 법 만들러 교육 수장이 되려는가?

법이 최소한일수록 자율과 선택이 넓어지는 자유의 원칙도 모르며 우파 교육 수장이 되려는지 한숨만 나온다. 공짜는 적을수록 아니 없을수록 좋다. 형편이 딱한 청소년과 아동이야 당연히 도와야 하지만, 한꺼번에 풀어 제치는 복지가 독임을 모른다면 글쎄다.

공짜는 독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 교육 수장이 우리 앞에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 ‘중도’를 경계할 줄 아는 사람

유예와 중도가 많을수록 그에게서 진실성은 멀어진다. 붉은 색도 푸른색도 다 좋다고 한다면 그것을 두루 섞은 색은 붉은 색도 푸른색도 아닌 보라색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색을 섞어 엉망을 마들고 그것을 마치 ‘포용력’이라고, ‘두루 품는 인성’이라고 이야기 할 참인가. 남자이거나 여자.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둘 중 하나일터다.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할 수 있는 성은 뇌내 망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 동성애에 대한 입장도 찬·반 그 외의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동성끼리의 사랑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일이어서 고대부터 있어왔을 것이고 이제와 멸절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 장려하고 호기심 충만한 어린아이들의 교육의 장에 풀어 놓아 방조하는 것은 교육자로서 온당한 처사가 아니라고 믿는다. 물론 성적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는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거절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방조하는 이가 교육수장이 되는 순간 학교 안 교육에는 엄청난 변혁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그는 조례안을 작성할 수 있고, 예산안을 편성할 수 있다. 교육규칙을 제정할 수 있고, 기금의 설치·운용을 할 수 있고,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동성애와 관련한 독소들도 얼마든지 교묘하게 숨겨 위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좌파들이 하려는 위험한 짓이 그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절대적으로 막아야 할 우파의 교육 수장이라면 이 문제만큼은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싶다.
다시 말하지만 중도란 없다. 이쪽도 저쪽도 다 끌어안겠다는 중도(중용)는 종종 포용력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과욕일 뿐이며, 불분명한 입장으로 적당한 타협을 하고자 하는 원칙 없는 이의 자기변명과 위선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분명하게 우파의 가치를 천명하는 그런 수장이 나와 주길 바란다.

● 자유, 경쟁 그리고 땀의 가치, 개인의 가치를 아는 사람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길로 나가는 사람은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는 사람은 그것이 공짜로 주어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자유도 소중함을 알기에 존중할 것이다. 그 자유는 개인이 지키는 것이지 집단이 지킬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개인으로 길러내기 위해 사회구조와 타인의 탓보다는 자신의 힘과 땀의 가치를 아는 인간으로 길러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집단은 자칫 개인의 가치를 함몰시킬 것이다. 그런데도 개인으로 바로 살기위해 필요한 땀의 가치보다는 집단 우선적 가치를 아무렇지 않게 내세우는 듯하다.

우파 교육 수장을 뽑자는 자리에서 들려오는 ‘인성 교육’, ‘인성’ 소리에 유독 불편했던 것은 유별난 필자의 성정 탓이라 해두자. 그러나 종래의 교육에서 ‘효’니 ‘충’이니 하는 유교적 가치가 부족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장이 드러내는 온갖 문제를 목도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좌파가 내세워온 혹은 전통적 사고가 늘 내세워 온 ‘충’이니, ‘효’니, ‘공동체’니, ‘협동’이니 하면서 그것이 ‘인성’이라고 그렇게 힘주어 왔다. 심지어 실은 우파연 하는 사람들 중에도 교육은 인성교육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도 서슴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내세운 교육 30년! 그래서 지금 남은 것이 무엇일까. 교실이 무너지고 학교폭력은 늘었으며 교권은 실종되었다. 무엇이 빠진 탓일까. 맹자는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이라 했다. 스스로 경제적인 힘을 갖추고 ‘쌀독’을 채울 수 있어야 ‘인간다움’도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아가는 교육, 개인의 가치를 아는 그런 교육이 바로 ‘인성’교육임을 안다면 인성이란 불편한 단어대신 ‘진로교육’과 ‘직업교육’ 이란 단어가 먼저 등장해야 하리라.

‘더불어’, ‘협동’, ‘공동체’에 매몰된 개인의 가치와 자유를 되찾고, 각자가 땀 흘려 ‘인간’으로 우뚝 설 궁리를 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이 우선함을 천명하는 그런 교육 수장이길 원한다.

어떤 사람이 필자의 저런 바람에 부합할지는 모른다. 어쩔 수없이 교육 수장을 세우는 마당에서도 정치적 소견과 유권자를 의식한 말잔치가 난무하는 것을 보며 ‘교육호’가 또 다시 침몰하는가 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갖게 된다. 무엇 때문일까.

첫째는 무지요, 둘째도 무지요, 셋째도 무지한 탓이라 생각한다.

우리 유권자들의 무지가 우리의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다. 무엇이 지켜져야 우리 교육이 살 수 있고, 우리 교육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니 저렇게 용감하게(?) 외치고 표를 휘둘러 왔으리라 생각한다. 제대로 된 선거를 해야 한다고 자신의 시간과 열정과 돈까지 바쳐 헌신하는 분들에게 사리사욕이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오판하는 것. 이는 무지 탓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출마자들이 설마 무지하기야 하겠는가. 출마자는 욕심 탓에 진실을 끌어안지 못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이라는 투지를 나무랄 수는 없으나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가늠하고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가장 늦게 기다림의 꽃으로 피어 인내로 영그는 열매이다. 그 교육을 싸움도 하기 전에 피투성이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적어도 우리 유권자들은 가려내어야 한다. 싸워야 할 때는 싸워야 한다. 그러나 누구를 향해 전의를 불태우며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후보들은 욕심에, 유권자들은 무지에. 멋들어진 합주가 빚어낼지 모를 ‘망국의 한’을 28년차 교사는 피눈물을 흘리며 또 지켜보아야 할 모양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줄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애타게 기다리며 한탄이 길어지고 말았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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