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

다시 3월이다. 103년 전, 아우내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바로 그 3월이다. 나라 잃은 설움에 목숨까지 내어가며 울분을 토해냈던 그 위대한 날을 되새겨본다. 뼛속 에이는 북풍한설 몰아내고 새 출발을 알리는 3월 앞에 지금 우리가 섰다. 대선을 치루는 2022년 3월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는 대한민국을 선택할 준비가 되었는가?

통일‧북한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필자에게 대선후보의 선택기준은 당연히 대북정책과 북한정권을 바라보는 인식 등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거짓 ‘평화쇼’로 북한정권의 눈치만 보는 대북굴종을 단호히 심판할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것이다. 권력에 눈 멀어 또 다른 ‘평화팔이’에 호소하는 이는 절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 노래 중에 <2월은 봄입니다>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엄동설한 2월을 왜 봄날이라 말하는지 의아하지만 그 뜻을 알고 보면 역시 북한정권이구나 싶다. 북한에서 2월은 바로 김정일이 태어난 광명성절로 기념하는 달이다. 가사에는 “백두밀영 고향집에 내걸린 붉은 깃발 아래 새봄이 꽃피웠다”는 구절이 있다. “백두의 태양을 길이 받들어 무궁토록 빛내여 갈 2월은 봄”이라는 내용이다. 사람이 태어난 날을 광명성절로 치켜세우며 신처럼 떠받드는 게 바로 북한정권의 본질이다. 올해 2월은 특히 김정일이 태어난 80주년이라며 대대적인 행사가 열렸다.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이례적으로 광명성절 중앙보고대회를 삼지연시에서 개최했다. 삼지연시는 김정일의 생가라 주장하는 백두밀영 근처로 '혁명성지'로 조성한 곳이다. 삼지연시 건설 사업은 김정은의 최대 치적으로 손꼽는다. 광명성절 경축대공연, 청년야회와 축포행사, 국립교향악단 연주회, 인민예술축전, 중앙미술전시회, 서예축전, 우표전시회, 산업미술전시회를 비롯해 각 도, 시급기관의 예술 공연까지 이어졌다. 북한 전역에서 개최된 행사는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코로나 비상 방역전을 선포하며 국경을 꼭꼭 걸어 잠그면서도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행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가장 고통을 받는 건 결국 북한주민이다. 2월의 야외행사를 준비하면서 얼마나 모지고 힘든 날들을 보냈을지 그저 마음이 아리다.

우리는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지천에 널린 진달래와 철쭉, 노란 개나리와 분홍빛 벚꽃을 계절마다 볼 수 있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자유를 누리고 배곯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것, 이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린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올려다 볼 여유도 결국 자유 안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 자유를 빼앗긴 북녘의 들에도 봄은 오는가? 북한주민의 인권을 증진하고 남북한 주민이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말로만 평화를 외쳐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권 5년간 통일을 말하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은 평화’라며 대화를 강조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암울한 5년을 보냈다.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고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남북연락사무소는 폭파 단추 하나에 흔적 없이 사라졌고, 연일 미사일을 싸대도 ‘미상의 발사체’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은 듯 여긴다. 철책이 뚫려 남북한을 제집 드나들 듯 마음대로 오가도 안보는 튼튼하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자유를 찾아 귀순한 탈북어민을 사지로 내모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도 평화로운 시대라며 두 눈을 가린다. 통일부는 제 기능을 상실한 채 분단부역자가 되었음에도, 통일정책실이라는 부서의 사람은 서기관으로 진급 했다는 기사가 버젓이 올라온다. 문재인 정권에서 통일정책실은 과연 무슨 업무를 담당했는지 묻고 싶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여당의 대선후보는 지금 당장 통일이 어려우니, 북한 정권을 인정하면서 ‘사실상의 통일’을 지향하자고 말한다. 그 역시 대통령 후보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인지 되묻고 싶다. 심지어 그는 “(통일)실현 가능성이 없는 걸로 분열하고 정쟁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일제강점기에 비유하면 독립은 당장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지금 독립을 말하지 말고 적당히 살다보면 언젠가는 독립이 올거라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반일 감정을 조장해 국민을 둘로 갈라 치고, 어설픈 민족주의 감정을 정치에 악용하는 그들이야말로 신 매국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03년 전 독립투사들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비록 독립의 가능성이 지금 당장 없더라도 오늘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영화 ‘암살’에서 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글을 맺는다. 일본군 사령관과 매국노를 죽인다고 독립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주인공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 만주에서는 지붕에서 물이 새거나 벽이 부서져도 고치지를 않았어. 곧 독립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텐데 뭐하러 고치겠어.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하지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103년 전 독립투사들에게 독립이 요원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통일이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어쩌면 생전 통일을 보지 못할 만큼 분단의 골이 깊어만 간다. 그래도 북한주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독재정권에 맞서 계속 싸우고 있다고. 그리고 그날은 반드시 오리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오는 3월 9일은 독재정권을 심판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강동완 객원 칼럼니스트(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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