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공무원 동원해 서명 운동…지방 선거 앞두고 ‘불법 선거운동’ 여지
“공무원조직이 전면에 나선 서명운동, 시민들의 진정성 왜곡”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를 비롯한 지방 4대 협의체가 새해 들자마자 지방분권 개헌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전국적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방분권 개헌 의지를 내보이는 상황에 기대 공개적인 관권 서명운동에 나선 셈이다.

지방 4대 협의체는 이달 1일 지방분권 개헌을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와 226개 시‧군‧구, 3503개 읍‧면‧동 청사에 서명 장소를 설치해 오프라인 서명을 받는다. 온라인상에서도 지방분권 개헌서명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지방 4대 협의체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를 말한다.

광주 광산구 서명운동 추진계획 내용

협의체는 자치단체별 총인구의 20%를 서명 목표 인구로 일괄 배분했다. 이를 다시 부서별, 동별로 배분해 목표 인원을 설정했다. 오는 1월 8일까지 목표 인원의 50%를 채우고, 1월9일부터 1월19일까지 100%를 채운다는 로드맵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지방분권 헌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에는 ▲지방분권 국가의 선언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지방정부’로 위상 확립 ▲국회에 지역대표형 상원 설치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 보장 등이 포함됐다.

대구광역시가 중구가 작성한 ‘지방분권 개헌 천만인 서명운동 지원계획’에 따르면 “구청장, 의원, 공무원 등이 우선 참여하고 주민, 학생으로 참여 범위를 확대해간다”고 구체적 서명 운동 방식까지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라도 곡성군 서명운동 추진계획 목표 인원

이 외에도 각 시군구가 잇따라 ‘천만인 서명운동 지원계획’을 내놨다. 전라도 고창군·곡성군·장수군, 대구광역시 동구·중구, 대전광역시 서구, 경기도 이천시, 충청북도 보은군, 서울시 도봉구, 부산시 북구·기장군, 광주시 광산구 등이 구체적 실천방안을 내놓고 서명운동 추진요청 공문을 일선행정기관에 발송했다.

김관용 시도지사협의회장(경북도지사)은 지난해 12월 “지금이 지방분권 국가 실현을 위한 분권 개헌의 골든타임”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지방분권 개헌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 시기에 1000만인 서명운동을 통해 지방분권 개헌을 국민 운동으로 확산시키자”고 말했다.

‘지자체를 지방정부로 바꾸겠다’며 지방 분권현 개헌 추진을 예고한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엑스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새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잘사는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국정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개헌안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사안이어서, 자치단체의 서명운동이 선거법을 위반하는 것인지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해 1월,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생 구하기 입법촉구 1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한 것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더민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직권조사를 요구했다. 대통령이 민생구하기 법안에 서명한 것이 사실상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변태적 서명’이라는 주장이었다.

한편 일부 지자체에서도 지방 4대 협의체의 ‘일방통행’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 시흥시 공무원노조는 지난해 12월 28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지방분권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지만, 공무원조직이 전면에 나선 서명운동은 시민들의 진정성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부서별로 서명자 수를 할당하고 이를 비교해 평가하는 방식의 서명운동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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