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비핵화 검증은 불가능...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 북한에 상기시켜야"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연합뉴스)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연합뉴스)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 특사는 지난달 30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모호하며 실제로 이를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갈루치 특사는 북한의 핵 실험장 폐쇄 결정은 ‘쇼’에 불과하다며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에 포함된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 금지’ 문구가 북한 비핵화의 로드맵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언론이 김정은을 다정한 이미지로 묘사하고 있지만 미국은 인권 유린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갈루치 전 특사는 VOA에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한반도 비핵화’의 정확한 뜻에 대해 “북한이나 미국이 지금 말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가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모르겠다”며 “제 생각에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를 의미하며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필수적인 핵 물질과 관련 시설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핵 프로그램 해체 과정에서 일부는 검증이 되겠지만 모든 사안들을 검증하기는 어렵다”며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을 포기한다고 해도 미국은 모든 것을 다 검증할 수 없다”며 강조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핵물질은 매우 작다”며 “북한이 자국에 ‘콜라 캔’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하나도 없는지 직접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며 “현실적일 필요가 있으며 어떤 게 가능할지 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달 29일 청와대가 김정은이 “북부 핵실험장(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실행할 때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해 이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 그는 “‘쇼’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핵실험장에는 핵 실험 당시 사용하는 갱도들이 설치돼 있다”며 “그러나 이런 시설들은 다시 지을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역적이 아니며 따라서 북한이 이런 행동에 나선 것이 기쁘긴 하지만 너무 안도해선 안 된다”고 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은 한국과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문서”라며 “북한과 한국 모두 핵무기는 물론 핵 물질을 생산하는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기술 등의 역량을 제한하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과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북한에 상기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 둘 다 없으며, 북한 역시 같은 상황이 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현재 두 시설 모두 갖고 있다”고 했다.

존 볼튼 국가안보 보좌관이 북한 비핵화 방식으로 ‘리비아식 모델’을 선호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그는 “볼튼 대사가 사용한 단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리비아의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에 생긴 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은 과거에도 리비아 사례를 언급하며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볼튼 대사가 정확히 원하는 비핵화 방식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리비아 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언론에서 김정은은 자상하고 귀여운 지도자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미북 정상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갈루치 전 특사는 “북한정권과 지도자가 따뜻하고 다정하다는 이미지는 만든 데는 언론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 문제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들은 이 정권의 잔혹함을 잘 알고 있다”며 “북한은 자국민의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으며 정치범들은 가장 참혹하고 폐쇄적인 정권의 피해자”라고 했다. 이어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미국은 이런 인권 유린 정책을 펼치는 국가와는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갈루치 전 특사는 VOA에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칭찬받아야 한다”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평화협정이 갖는 의미 역시 매우 적다”고 지적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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