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정의당 심상정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 국민의힘 윤석열 ·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왼쪽부터)가 토론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2.3(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토론회가 열린 3일 서울 KBS 스튜디오에서 정의당 심상정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 국민의힘 윤석열 ·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왼쪽부터)가 토론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2.3(사진=연합뉴스, 편집=펜앤드마이크)

온통 폭로와 비방으로 얼룩져 온 대통령선거전이 급기야 여당 후보와 가족들의 ‘공적 영역사유화’ 의혹으로 절정에 도달한 느낌이다. 정책이나 공약은 완전히 실종되고 온통 네거티브 공방전으로 이어지면서 사상 최악의 저질 선거라는 조롱이 계속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 선거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막는 것’이라는 말이 절실히 피부에 와닿는 이번 대선이다.

그래서인지 역설적으로 후보자 간 TV토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 같다. 지난주에 있었던 TV토론은 방송 3사 합계 39%라는 이전 선거에 비교해 크게 높아진 시청률을 기록하였다. 워낙 난장판 선거가 계속되다 보니 그나마 TV토론이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을 들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의 소박한 기대가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 내용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 TV토론 관련 보도나 전문가들 평가 역시 토론 내용보다 후보들의 태도나 언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솔직히 TV토론이 탄생한 미국은 물론이고 대다수 나라에서 관심도나 영향력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후보들 역시 TV토론은 큰 말실수만 하지 않으면 되는 한번 거쳐가는 의례적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이처럼 TV토론이 형해화(形骸化)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대통령선거 TV토론은 시청하는 사람들 다수가 지지 후보를 이미 결정했거나 선호하고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지지 후보의 장점과 상대 후보의 단점만 골라서 보는 선택적 노출(selective exposure)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TV토론 직후 누가 더 잘했는가를 물어보면 각 후보 지지율과 거의 비슷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미결정자 혹은 소극적 참여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은 TV토론 조차 거의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각 선거캠프가 TV토론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을 이유가 별로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론적으로 TV토론은 후보들의 정책을 알리고 비교해서 유권자들의 합리적 투표행위를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합리적 투표행위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특정 정책에 있어 각 후보들의 입장이 분명해야 하고 유권자들도 자신의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후보들의 입장이 대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TV토론은 이 같은 합리적 선택에 필요한 조건들을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TV토론이 거듭될수록 후보자 간 입장이 점점 분명해지고 차별화되는데 반해 우리의 TV토론은 반대로 입장이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정책투표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괜한 대립적 이미지만 조성해 손해 볼 필요가 없다는 소극적 토론 태도를 만들고 있다. 그러니 정책은 뒷전이고 맥 빠진 말꼬리 싸움만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연구 결과들이 유권자들은 TV토론 내용보다 상호 질의·응답 과정에서 후보들의 임기응변 능력을 더 중요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최종결정권자로서 긴급상황에 부딪혔을 때 신속하고 침착한 대응능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긴장감있는 토론방식이 절대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지금같은 정형화된 짧게 분절된 4인토론 방식에서는 긴장감있는 토론은 고사하고 적당히 동문서답 응답으로 시간만 채우는 현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선거관리위원회가 법정 토론은 물론 방송사 초청토론까지 2인토론을 금지한 결정이 크게 잘못된 이유다. 미국은 1989년에 이미 대통령 TV토론을 방송사들이 내용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수많은 방송채널과 인터넷 매체들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TV토론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지나치게 형식에 매달린 시대착오적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이 퇴색되었지만 TV토론은 여전히 선거의 하이라이트다. ‘4년간 이용할 수 있는 흰색 별장과 전용 비행기를 상품으로 내건 지상최대의 퀴즈쇼’라고 평가받는 미국의 TV토론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긴박감 있는 토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과 탄력적 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TV토론은 하나의 선거절차이면서 동시에 방송사 프로그램이다. TV토론을 보는 사람들도 정치적 선택의 주체인 유권자이면서 프로그램 소비자인 시청자인 것이다.

후보자간 방송토론을 더 강하게 규제하려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시대착오적 행태들이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발상 때문인지 아니면 특정 후보의 유·불리를 고려해 나온 사려 깊은 판단인지 정말 헷갈린다.

황근 교수.(사진=황근 교수)
황근 교수.(사진=황근 교수)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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