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와의 평화협정 역사적 조명[김명수]
독재자와의 평화협정 역사적 조명[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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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4.30 16:55:34
  • 최종수정 2018.04.30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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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뮨헨협정(1938년 9월 29일)

: 영국·프랑스·이태리 3개국이 독일 히틀러에게 체고슬로바키아를 양도하여 유럽 평화를 강구할려고 하였다. 여기에 허약한 평화주의자인 영국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요구를 전격수용한후 영국민들에게 영원한 평화를 가져왔다고 하였으나 결국 2차대전의 발발로 뮨헨협정은 역사상 <최악의 평화협정>으로 남게 되었다.

■ 독소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23일)

 : 제 2차대전 발발 직전에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10년 유효,만기시 5년 자동연장)을 체결하였으나 불가침 조약은 불과 17개월 유지 됐다. 이 기간 독일은 프랑스를 점령, 영국과 전쟁, 유보트가 대서양에 영국 상선을 공격했다. 스탈린은 이때 히틀러에, 석유, 목재, 망간, 구리, 그리고 엄청난 곡물을 보냈다. 심지어 미국과 일본에서 구매해서도 보냈다.또한 영국 본토에 기상 정보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독일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였다. 히틀러를 찰떡같이 믿었던 소련 스탈린은 한때 히틀러 침략에 공포로인한 마비증세까지 발생하였다고 한다.

■ 일소 중립조약(1941년 4월 13일)

:일본과 소련 "두 나라 사이에 평화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 영토보전·불가침을 존중할 것(1조), 조약체결국 중 어느 한쪽이 제3국에 의해 군사행동의 대상이 될 경우 다른 쪽은 그 분쟁의 전기간 동안 중립을 지킬 것(2조), 유효기간은 5년이며 기간 만료 1년 전에 예고함으로써 폐기통고를 할 수 있다(3조)" 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소련은 1945년 2월 얄타 회담의 비밀협정에서 대일(對日) 전쟁 참가를 결정하
고 같은 해 4월 5일에 이 조약의 폐기를 통고했다. 일본은 연장을 희망했지만 거부당했다. 소련은 중립조약의 유효기간 만료에 앞서 8월 8일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했다.

■ 파리평화협정(1973년)

: 1973년 월남과 월맹은 파리강화조약을 체결하였지만 월남은 1975년 4월 30일 결국 공산화되었다. 당시 미 키신저 국무장관은 주월 한ᆞ미군이 철수해도 파리협정으로 휴전상태는 최소한 10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였으나 월남은 평화협정 후 2년만에 세계지도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특히 파리강화회담을 위한 휴전기간에도 월남인 100만 여명이 살해되었고,  400~500만여명이 강제수용소로 이첩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 김일성 위장평화공세(1950년 6월 7일)

:북한 김일성은 1950년 6월 7일 <평화적 조국 통일에 대한 호소문>을 평양방송을 통해 발표한후 6월 10일 총참모장 강건으로 하여금 비밀리 비상소집회의를 하여 각 사·여단장들로 하여금 6월 23일까지 모든 전투준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위장평화공세로 수도 서울은 북한남침후 단 3일만에 피탈당했다.

■ 남북 공동성명(1972년 7월 4일)

: 북한은 온 민족앞에 각종 무장도발을 하지 않을 것을 엄숙히 약속한다고  하였지만 그후 8개월이 지나 전남 완도와 제주도에 무장고비를 침투시켰으며 1974년에는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시도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남북 기본합의서 (1991년 12월)
  
: 25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본문은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 3개 범주로 상당히 구체적으로 구성된 평화조약이다.

남북화해와 관련해서는 상호체제의 인정과 존중, 내정불간섭, 비방중지, 상대방에 대한 파괴 · 전복행위 금지, 정전상태의 평화상태로의 전환 등이 규정되었다.

남북불가침과 관련해서는 무력침략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 현재의 경계선과 관할구역 존중, 군사당국자 간의 직통전화 설치 등이 규정되었다.

교류·협력과 관련해서는 경제교류·협력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교류·협력 실시, 자유왕래 접촉실현, 이산가족 왕래실현, 철도·도로 연결 및 항로 개설, 우편 전기통신 교류시설의 설치, 국제무대에서의 상호협력 등이 규정되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야말로 가장 확실한 평화협정이었으나 북한은  2002년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만행을 도발하는등 이를 지키지 않았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김대중·김정일)

: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 공동성명을 통하여 이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은 사라졌다고 단언하였지만 북한은 1999년 6월 15일 제 1연평해전에 이어 2002년 6월29일 월드컵기간중 제2연평해전을 도발하였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노무현.김정일)

: 노무현 대통령이 비무장지대를 넘어 김정일을 만났다. 그들은 한반도 비핵화와영구적인 평화협정 내용을 담은 두번째 협의에 서명했다. 그들은 서로 더욱 자주 만나기로 약속했다.

남한은 1억 달러 이상을 소위(so-called) 인도적 식량지원이란 이름으로 북한에 제공했으나 북한은 2009년 남한을 비난하며 모든 거래를 취소했다. 같은 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강행했고, 인성위성 발사와 두번째 지하 핵실험도 진행했다.


■남북 정상회담(2018년 문재인·김정은)

: 4월27일 발표된 기본 협정내용은 1991년 합의된 <기본합의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단지 선언에 불과하며 완전 비핵화(CVID)를 위한 방법론이 부재한바 이는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보다 훨씬 구체적이지 못하다.

금번 정상회담의 핵심인 북핵폐기에 대한 김정은의 직접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북핵폐기에 대한 구체적 방법이 없는 기타 합의는 단지 말장난내지 속임수 또는 의미없는 휴지조각(이춘근 교수 언급)에 불과하다. 정규재 논객은 금번 회담은 한미가 긴밀히 협조한 최종안을 북한에 요구하기보다는 남북이 긴밀히 공조하여 도출된 최종안을 가지고 미북회담에 대비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북핵폐기에 구체적 방법이 부재한 회담결과에 각종 메스컴들의 순진한 희망적 보도다.

■ 요약 및 제언

인류역사상 지금까지 각종 평화협정은 약 8000여건에 이르며 평균 유효기간은 2년정도라고 한다.

특히 독재자와의 평화협정은 단지 위장평화공세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간 8차례 북한에 속아왔음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은 휴전이후 2014년까지 2953건의 군사도발을 하였으며 정전협정위반은 수십만 건에 달하지만 지금까지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은 단 한번도 그들의 만행을 정식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

김정일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년 1월 31일)약속을  지키지않고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여 2003년 10월 9일 1차 핵무기 실험을 실시하였다.

김정은은 북핵폐기에 확고한 믿음을 주지 못했다. 속된말로 수차례 핵 도발에 대한 일언반구의 참회도 없이 그저 정치·외교적 미사여구 수사로  천진난만하게 잘속는 한국민에게 또한번 속임수를 부렸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까지도 포기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북핵의 완전폐기다.

북핵폐기의 성공은 단계적 북핵폐기와 경제지원이 아니라 선북핵폐기·후경제지원이 될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미북회담에 기대를 걸어본다.

북핵폐기에 대한 최고의 희망을 갖되 준비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한다. 예컨데 북핵폐기가 실패하면 북핵이 필요없도록 한국에 미 전술핵무기 재배치 또는 한국 독자적 핵개발등으로 국민들의 생존을 보장시켜야한다.

결론적으로 본 제목에 부합되는 북한과의 평화협정은 체결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체결에 필요한 북핵의 완전폐기와 남북간 적대감을 해소하고 상호 우호·협력등이 강화 되어 충분한 신뢰가 구축된 이후에나 신중히 검토할 사항이다. 1973년 월남과 월맹간 체결된 파리평화협정으로 월남이 공산화된 역사적 비극을 강건너 불로 볼 문제는 결코 아니다.

김명수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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