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지지율에 갇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8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향해 “조만간 찾아뵙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애의 손짓을 보내는 정황이다. 김 전 위원장이 지난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가) 나를 만나보겠다고 하면 만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한 대답이다.

이재명 후보는 28일 대한의사협회 방문 후 ‘김 전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기회가 될 때 찾아뵙는 게 도리일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후보는 28일 대한의사협회 방문 후 ‘김 전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기회가 될 때 찾아뵙는 게 도리일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당을 가리지 않는 김종인과 적폐세력 청산 외치던 이재명 간 연대, 최소한의 정치적 소신도 실종돼

김 전 위원장의 눈짓에 이 후보가 성급하게 화답하는 형국이다.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 간의 화답은 정치적 소신은 실종된 채 주판알만 튕기는 ‘장사판 정치’의 전형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을 적폐세력으로 공격해온 이 후보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을 지낸 인물과 손을 잡으려는 것은 자기모순의 극치이다.

김 전위원장은 지난 5일 총괄선대위원장직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수십년 간의 정치행보를 통해 당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보여왔다. 하지만 사퇴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 후보와 만남 가능성을 흘리는 것은 볼썽사납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합집산이 극심한 한국적 정치상황이라고 하지만, 급부상한 ‘이재명-김종인 연대’ 시나리오는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거세다.

김종인은 그동안 윤석열 캠프에 있었는데... 이재명이 자주 연락 드리는 사이?

민주당의 유력 인사들도 28일 일제히 이 후보의 이같은 움직임에 동조하는 형식을 띠고 있어 주목된다. 그 위에 김 전 위원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손혜원 전 의원까지 “김 전 위원장이 이재명 후보를 도우면 판이 바뀔 것”이라며 “이준석 대표도 그것을 겁내는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28일 대한의사협회 방문 후 ‘김 전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역량 있는 정치계의 어른이셔서 자주 연락드린다. 연락을 드리면 필요한 조언도 해주시고 가야 할 길도 제시해 주신다"며 "(김 전 위원장을 만나는 게)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힘들긴 한데, 기회가 될 때 찾아뵙는 게 도리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의 인연은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11일 간 단식 농성을 벌일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의 권고로 단식을 중단한 바 있다.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2일 방송기자클럽초청 토론회에서도 김 전 위원장을 두고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잘 모시고 싶은 분"이라고 했다.

2016년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단식농성중인 이재명 성남시장을 격려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2016년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단식농성중인 이재명 성남시장을 격려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내에서는 이 후보의 외연 확장이 시급한 상황에서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의 회동 가능성이 부각되는 것만으로도 득이 될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단순한 득을 넘어, 김 전 위원장을 '쳐낸' 국민의힘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지지율 정체 위기 처한 이재명 캠프 인사들 일제히 ‘군불 때기’ 나서

이 후보의 이같은 행보에 힘을 보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로는 전재수 의원, 박용진 의원, 강훈식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 등이 꼽힌다. 이들은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같은 날, 일제히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그만큼 김 전 위원장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반증으로 관측된다.

전재수 의원은 2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에게 만남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얼마든지 만날 수 있을 정도의 개인적 친분이 있다"며 "(두 사람이 회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이 “되게 친하다”라면서 “선거 때는 지게 작대기도 필요하다”는 말로 두 사람이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후보가 김 전 위원장에게 만남을 요청할 생각이 있냐?”라는 사회자의 노골적인 질문에도 전 의원은 “가능성이 있다”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박용진 의원도 YTN 라디오에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니까 저희에게 필요한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가 여전히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과거 민주당 비대위원장일 때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김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선대위에서 '해촉'된 후인 지난 12일 김 전 위원장과 따로 만나기도 했다. 이 후보와 김 전 위원장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박 의원의 발언에 무게가 실린다.

이어 "김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있고 정권교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맞지만, 정치인 이재명 후보에 대해 적대심을 갖거나 나쁜 인연이 있진 않다"며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될 거라면 좋은 준비와 좋은 기초 체력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을 (김 전 위원장이)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종로 교보타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가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종로 교보타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이 후보에 대한) 호감을 얘기했다"며 "국민의힘에서 험한 꼴 당하고 나오실 때 ‘국운이 다했다’ 이런 얘기를 하신 건 본인이 생각하는 정권교체는 어렵겠다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인 강훈식 의원 역시 이날 KBS 라디오에 나와 "두 분이 원래 연락하는 관계이고 (서로) 좋아한다"며 "지혜를 주신다면 저희도 못 만날 이유가 없다. 여러 가지가 맞으면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지난 26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소환해 “(이준석 대표가) 만나봤자 '좋은 소리 못 듣는다. 만날 생각 마라'라고 한 메시지를 봤다"며 "그렇게 견제하는 걸 보니 다급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로 이 대표를 저격했다.

이준석, “만나봐야 좋은 얘기 못 들을 것”...손혜원, “이준석이 무서워한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2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과 이 후보의 만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김 전 위원장이) 이재명 후보에게 상식적인 이야기 정도는 해 줄 것이다고 했는데, 김 전 위원장의 상식적이라는 발언은 무서운 발언들이 많다. 이재명 후보가 만나는 게 좋은 건지 아닌지는 판단해 본 뒤 그런 자리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전 위원장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지는 손혜원 전 의원 역시 28일 YTN 이동형의 ‘정면승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과 이 후보를 연대 가능성을 언급했다. 손 전 의원은 김 전 위원장에게 “이재명 후보를 도와야 한다”는 말을 계속했다고 밝혔다.

손혜원 전 의원은 지난 28일 YTN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재명 후보를 도울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YTN라디오 유튜브 캡처]
손혜원 전 의원은 지난 28일 YTN라디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종인 전 위원장이 이재명 후보를 도울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YTN라디오 유튜브 캡처]

손 전 의원은 “윤석열 후보는 박사님(김 전 위원장을 지칭)이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다”며 “이번에 그런 식으로 나오시는 걸 보면서 제가 ‘아이고 거 보십시오, 가시는 게 좋은 판단이 아니지 않았습니까’라고 얘기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손 전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에게 갈 때 굉장히 말렸다’는 것까지 밝혔다.

진행자가 ‘만나봤자 이재명 후보는 좋은 소리 못 듣는다’고 발언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거론하자, 손 전 의원은 단호하게 “겁나서 그렇다. 김 전 위원장이 이재명 후보를 도우면 판이 바뀔 것을 뻔히 아니까”라고 대답했다. 정책 전문가인 김 전 위원장이 도우면 항상 효과가 있다는 것이 손 전 의원의 주장이었다.

김종인이 다시 칼자루 잡은 형국...국민 상식과 부합할까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후보나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김 전 위원장의 발언을 확대해석하면서 너무 앞서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전 위원장은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를 먼저 돕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김 전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후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나겠냐'는 질문에 "본인이 만나보겠다고 그러면 만날 수는 있는 것"이라며 "내가 굳이 자연인의 입장에서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이 후보를 만났을 때 "정치인이자 대통령 후보로서 상식적으로 필요한 이야기는 해줄 수도 있다"면서도 직접 선거를 돕는 일 등에 관해선 "그런 짓은 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김 전 위원장이 말한 ‘상식적으로 필요한 이야기’가 어느 수준까지를 의미하는지, 앞으로 남은 대선 기간에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위원장의 상식이 일반 국민의 상식과 부합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결국 칼자루는 다시 김종인이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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