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통과 되기도 전에 국민연금이 나서 '집중투표제' 적극 도입 움직임
엘리엇 등 적대적 인수합병 노리는 헤지펀드에 힘 실어줄 것이란 우려
노동조합 추천 이사 대거 진입할 수도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지침을 개정해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집중투표제는 두 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후보별로 1주당 1표씩 던지는 게 아니라, 1주당 뽑을 이사 수만큼의 투표권을 주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사 세 명을 뽑을 때 1주를 가진 주주는 세 표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어 대주주나 회사 경영진이 원하지 않더라도 투표에서 외국인이나 소수주주가 추천한 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행 상법으론 집중투표제는 선택적이다.

30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16일 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의결권행사 지침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했다.

이에 대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 되기도 전에 국민연금이 나서 집중투표제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하게 정권 코드를 맞추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기금운용위 산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도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리 지침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상법 개정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의결권 행사지침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또 국민연금의 이같은 조치는 최근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그룹에 집중투표제의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엘리엇에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현대차를 비롯한 기업들은 외국계 헤지펀드에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어 그동안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국민연금이 나서 의결권 행사지침에 집중투표제를 안건으로 올려 찬성표를 던진다면 결국 엘리엇의 요구대로 집중투표제가 통과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지침대로 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집중투표제 도입에 반대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엘리엇 요구대로 따르진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적대적 M&A(인수합병)에 대한 기업의 경영권 방어가 취약한 국내 기업의 실정상 집중투표제의 도입을 반대해왔다.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등 경영권을 방어해줄 수 있는 제도적인 구비의 미흡으로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에 취약하다는 판단에서다. 덧붙여 국민연금이 직접 집중투표제를 활용하기 시작하면 정권 입맛에 맞는 ‘노동이사’를 대거 기업 이사회에 진입시키게되는 결과를 초래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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