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 우파 국민들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숙명적 과제는 국권 회복이다. 그 국권 회복은 바로 자유 우파 대통령 당선을 통한 정권 교체다. 그 과업은 애국 국민들의 총결집에서 비롯된다. 그 총결집은 바로 범 보수우파들 간 어떤 고통이나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룩해 내어야 할 거룩한 단일화 작업이다.

나는 85세의 퇴직 교원이다. 나는 일본 피식민지인으로 태어나 6개월간 일제 교육을 받았으며, 학교에 공출 놋그릇을 가져갔고, 어린 손으로 관솔과 솔방울 따기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이후 난항의 건국 과정도 지켜보았고, 피비린내 나는 6·25 전쟁도 체험하였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조국을 우러르며 도움을 주신 국내외 분들께 감사를 드리기도 하였다.

통일벼로 배고픔을 면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속에서 조국의 발전상에 벅찬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수많은 세월 강대국의 지배와 왕조의 수탈을 벗어나 5천 년 역사상 최초로 건립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우리의 거룩한 희망이요 은혜의 축복이었다.

나의 경우, 일제하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그간 큰 애국자는 아니었지만 공사 간 법적·도의적 문제에 연루된 일은 없었고, 내 3형제는 물론 자식 조카 8명까지 모두 군대를 다녀온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나를 불안하게 하는 불길한 예감들이 자주 엄습해 온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우리 조국이 계속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신정 벽두부터 휴전선이 무참히 뚫리고, 북한에선 극초음속과 탄도 미사일을 네 차례나 발사하는 형국이니, 그 추이가 상서롭지 못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국민의힘’ 당에 대한 고언(苦言)

우린 어떤 희생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조국은 반드시 받들어 사수하여야 한다. 조국 수호는 우리의 숙명이며 우리의 생존 이유이기 때문이다.

외람되지만 ‘국민의힘’ 당에 고한다. 솔직히 말하여 현재 나는 국힘당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 싫어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일말의 미련이 남아있어 걸어보는 기대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기대치를 감히 이야기 하려함이다.

첫째, 다음 내용에서 발전지향의 교훈을 찾아주시기 바란다.

미국의 제16대 링컨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 4명 중 4순위였지만 상위권자의 각축전 속에서 극적으로 회생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남북 간 대립과 노예 문제 등 혼란한 정국을 재정립하기 위하여 차원 높은 융화와 포용 정책을 펼쳐나갔다. 후보 경쟁자였던 뉴욕주 지사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오하오주 지사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미주리 판사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항상 자기를 촌놈 변호사라 무시하던 당대 거물 판사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하여, 오늘의 대미국을 건설하게 한 초석의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 대통령은 자신의 경쟁자였던 뉴욕주 지사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오하오주 지사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미주리 판사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자기를 촌놈 변호사라 무시하던 당대 거물 판사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하여, 오늘의 대미국을 건설하게 한 초석을 닦았다.
링컨 대통령은 자신의 경쟁자였던 뉴욕주 지사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오하오주 지사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미주리 판사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자기를 촌놈 변호사라 무시하던 당대 거물 판사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하여, 오늘의 대미국을 건설하게 한 초석을 닦았다.

감정이나 친소관계를 뛰어넘는 그의 인사발굴은 미국의 역사를 크게 변화시켰다. 특히 최강 후보였던 시워드는 경선 패배 후 깨끗이 승복하고, 그 다음날부터 자진 전국을 순회하며 경쟁자 링컨의 지원 유세에 열성을 다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또한 그는 당선자의 각료입각 권유를 감동으로 받아들여, 제17대 존슨 대통령 시대까지 8년간 국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발전적 혜안으로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기도 하였다.

한편 링컨의 포용과 혜안의 인품에 감동하였던 스탠턴 국방장관은 대통령의 비보를 접하고, 각료 중 제일 먼저 병원으로 달려가 슬픔을 표시했던 진심 어린 애도자였고 영혼의 동반자이기도 하였다.

둘째, 다음 내용에서 반면교사의 교훈을 찾아주시기 바란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기술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실상에 관한 이야기다. 3·1운동 이후 국내외에 조직된 임시정부는 서울의 한성정부, 블라디보스톡의 대한국민의회 등이 안창호 선생의 헌신적 노력으로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

상해 임정의 분열상을 교훈 삼아라

통합된 임시정부 참여자의 구성은 각양각색이었다. 우선 활동 지역별로는 국내, 중국, 러시아, 미국 등이었고, 사상별로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대별되었고, 정치체제는 대통령 중심과 내각 중심으로 대립되었다. 그 독립운동의 기본 방향은 외교독립론과 무장투쟁론이었는데, 이승만의 외교형, 안창호의 교화형, 김구의 폭력형, 이동휘의 공산주의형 등으로 구분할 수가 있었다.

이런 다양한 혼합 체제 속에서 고수파니 창조파니 개조파니 하면서, 차원 높은 융화와 통합을 지켜내지 못하고 고성이 오가는 갈등 양상만 높아 갔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과 이동휘 국무총리 간의 갈등이 격화되더니, 드디어 1925년 대통령 탄핵이란 불상사가 빚어졌고, 이로 인하여 사분오열의 임시정부는 사실상 해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임시정부는 출범 후 극심한 분열상만 보여 망명정부로서 국제간의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해방 후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임시정부는 출범 후 극심한 분열상만 보여 망명정부로서 국제간의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한 채 해방 후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다.

그 무렵 오죽하였으면 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우리 임시정부를 일러 파락호 집단이라 지칭하였겠는가? 통탄할 일이었다. 이후 다행스럽게도 김구 선생 주석 시 윤봉길 의사 의거를 계기로 중국 정부의 지원과 친교는 다시 복원되었다고는 전한다.

독립 지향의 임시정부였지만 대외적으로 미미한 활동상 때문이었는지 망명정부로서 국제간의 공식 인정도 받지 못한 채, 해방 이후 개인 자격으로 환국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 자유민주주의 조국 수호를 위하여 살신성인의 자세를 취하라.

우리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려 하였던 그 밑바탕에는 개인의 자주권이나 인격권 보장에 대한 강한 믿음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믿음의 실현이 바로 태극의 나라 오늘의 자랑스런 ‘Oh, Korea’이다.

그런데 오늘날 어이없게도 학원에도, 노동 현장에도, 심지어 청와대에도 북한 찬양의 종북 좌파들이 득실대고 있으니, 이게 정말 정상적인 대한민국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비극적 현상의 직접적 원인은 바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문임이 분명하다.

당시 새누리당의 반역적 당료들 농간으로 자당 국회의원 62명이나 탄핵소추안에 동조함으로써 대통령 파면이란 희대의 불상사가 발생되었던 것이다. 정말 통탄할 패륜 행위였다.

어느 조직 어느 사회인들 크고 작은 갈등이 왜 없겠는가. 허나 그런 갈등 문제는 반드시 그 조직 내에서 자구책을 강구함이 기본 상식이고, 그런 절차가 삶의 묘미 아니겠는가. 물론 탄핵 주도자들 중에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제되었거나 서운함을 느낀 사람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경우 최소한의 양심이나 지각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기의 서운한 감정을 앞세워 국가 원수를 탄핵으로 몰고 가는 그런 어리석은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아쉽고 원망스럽다. 어느 한순간 승화의 길을 모색하는 그런 여유 그런 생각조차 없었단 말인가?

개인 감정의 분풀이로 국기를 농단함은 분명 이적행위다. 탄핵의 지향점은 결국 정권 피탈이요, 공산화 촉진이며, 국권 박탈임이 분명한데 그토록 미래상을 내다볼 수 없었던 한심한 소인배들이었나.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는 두뇌조차 없는 그런 머저리 군상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비분강개의 역사에 허탈한 웃음까지 나왔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선고한 헌법재판관 판사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선고한 헌법재판관 판사들.

탄핵 이후 박 대통령이 영어의 몸이 되신지 이미 5년이 넘었고, 거리엔 인공기가 나돌고, 국방 안보는 가히 무력화되었으며, 국민 우민화의 포퓰리즘 정책들로 이미 국가 부채가 1,064조 원을 넘어섰다. 연초부터 북한은 미사일 발사에 광분하고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업무인지 지난번 호주에 이어 또다시 6박 8일의 여정으로 상하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3개국 순방길에 올랐다. 낭만인가 향수인가 가상세계인가 종전선언만 계속 메아리친다. 믿음이 가신다. 불안이 스친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저기 저 낙목한천에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파르르 떨고 있다. 지각 있는 국민이라면 저렇게 떨고 있는 저 조국을 반드시 회생시켜내야 한다. 자유와 민주의 두 지주는 우리 생명이요 국혼이기 때문이다.

이제 지체할 시간도, 비켜 갈 퇴로도 없다. 오직 행동만이 있을 뿐이다. 그 행동의 D-Day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치를 운명의 날 3월 9일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 우파 국민들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숙명적 과제는 국권 회복이다. 그 국권 회복은 바로 자유 우파 대통령 당선을 통한 정권 교체다. 그 과업은 애국 국민들의 총결집에서 비롯된다. 그 총결집은 바로 범 보수우파들 간 어떤 고통이나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룩해 내어야 할 거룩한 단일화 작업이다.

그 단일화 작업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반드시 지켜내야 할 당면과제이며 국민들의 절박한 염원 사항이다. 더더욱 역대 선거 판도에서 좌파 성향의 투표율이 이미 40%를 넘어섰기에 1:1의 대결은 승산 구도이다. 그 접근 방법은 반드시 있기 마련, 그 정점에 단일화가 반겨줄 것이다.

본인이 앞에서 탄핵 당시 새누리당 당료와 국회의원들에게 심한 질책을 하였지만, 그 질책의 저변에는 진지한 반성의 자세로 명예 회복을 바라는 내 나름의 희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명예 회복은 바로 국권 회복에 전력투구하는 일이다. 끝으로 페트릭 헨리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던 그 명연설을 명심하면서 꼭 과업 성취의 영광을 누려주시기 바란다.

최낙인 전 창원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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