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 28일, 삼성그룹의 건설사 삼성건설은 부산 구포역 인근 경부선 철로 아래서 한국전력의 고압전력 케이블 매설을 위한 발파 작업을 실시했다.

발파 작업의 충격으로 선로를 받치고 있던 노반이 길이 30m, 폭 23m, 깊이 9m 만큼 매몰됐다. 그 결과 기차선로는 커다란 구덩이 위에 레일만 걸쳐져 있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날 오후 5시 30분쯤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 열차가 구포역 전방 700m 지점에 있는 매몰 현장을 시속 85㎞로 달렸다. 100m 전방에서 노반이 침하돼 있는 것을 발견한 열차 기관사가 비상 제동을 했지만 기관차와 발전차, 객차 2량이 웅덩이에 빠지고 객차 1량은 탈선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과 승객 78명이 숨졌고, 중상자가 54명, 경상자가 144명에 이르렀다.

영화에 등장하던 미국 서부시대 열차강도들의 모습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고,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 회장 또한 큰 충격을 받았다.

사법당국의 수사는 물론이고, 삼성그룹 또한 자체적으로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다.

그, 무렵 삼성은 삼성전자를 앞세워 세계 최초 64M 디램 완전 동작 시제품 개발(1992년), 세계 최초 256M 디램 개발(1994년) 등을 통해 세계 1등, 1류기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혁신을 강조했고, 기업문화 또한 정교한 관리의 삼성‘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삼성건설의 어처구니 없는 사고에 대한 삼성그룹의 자체 감사는 건설업이라는 업종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이어졌다.

고대 진시황의 만리장성 공사 때부터 시작된 건설공정은 오늘날까지도 정교한 경영관리가 불가능한 특징을 안고 있었다.

궁극적으로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 손으로 마무리되는 공정, 현장의 주먹구구식 회계 및 인력관리, 이로인한 온갖 부조리 등 건설업은 지금도 현대적 경영이 가장 어려운 산업으로 꼽힌다.

결국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의 결단은 삼성건설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구포사고가 일어난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삼성은 삼성건설이라는 회사를 없애고 토목과 주택으로 쪼개서 삼성물산의 본부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삼성의 건설사업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지금도 국내에서 꾸준히 도급순위 3위권 이내를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높이 828m의 세계 최고층 건물 버즈두바이를 비롯, 대만의 '타이페이 101',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KLCC)' 등 세계 3대 마천루를 모두 시공하는 기록을 세웠다. 주택분야에서도 래미안아파트는 여전히 톱 브랜드를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재계 순위 20위 안에 드는 국내기업 중 사기업은 GS가 건설업을 떼어내 분가한 LG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건설업을 하고 있다.

심지어 재계 순위 6위 포스코까지도 건설업의 비중이 적지 않고, 현대차 등 상당수 그룹은 건설업이 기업 성장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건설업은 의식주라는 인간의 기본 생활요건 중 하나에, SOC를 담당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미래도 유망하다.

하지만 “가장 사람 냄새가 나는 사업이 건설업”이라는 평가의 이면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고민했던 것 처럼 관리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광주에서 발생한 두 차례 붕괴사고로 위기를 맞고있는 HDC 현대산업개발이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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