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선거를 계속 치르면 군대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선거철만 되면 젊은 표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이 모병제, 사병봉급 인상, 군복무 기간 단축 등을 주장하는 악순환 때문에 생긴 말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시절 ‘18개월 복무’를 공약했고 당선 후 실제로 복무기간을 줄여나갔고, 이후 이명박 정부가 24개월로 환원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다시 18개월로 단축했다. 최근에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 후보가 ‘병사 봉급 200만 원’을 공약하자 이에 질새라 야당 후보도 같은 공약을 내놓았다. 선거철마다 도지는 국방포퓰리즘이 불치의 망국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옷에 사람을 맞추자’는 병력감축과 모병제 주장

병역제도와 관련해서 전통론과 수정론이 맞서고 있다. 모병제와 군병력 감축은 정치권 수정론자들에의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국방개혁 2.0’을 통해 병 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고 병력수를 단계적으로 줄이면서 모병제에 대비하고 있다. 전통론자들은 병역을 모든 남성들에게 지워진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는 징병제를 유지하고 병력규모도 안보실정에 맞추어 유지하거나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정론자들은 사람들은 인구절벽, 한반도 평화시대 개막, 청년 일자리 창출, 군 정예화 등을 통한 병력감축 보완, 시대적 추세 등을 이유로 모병제와 병력감축을 주장하지만, 모두가 안보실정에 맞지 않는 내용들이다.

‘인구절벽’ 때문에 모병제와 병력감축이 필요하다는 수정론자들의 주장은 사람에 맞게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옷을 먼저 만들어 놓고 사람을 거기에 맞추는 주객전도(主客顚倒) 논리다. 병력 규모, 병역제도, 복무기간 등은 안보수요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정도(正道)다. 현 상태에서 안보수요에 맞는 병력 규모를 유지할 수 없다면 복무기간을 늘리면 된다. 물론, 강력한 동원예비군이 있다면 현역을 줄일 수 있지만, ‘국방개혁 2.0’에 의해 동원예비군도 130만 명에서 95만 명으로 줄이고 동원기간도 4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한반도 평화시대’라는 것도 현실화되지 않은, 즉 희망사항에 불과한 전제다. 북한이 대병력주의를 고수하면서 변칙기동 탄도미사일, 잠수함발사 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 ‘게임체인저’ 급 핵무기들을 만들고 있고 중국으로부터의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데 ‘북한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전제하면서 병력을 감축하는 것은 한 마디로 비상식적이다. 모병제가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도 허언(虛言)에 불과하다. 양호한 청년 일자리는 경쟁력이 강한 기업들이 번창하는 가운데 안정되고 미래지향적인 고용수요가 늘어날 때 창출된다.

첨단무기도 영혼 떠난 군인에게 고철에 불과

수정론자들이 군 첨단화와 정예화로 병력감축을 보완할 수 있다면서 자주 인용하는 것이 “국방력은 양(量)이 아니고 질(質)이다”라는 논리다. 당연한 ‘교과서적 논리’이지만, 모든 상황에 무조건 그리고 무한정 적용될 수 있는 진리는 아니다. 우선은 북한이 120만 정규군에 800만여 명의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고 한반도의 전투환경이나 북한만이 핵무기를 보유한 핵비대칭 상황을 고려해야 하며, 북한지역에서의 민사작전을 펼쳐야 하는 상황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30만 명의 해방군과 2억 명의 전투동원 인구를 보유한 중국이 주변국들에게 수직적 질서를 요구하고 있는 동북아의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국방개혁 2.0’은 존재하지도 않는 ‘평화시대 개막’과 첨단화를 내세우면서 지상군을 과도하게 줄이고 있다.

첨단무기와 시스템을 확보하는 것은 늘 중요하지만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진정한 정예화가 동반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전방초소를 철거하고 무인 경계장비를 설치한 휴전선 지역의 경게가 자주 뚫리는 사례에서 보듯 군인들의 정신력이 흐트려진 상태에서 장비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베트남 전쟁의 교훈도 잊을 수 없다. 미군은 1973년 파리평화협정으로 전쟁을 종식하고 베트남을 떠나면서 항공기, 전차, 소총 등 무수한 군사장비들을 남베트남군에게 남겨주었지만, 1975년 북베트남군이 남침을 재개했을 때 이 장비들은 무용지물이었다. 남베트남군의 조종사들이 도주함에 따라 전투기들은 이륙하지도 못했고, 지상군은 총포들과 군복을 길가에 벗어둔채 팬티바람으로 도주했으며,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군이 버린 미제 전차들을 타고 사이공 시내로 진주했다. 남침 개시 56일 만에 남베트남은 지도상에서 사라졌고 베트남은 ‘죽음의 산야(killing field)로 돌변했다. 해외 탈출을 위해 조각배에 몸을 실었던 보트피플의 상당수는 육지를 밟아보지 못한 채 바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요컨대, 첨단무기나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능사는 아니며, 정예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방심과 이완을 초래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빈발하는 군내 성추행, 상관 폭행, 무단 군무이탈, 훈련 축소, 군 인권 신장을 빌미로 하는 외부세력의 군 흔들기 등이 군의 유약화를 부추기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럽다. 장병들의 인권과 복지를 확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군기 이완, 계급 간 명령체계 파괴, 훈련 약화, 성도덕 문란 등을 수반하는 복지 증진은 정예화가 아니다.

세계적 추세라는 이유로 모병제를 주장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최근까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채택한 나라가 80개국이 넘고 앞으로도 모병제 국가가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안보가 취약한 고위험군 국가들을 포함하여 아직도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들은 많다. 이스라엘에서는 남녀 전투병은 2년 8개월 그리고 여자 비전투병력은 2년을 복무한다. 대만은 고위험군 국가이면서도 최근 모병제로 전환했다. 중국 위협을 고려하면 대만이 징병제를 포기한 것은 의외이지만, 위험부담은 대만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고위험군 국가인 한국에게 있어 모병제는 먼 미래의 선택이다. 대만도 모병제를 하니 우리도 하자는 주장은 남들이 장에 가니 나도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논리와 같다.

‘병사봉급 200만원’이라는 국방포퓰리즘

징병제 하에서 병장의 봉급을 월 200만 원으로 올리겠다는 대선 후보들의 발언은 포퓰리즘 중에서도 압권이다. ‘무전(無錢)입대 유전(有錢)면제’가 초래되고 ‘흙수저 군대’가 되어 위화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문제 등을 차치하더라도, 재정적 타당성을 고려한 것인지부터가 의문스럽다. 한국군의 경우 이등병 51만원, 일등병 55만 원, 상등병 61만 원, 병장 68만 원 등으로 병사 한 사람이 받는 평균 월급은 58만 7천 원으로 다른 징병제 국가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병사 숫자를 35만 명으로 가정할 때 매년 2조 4,600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며 병장의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릴 경우 병사 일인당 평균 월급은 180만 원이 되어 7조 5,600억 원이 소요된다. 중간 호봉 소위의 월급은 190만 원이고 하사는 180만 원인데, 병사들의 봉급이 오르면 초급 간부들의 봉급도 높아져야 한다. 이런 것들을 감안한다면, 약 10조 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이 국방예산의 건강성을 훼손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2022년도 국방예산 54조 6,112억 원 중 30.45%인 16조 6,917억 원이 전력증강 사업에 사용될 방위력개선비이며, 나머지 69.43%(약 38조)는 병력운영(22조)과 전력유지(16조)를 위해 쓰는 전력운용비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방비에서 방위력개선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정부 동안 방위력개선비의 비중은 미미하게나마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역행 현상을 보인다. 2022년 국방비는 전년 대비 3.4% 증가했지만 방위력개선비는 오히려 1.8% 감소했다. 반면, 고정비에 해당하는 전력운용비는 5.8%가 늘어났으며, 특히 병사 봉급(11%), 장병 보건복지비(58%), 급식·피복비(9.2%) 등이 크게 늘어났다. 이는 국방예산의 건강성이 나빠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일각에서는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인기영합 정책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청년들이 인기영합 공약에 휘둘린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북한은 2천 5백만 명 인구에 120만의 정규군과 붉은청년근위대, 교도대, 노동적위대, 사회안전부 공병부대, 청년돌격대 등 8백만 명의 예비군을 운용하면서 핵무기 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군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시대 개막’을 전제한 ‘국방개혁 2.0’에 따라 축소지향적으로 변신하고 있다. 신무기 사업들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병영복지는 확충되고 있지만, 군기는 이완되고 정신전력은 약화되고 있다. ‘국방개혁 2.0’에 착수하면서 송영무 당시 국방장관은 “공룡같은 군대를 표범같이 날쌘 군대로 만드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군대가 표범 사이즈로 작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표범처럼 날래고 용맹스러운 군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복무기간 단축이 진행 중이며, 정치인들은 수시로 모병제와 병사봉급 인상을 외친다. 아무리 표를 먹고 사는 것이 정치라 하더라도, 국방을 인기영합 정책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특히, 야당 대선 후보들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젊은 표’가 아쉽다 하더라도 청년들에게 안보실정과 예산현실을 설명하고 힘들더라도 국가의 형편에 맞는 대우에 만족하고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해 줄 것을 당부하는 편이 옳다. 입대를 앞둔 청년들이 나라 형편을 외면한 채 더 많은 월급을 주겠다는 후보를 찍는 수준의 유권자들이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야당 후보라면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해야 한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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