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권을 둘러싼 여야 대선주자간의 경쟁에서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담론이나 공동체의 구조적 변화를 좌우할 공약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비전이 실종된 자리를 선심성 공약과 화제성이 차지하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들, 문이과 구별 및 문제풀이 중심 교육 등 개혁방안 제시 못해

대선 후보들은 어렵고 인기 없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 한다. 교육이나 노동, 인권 등 후보자들의 철학을 가늠케하는 정책들은 희소하다. 유권자들 역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가 물에 빠지면 누굴 구할 것이냐’는 질문에 “멀리서 응원하겠다”고 답하는 AI윤석열을 보며 낄낄대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에 대규모 행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대선후보들 입장에서는 공약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음에도 불구, 공약과 정책을 내놓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입시제도를 포함한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발견하기 어렵다. 융합의 시대에 여전히 방치되고 있는 문이과 구분 시스템, 문제풀이 중심 교육을 지양할 창의성 교육 방안 등에 대한 고민이나 언급이 없다.

다만 ‘공정성 강화’의 차원에서 대입수시전형을 손보겠다는 게 주요 대선후보들의 교육공약 골자이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내로남불’식 자녀교육비리에 분노한 민심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선후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윤석열 대선후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수시개혁 강도 가장 낮은 이재명, 공정성 강화 방안만 제시

수시개혁의 강도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10일 교육정책을 발표했지만, 눈에 띄는 큰 정책은 찾기 어렵다. 수시 전형 자체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대입공정성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세부적인 내용 일부만 손질하는 선에서 그쳤기 때문이다.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는 이날 교육 공약 발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후보는 "수시전형 선발이 지나치게 높은 대학은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학생 선발의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한 수시전형 자체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대입공정성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각 대학 수시전형의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선발 결과를 분석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입시 부정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엄단하겠다는 취지임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공공입학사정관제' 도입도 약속했다. 이 후보는 발표문에서 "수능 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없애겠다"며 "수능 문항을 고교 교육과정 범위에서 출제할 수 있도록 출제와 검토 과정에 교사 참여의 폭을 확대하고, 대학생이 수능 문항 검토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 후보는 "현재 시행된 지 30년이 된 수능을 현실에 맞는 수능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라면서 "2028년 대입제도를 미래 지향적으로 설계하겠다"고 말했다.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 당장 제도를 개편하기보다는 차기 정부를 위한 제도를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재명보다는 강도 높은 윤석열, ‘정시 비율 확대’ 약속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정시 비율 확대를 약속했다. 이재명 후보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다. 아울러 공정성 강화를 위해 복잡한 입시 제도를 단순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거대 양당의 두 후보가 모두 ‘공정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입시비리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공정성 제고라는 표면만 부각시킬 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려 한다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다.

윤 후보는 정시 비율 확대를 약속했다. 이와 함께 '초·중·고 6년-3년-3년'으로 대표되는 현행 학제를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재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정성 강화를 위해 복잡한 입시제도를 단순화하겠다는 점도 강조되는 부분이다.

특히 윤 후보는 '코딩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입시에서 코딩에 국영수 이상의 배점을 둬야만 디지털 인재를 기업과 시장에 많이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장 강력한 국민의당 안철수, ‘수시 전면 폐지’를 내걸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지난해 문제가 됐던 생명과학II 20번 문항을 직접 풀어본 뒤 교육 개혁 의지를 밝혔다. [사진=안철수의 소통 라이브 유튜브]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지난해 문제가 됐던 생명과학II 20번 문항을 직접 풀어본 뒤, 교육 개혁 의지를 밝혔다. [사진=안철수의 소통 라이브 유튜브]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수시개혁에 대해 가장 강력한 입장을 밝혔다.

부모 찬스를 없애기 위해 ‘수시를 전면 폐지’하고 수능과 내신으로 평가하는 ‘정시전형’으로 전면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의료인력 선발에 부모의 지위나 정보력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의학전문대학원 폐지도 약속했다. 아울러 로스쿨을 나오지 않아도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변호사 시험을 볼 수 있게 해 계층이동의 계단을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특히 안 후보가 제시한 ‘한국형 전일제 시스템 도입’이 눈에 띈다. 독일식 전일제 교육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방과 후 저녁 7시까지 취미활동과 소프트웨어 수업, 외국어 교육 등을 진행하는 것이다. 또 공공보육시설을 아동 수 대비 70%까지 확대, ‘보육 국가책임제’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70년이 지난 현재의 교육제도는 수명을 다했다는 것이 안 후보의 기본 철학이다. 현재의 입시 위주 제도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육성이 어렵기 때문에, 학제개편도 추진할 계획이다.

전반적인 ‘교육체제 개혁’에 대한 청사진 나와야

하지만 안 후보의 ‘수시 폐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한다. 김희백 서울대 사범대학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창의성과 사회성을 갖춘 학생을 길러야 하는데, 수능 성적으로 이를 판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입시 전형의 공정성은 대학이 설정한 지표에 맞게 잘 뽑았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잘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 틀의 개혁 청사진이 실종된 교육 공약에 대한 비판도 많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유력한 대선후보들의 교육 공약이 전반적으로 약하다"며 "교육 체제 개혁 쪽에 힘을 실어야 되는데, 부분적인 제도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달 21일 시작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 대선 후보 TV토론회 전까지, 유력 대선후보들의 교육공약이 좀더 다듬어지고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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