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물개 박수를 친 그 헌법 해석은 완전히 틀렸다─국가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착각에 대해.

고(故)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아직 ‘부엉이바위’에 오르지 않은 때인 2009년 3월30일, 유시민 씨(前 보건복지부 장관, 現 노무현재단 이사장)가 지은 《후불제 민주주의》(ISBN 9788971993309)의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사회는 김어준 당시 딴지일보 총수가 맡았다.

내가 10년도 더 된 유 씨의 출판 기념회 영상을 유튜브에서 본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이것 저것 보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 영상을 추천해 준 것이다. 정확하게는,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 놓고 다른 짓을 하던 도중 이 영상으로 넘어간 것이지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영상을 보니 대담 도중 김어준 씨는 유시민 씨를 향해 이렇게 말을 건넨다.

“책(《후불제 민주주의》)을 읽다가 제가 깜짝 놀란 게……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이 문구를 읽으면 ‘설렌다’라고 쓰셨어요?”

그리고 김 씨가 “헌법을 읽고 설레는 거…… 이거 정상이 아니거든요?”하고 덧붙이자 청중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온다. 김 씨는 이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거 병(病)인데?”하고 묻는다.

이에 유 씨는 “(우리가) 그걸 못 느끼면 건강하지 않은 것”이라고 대꾸한다. 김 씨는 성인 동영상 이야기, 여자 연예인 이야기, 성적(性的) 페티시 이야기를 건네 유 씨와 말을 나누다가, 이내 다시 주제를 헌법으로 돌린다.

“헌법 내용이 아무리 옳아도, 사실, 나랑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그런데, 헌법을 읽으면서 감정 이입을 한다…… 제 생각에는 (유시민 씨는) 평생 정치를 해야 하는 성정 아닌가……”(김어준)

“아니, 꼭 그렇진 않다고 저는 생각해요. 왜냐하면…… 예컨대…….”(유시민)

“본인을 제외하고, 헌법을 읽고 ‘설렌다’고 하는 사람 보셨어요?”(김어준)

“아니,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서 노래를 얼마나 많이 불렀는데요?” 아니, 작년(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도 그랬고, 몇 년 전(2002년 미선이·효순이 추모 반미 촛불시위)에도 그랬고…… 여기 광화문 앞에 몇 십만 명이 나와서 ‘헌법 제1조’ 노래를 부르던데…… 저는 노래까지는 안 불렀어요.”(유시민)

“혼자 몰래 설레잖나, 그런데?”(김어준)

“예컨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런 문장이요…… 그게…… 헌법 제1조의 문장의 경우…… 유명한 에세이 같은 데 나오는 문장보다 훨씬 힘이 있고…… 느낌이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김어준)

대강 이런 식의 대화가 이어진다.

보려고 한 동영상은 아니지만, 이런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참으로 기가 찼다. 김 씨와 유 씨 간의 대담은 좌익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헌법을 오독(誤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줬고, 그에 동조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시민들을 보며, 우리 사회 일반의 저급한 지적(知的) 수준 다시 한번 놀라게 된 것이다.

◇헌법 제1조의 ‘국민’은 그 ‘국민’이 아니고,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도 그 ‘행복추구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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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의 표지.(출처=교보문고)

그로부터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가 이 수준에서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 헌법 제1조는 “독일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 제1조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 베낀 것임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 헌법 제1조가 상정한 ‘국민’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의 ‘국민’이 아니고, 유권자 개개인의 의사 선택이 모여 하나로 총화(總和)한 일반의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유권자인 ‘나’는 헌법 제1조가 상정한 ‘국민’이 아니므로 ‘나’에게는 주권이 있지도 않고 ‘나’로부터 국가권력이 나오지도 않는다.

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의 내용에 대해서도 유 씨는 정반대의 해석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화의 흐름으로 보건대 유 씨는 해당 조항이 국민(대한민국 국적자)에 대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칠 것을 국가의 의무로 정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틀린 해석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해당 조항은 사실은 ‘국가가 개인의 활동에 대해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대원칙을 정한 것이지 국가가 국민 개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뭔가를 적극 해줘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전자의 의미에서 ‘행복추구권’은 ‘right’(다른 사람의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 무제한의 권리)이지만, 후자의 의미를 따른다면 ‘entitlement’(다른 사람의 희생과 양보를 전제로 하는 권리)가 된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 주기 위해 국가가 적극 뭔가를 해야 한다면, 그 다른 사람의 권리 보장을 위해 다른 어떤 이가 희생당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발(發)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우리는 ‘정부’ 또는 ‘국가’라는 거악(巨惡)의 실체와 마주했다. ‘방역’이라는 허상, ‘국민 전체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정부가 얼마만큼 사람들의 자유를 옥죄고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시민들이 거악에 대항하기는커녕 그에 순응하고, 오히려 국가(정부)의 지침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당국에 고발해 처벌받게 한다는 데에 있다. ‘자유’란 언제나 ‘국가(정부)에 의한 자유’가 아니라 ‘국가(정부)로부터의 자유’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안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국가적 폭력에 한국의 시민들은 무감각하다.(사진=연합뉴스)
‘우리 모두의 안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국가적 폭력에 한국의 시민들은 무감각하다.(사진=연합뉴스)

국가(정부)는 언제나 하나를 들어주면 둘을 요구하고, 둘을 들어주면 열을 요구하는 법이다. 국가(정부)의 말을 들어주면 국가(정부)는 시민들을 놓아주는 게 아니고 더욱 옥죄고 통제하려 한다. 그게 국가(정부)의 본성(nature)이다.

유시민 류의 엉터리 헌법 해석에 물개 박수를 치는 이 나라 시민들에게서 나는 그 어떤 희망의 빛도 볼 수가 없다.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했다는 바이마르 헌법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나왔다.

히틀러가 유태인 600만명을 학살하기에 앞서 그가 유태인들에게 가장 먼저 한 짓은 유태인들의 옷에 자신이 유태인임을 드러내는 표식인 다윗의 별을 붙이게 하고 일반 상점에서 유태인들을 손님으로 받지 못하게 했다는 점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가작통제(五家作統制)의 전통에 빛나는 우리 조선에서, ‘히틀러의 재현(再現)’은 이미 예정돼 있는 것은 아닐는지…….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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