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5일 개봉 이후 누적 관객 650만명을 향해 나아가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질주가 무섭다. 1월 5일 단 하루만 한국 영화 ‘경관의 피’에게 1위 자리를 내어준 이후, 다음날 곧바로 다시 탈환했다.

개봉 첫날 63만 명이라는 최근 유례없는 기록을 세운 뒤, 바로 다음날 100만을 넘겼다.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과,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상영관이 10시 전에 문을 닫으면서 상영 회차가 크게 줄어든 악조건 가운데 개봉 13일 만에 50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15일 개봉 첫날 63만 명이라는 최근 유례없는 기록을 세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2021년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사진=스파이더맨 포스터]
지난해 12월 15일 개봉 첫날 63만 명이라는 최근 유례없는 기록을 세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2021년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사진=스파이더맨 포스터]

멀티버스 세계관 선보인 ‘노 웨이 홈’, 코로나 암흑기에 1000만 관객 돌파 향해 질주 중

코로나 사태 이후 저조했던 극장가에 최대 흥행작으로 등극하며, 21년 1위 영화에 오른 것이다. 2002년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출발한 이후 약 20년간 마블 매니아층으로 자리잡은 10~40대 관객들을 결집시킨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스파이더맨과 마블 매니아를 대놓고 겨냥한 존 왓츠 감독의 시도는 많은 극찬을 받았다. 의도치 않게 평행우주가 열려 한자리에 모이게 된 3명의 스파이더맨이 선보이는 현란한 웹스윙에 눈을 빼앗겼다가, 지금까지 선보인 스파이더맨에 등장했던 5명의 빌런(악당)이 멀티버스에서 소환되면서 관객들은 열광했다.

같은 시간선 안에 여러 세상이 존재한다는 '멀티버스' 개념, 그로 인해 각기 다른 차원에 살고 있던 이전 빌런들이 한 세상에 모이게 되는 광경,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라는 별개의 인물을 또 다른 주인공으로 설정해 펼치는 새로운 이야기 등을 통해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스파이더맨 굿즈도 중고시장에서 영화표보다 더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등, 스파이더맨의 인기는 끝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단지 우리나라만의 것은 아니다.

CGV 스파이더맨 핀배지. [사진 제공 = CGV]
CGV 스파이더맨 핀배지. [사진 제공 = CGV]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개봉 10일 만에 전 세계 흥행 수익 10억5443만 달러(한화 약 1조2500억원)를 거두며, 2021년 최고 흥행작은 물론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1조원 수익 달성에 성공했다. 영화 역사상 2위 오프닝 성적이라는 대기록까지 세웠다.

영화 정보 사이트 IMDB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의 총제작비는 2억 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개봉 첫 주 미국에서만 2억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고, 개봉 11일 만에 전 세계적으로 9억 달러 가까운 매출을 거뒀다. 한국 극장에서의 매출만 같은 기간 500억원에 육박한다.

악당을 물리친다고?...아니, 나는 악당을 교화시키려고 싸워

하지만 영화가 거둔 흥행과 수익과는 별개로, 관객들에게 제공하는 메시지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상의 히어로물이라면 ‘악당을 물리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에게 재미와 몰입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번 스파이더맨은 좀 달랐다.

3명의 스파이더맨은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 위해서’ 다투기 때문이다. 선배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 분, 앤드류 가필드 분)은 후배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이 가려는 새로운 길을 전폭 지지하기 위해 등장한 것으로 그려진다.

선배 스파이더맨들이 그들과 맞선 악당을 죽였던 것과 달리, 후배 스파이더맨은 그와 같은 결정을 거부한다. 그는 악당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고, 악당들이 선배 스파이더맨과 싸워서 죽었던 과거(다른 우주)로 돌려 보내기 전에 성품을 개조해서 돌려보내기로 결정한다.

악당을 교화시키려고 착한 숙모의 죽음도 감수...직장인 K씨, “메시지가 짜증나”

이 과정에서 세 명의 스파이더맨들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는 말을 한목소리로 외친다. 결국 스파이더맨이 가진 큰 책임은 ‘악당들을 개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큰 책임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선한 인물인 숙모 메이가 악당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악을 교화시키기 위해서 선의 희생을 정당화한 것이다.

스파이더맨이 던지는 새 '히어로 윤리'는 기존 히어로물에서는 발견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다. 악인의 인권을 위해서 선한 사람이 희생돼야 한다는 논리가 극대화된 것으로, 많은 관람자들은 이 메시지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9.5점이라는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는 반감을 가진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대 후반 직장인 K씨는 “다른 건 다 재미있었는데, 그 메시지는 너무 짜증이 났다”고 관람평을 밝혔다.

또 다른 50대 직장인 P씨는 “한국 판사들이 흉악 범죄자의 인권과 갱생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거나, 피해자보다 범죄자를 오히려 감싸고 도는 한국경찰을 보도한 뉴스를 보면서 평범한 시민들은 분노를 느끼고 있다”면서 “이번 스파이더맨은 그와 유사한 분노를 유발시킨다”고 주장했다.

악을 위한 선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스파이더맨, 한국사회의 ‘과잉 자유주의’ 문제를 상기시켜

스파이더맨이 던지는 이 메시지는 공교롭게도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과잉 자유주의’ 문제를 상기시키고 있다. 후배 스파이더맨은 자신만의 결정을 내리고, 거기에 따르는 책임을 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사춘기 감정을 잘 표현한 10대 히어로인 후배 스파이더맨은 이번 영화에서 무엇이 옳은 길인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희생시킬 만큼 그 일이 가치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빌런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용서와는 아랑곳없이 혼자 “그들을(악당들을) 개조하고 용서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의 책임인 양 외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하에서 가해자의 인권만을 중시하는 법원판결이 늘고 있는 현상을 연상시킨다. 악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이뤄지는 법적 판단들이, 평범한 시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모순에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성폭행범인 조두순의 인권과 갱생 가능성을 위해 조두순은 12년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하지만 그 피해자인 나영이네 가족은 조두순이 출소되는 시점에 이사를 가야 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용서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과 판사들은 마치 후배 스파이더맨처럼 용서를 한 것이다.

게다가 출소한 조두순에게 매월 120만원의 복지급여가 지급된다는 보도에 여론이 들끓었다. 자격을 갖춘 조두순에게 지급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에 대해 더 관심을 갖는 문재인 정부의 복지 정책’에 전 국민이 분노했다.

얼마 전 데이트 폭력으로 여자 친구를 죽음에 이르게 한 청년에게 법원이 1심에서 7년형을 선고한 것도 큰 논란을 불러왔다. 재판부는 ‘의도적으로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피해 여성의 어머니는 ‘절대 7년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혼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가해자’의 인권에만 관심을 가진 검찰과 법원이 내린 판결에 유족이 분노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하던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하던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한 30대 남성이 서울서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부는 딱 4번의 공판 끝에 7년형을 선고했다는 점에서, 맹비난을 받고 있다.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에 대해 용서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만 ‘피의자의 인권 보호와 고의없음’을 근거로 어처구니없는 솜방망이 판결을 내린 것이다.

애초 검찰이 10년 구형에 머물렀다는 것도 전 국민을 분노케 하는 대목이다. 유족들은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해 줄 수 있도록 살인죄를 적용해달라”는 입장을 계속 밝혔지만, 공소장에서는 변경되지 않은 채 ‘상해치사’로 적용돼, 10년 구형에 그친 것으로 알려진다. 사망한 피해자의 억울함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상식이 배제당한 채, 가해자의 미필적고의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치기어린 10대 스파이더맨과 한국의 사법부가 동일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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