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 연준)와 체결했던 한시적 통화스와프 계약이 만기일인 올해 12월 31일 종료된다. 한은은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이후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이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계약 종료의 배경으로 밝혔다.

한은은 이달 16일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종료를 발표하며, 연장 포기의 이유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 한은은 “최근 금융·외환시장 상황과 강화된 외화유동성 대응역량 등을 감안하면,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 종료로 인해 국내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와 체결한 한시적 통화스와프계약이 예정대로 이달 31일 계약만기일에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힌 가운데, 같은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방지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6일 한국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와 체결한 한시적 통화스와프계약이 예정대로 이달 31일 계약만기일에 종료될 예정이라고 밝힌 가운데, 같은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방지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통화 스와프 연장 불필요하다”던 한국은행 발표, 거짓말로 드러나

하지만 한은의 이런 설명은 딱 1주일 후 ‘모순되는 행보’를 통해 거짓말로 드러났다. 한은이 23일 미 연준(Fed)과 ‘상설 FIMA Repo Facility(이하 피마)’를 필요시 이용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달러 유동성이 부족할 때 한은이 외환보유액의 일부로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담보로 제공하면 연준이 달러화를 지급하겠다는 합의이다.

‘피마’는 연준이 외국 중앙은행 등이 보유하고 있는 미 국채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해, 미 달러화 자금을 외국 중앙은행 등에 공급하는 제도이다. 작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한시적으로 도입했으나, 7월 27일 이를 상설화했다. 도입 당시엔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지 않은 신흥국들이 달러 유동성을 공급받기 위한 창구로 주로 활용했다.

한미 ‘통화스와프’ 연장 못한 대신 ‘피마’로 갈아타

피마와 달리, 통화스와프는 마이너스 통장처럼 언제든지 달러를 꺼내 쓸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한 한국과 미국은 필요할 때 자국 통화를 상대방 중앙은행에 맡기고 그에 상응하는 외화를 빌려 올 수 있다. 달러 확보가 그만큼 수월해지는 것이다.

통화스와프와 피마의 거래한도가 600억달러라는 점에서 얼핏 두 제도가 비슷해 보이지만,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통화스와프는 필요시 원화와 달러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피마는 보유한 미 국채를 담보로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외환보유액은 늘어나지 않는다. 다만, 달러를 현금 형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지 않은 신흥국들이 피마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외환시장 리스크에 대한 안전장치로 피마보다는 통화스와프가 먼저라는 것이 금융계의 기본 인식이다. 그렇다면 굳이 통화스와프를 종료하고, 대신 피마를 활용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주열 한은총재, 한미 통화스와프 연장 부결에 대해 ‘유체이탈 화법’으로 설명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3일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설명회 겸 기자간담회’ 질의응답에서 통화스와프 종료 배경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무산됐다고 하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 연장하려 했다가 실패했다는 뉘앙스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수장으로서 유체이탈 화법이 비난을 받은 대목이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한미스와프 600억 달러 연장이 부결됐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한미 통화스와프가 연장되지 않은 데는 미국 측의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다’는 것이 한국은행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그간 연준과 통화스와프 연장에 대한 협의를 진행해 왔으며, 작년 체결 상황과 지금의 금융 시장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연장할 특별한 유인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한미 양측이 모두 이에 대한 공감대를 가졌다고 부연했다.

특히, 최근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 후 미국이 내년 금리를 세 차례 인상하겠다고 밝혔지만, 국내외 금융시장은 동요 없이 안정을 되찾았다며 통화스와프 종료 배경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주열 총재의 ‘사실 은폐’에 대한 책임론 부상해...3가지 외환위기 우려 상황을 묵살?

하지만 통화스와프 종료 이후, 금융시장에는 제2의 외환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국은행 총재로서 통화스와프 종료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점과, 그로 인해 외환위기 상황이 초래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책임한 대응도 비판을 받고 있다.

현재 학계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한국이 처한 외환위기 상황’은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미국의 테이퍼링 발표에 전 세계 신흥국들의 환율이 급등하면서, 국제금융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국은 지난 11월 자국내 물가가 6%로 급등하자, 11월부터 달러 공급을 줄이는 테이퍼링을 실시하고 있다. 그에 따라 터키의 기준금리는 15%에 달하고, 브라질과 러시아의 기준금리도 7.5%나 된다. 우리나라도 환율이 1200원까지 상승하는 등 위기 신호가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미 연준이 테이퍼링 종료 시기를 앞당기고 내년 세 차례 정책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환율이 더 상승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둘째,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통화스와프를 연장하지 않음으로써 달러를 환수해 갈 예정이다. 이는 금융상황이 악화될 경우 ‘제2의 IMF 외환위기’를 촉진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작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시장 안정화에 큰 도움을 받았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다음날인 3월 20일 달러화 자금 조달에 대한 불안감이 완화되면서, 국내 금융시장은 즉시 안정세를 되찾기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가 전일 대비 7.4% 폭등하고,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40원 가까이 급락했다. 따라서 통화스와프 종료 이후 외환시장이 불안해질 경우, 작년과 정반대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현재 4600억 달러인 우리 외환보유고가 국제결제은행(BIS)의 기준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가 4600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라고 밝혔지만, 국제결제은행(BIS)은 “한국이 9300억 달러를 비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BIS는 외국인 주식투자액의 30%, 유동외채 등을 계산하여 제안했다. GDP 대비 외환보유고 비율은 한국이 28%, 대만90%, 홍콩140%, 싱가포르 120%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단기외채 비율이 상승하고, 일본계 자금 유출에서 시작해 외국인들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해가면서 발생했다. 따라서 심상치 않은 국제금융시장의 징후를 볼 때,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연장 부결은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은행. [연합뉴스 자료사진]

따라서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국민들을 상대로 통화스와프의 진실을 은폐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외환보유고는 충분하고, 외환시장이 안정적이어서 통화스와프를 연장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 총재는 제2 외환위기를 대비할 수 있도록, ‘통화스와프 종료의 진실’을 포함해 객관적인 외환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 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