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공정거래위원회의 ‘SK실트론 투자 사익 편취 혐의’에 대한 판결이 내려진 지 반나절 만에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그것도 공개석상에서였다. 사실상 ‘한탄’하는 분위기였다는 평가이다.

최 회장은 2017년 LG실트론 소수지분을 인수한 이후 사익편취 논란에 시달렸다. 공정위는 SK㈜가 최 회장 대신 29.4%의 지분을 인수했다면 실트론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추가 이익을 얻었을 것이지만, 이를 포기해 이익이 최태원 회장에 귀속됐으며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라고 봤다. 즉 공정위는 “SK㈜가 벌어들일 이익을 그룹 총수에게 '양보했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착해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가 열리는 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 도착해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 전원회의가 열리는 심판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정위의 조사는 2017년 10월 ‘경제개혁연대’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하에서 심화되고 있는 시민단체의 대기업 공격이 사법부나 정부당국의 판결에 과도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최태원 회장, SK실트론에 대한 공정위 판결 반나절 만에 공개석상서 ‘문제 제기’

26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출입기자단과 가진 송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SK실트론 인수가 SK㈜의 사업기회를 뺏은 것이라는 공정위 결론에 대해 “저희로서는 아쉬운 결과지만 제 욕심대로 되는 건 아니다”면서도 “저희가 필요한 조치를 고민해 볼 때”라고 발언했다.

최 회장은 “반성할 부분은 반성하고 고쳐야할 부분은 고치고, 대응할 부분은 대응하겠다는 것이 저희의 기본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공정위 판결에 대해 ‘한탄’했다는 평가이다.

이에 앞서 22일 오전 공정위는 최태원 SK회장이 SK실트론 지분을 인수한 것은 지주회사 SK㈜의 사업기회를 가로챈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최 회장에게 사업기회를 제공한 SK㈜와 이를 받아들인 최 회장에게 향후 위반행위 금지명령과 과징금 8억원을 각각 부과한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2018년 조사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내린 결론이다. 총수가 계열사의 사업 기회를 이용한 행위를 제재한 첫 사례이다. 다만 선례가 없어 검찰 고발 조치는 빠졌다.

일각에서는 ‘봐주기’라는 지적도 있지만, ‘과도한 짜맞추기 징벌’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처벌 사유가 성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의 주장을 수용해 억지 처벌을 했다는 것이다.

공정위, “SK㈜의 ‘사업기회 포기’와 ‘이사회 승인절차 생략’ 통해 최태원 회장이 부당이익 취해”

‘SK㈜ 최 회장이 비서실에 검토를 지시하며 실트론 잔여지분 인수 의사를 표시하자 SK㈜는 자신의 사업기회를 합리적 검토 없이 양보했고, 결국 최 회장에게 부당한 이익이 돌아갔다’는 것이 실트론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결론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SK㈜는 반도체 소재산업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기 위해 2017년 1월 ㈜LG가 갖고 있던 실트론(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의 주식 51%를 인수했다. 나머지 대주주는 사모펀드들이었다. 우리은행 등 보고펀드 대주단(29.4%), KTB PE(19.6%)였다. SK㈜는 LG 지분 인수로 이미 경영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하지만 SK㈜는 유력한 2대 주주가 출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실트론 지분 추가 인수를 추진했다. 같은 해 4월 잔여 지분 49% 가운데 KTB PE가 가진 19.6%를 추가로 매입했다. 이로써 SK㈜는 실트론의 70.1%를 보유한 대주주가 됐다.

보고펀드 대주단의 지분 29.4%는 최 회장이 매각 입찰에 참여해 단독 적격투자자로 선정된 후 그해 8월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구입했다.

공정위는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고 봤다. 첫째, SK㈜의 ‘사업기회 포기’라는 지적이다. 최 회장의 ‘실트론 지분 29.4%’ 취득은 ‘SK에 상당한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였다는 판단이다.

SK㈜는 2016년 12월 실트론의 경영권 인수를 검토할 당시 실트론 기업가치가 1조1000억원에서 2020년 3조3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SK하이닉스를 통한 판매량 증대와 중국 사업 확장 등으로 실트론의 가치증대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국장이 2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SK㈜의 특수관계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한 행위에 대하여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6억 원 부과 결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 국장이 지난 2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SK㈜의 특수관계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한 행위에 대하여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16억 원 부과 결정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정위에 따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SK㈜가 2017년 4월 14일 돌연 잔여주식 취득 기회를 포기했다. 최 회장이 내부 검토 지시를 통해 실트론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힌 직후라고 한다. 장동현 당시 SK 대표이사는 SK의 잔여 주식 취득 의사를 묻는 최 회장의 질문에 인수 여부를 검토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인수할 의사가 없다”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상·증세법에 따를 경우 최 회장이 취득한 실트론 주식 가치는 2017년 대비 2020년 말 기준으로 약 1967억원이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펀드 대주단의 지분 29.4% 매입을 통해 최 회장이 2000억원대의 부당이익을 챙겼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둘째, SK㈜의 사업기회를 대표이사이자 지배주주인 최 회장이 가져가는 ‘이익출동’ 상황이었으나 최 회장의 실트론 지분 매입에 대한 이사회 승인 등 상법상 의사결정 절차도 준수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실트론 잔여 지분 입찰 참여 후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에 2차례 보고됐지만, 공정위는 ‘이 절차가 법적 책임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사회 승인이 필요했다는 지적이다. SK㈜ 사업기회 포기는 최 회장 지배력 아래에 있는 장 대표이사의 결정만으로 이뤄졌고, 사업기회 취득에 따른 추가 이익 등도 검토하지 않았다는 공정위 주장이다.

SK실트론 공정위 제재는 시민단체에 의한 대기업 공격의 새로운 사례

그러나 SK실트론 사건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시민단체가 대기업을 공격한 사건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그 ‘공정성’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가 2017년 10월 이 사안이 ‘총수 일가 사익편취’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공정위는 이듬해 조사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위법성이 인정된다는 결론을 지은 것이다. 공정위가 ‘지배주주의 사업기회 이용’이라는 명목하에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민단체에 의한 대기업 상처내기가 더욱 다양화되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는 그동안 재벌기업에 대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혐의로 제재를 해왔었다. 이번에는 역으로 계열사가 총수에게 직접 부당 이익을 제공한 행위를 제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공정위는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공정위는 약한 처벌을 선택했다. 사안이 심각하지 않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셈이다. 공정위 전원회의는 이번에 공정위 심사관이 요청한 검찰 고발 조치를 뺐을 뿐만 아니라, 과징금액수도 SK와 최 회장에게 각각 8억원만 부과했다. 공정위 스스로 최 회장이 부당하게 챙겼다고 평가하는 2000억원에 비하면 너무 적은 과징금이다.

공정위는 ‘검찰고발’ 사안 아니라고 판단, 시민단체는 ‘봐주기’라고 맹비난

전원회의 위원들은 9명이지만 4명은 제척사유에 해당돼, 이번에 5명만 회의에 참석했다. 그들이 검찰고발을 하지 않는 근거는 서너 가지 정도이다. 우선 SK실트론 사건이 절차 위반에 기인한 것으로 위반행위 정도가 중대·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 회장이 SK㈜에 사업 기회를 제공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최 회장이 SK㈜장 대표에게 사실상 지시했다고 본 공정위 심사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법원과 공정위 선례가 없고 사실상 최초 사례라는 점에서 명확한 법 위반 인식을 하고 행해진 행위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라는 사익편취는 사례가 충분하지만 총수에 대한 사업기회 제공이 또 다른 사익편취가 된다는 논리는 전혀 새로운 상황임을 자인한 것이다.

공정위는 과징금 액수에 대해 “과징금의 경우 사업기회를 받은 객체의 관련 매출액 등의 산정이 어려워 ‘정액 과징금’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은 매출액이 없는 경우 20억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인수는 중대성이 약한 위반 행위로 평가돼 20억원의 40%인 8억원 부과가 결정됐다는 게 공정위측 설명이다.

전례가 없어서 공정위가 과징금 액수를 정하는 데도 헷갈릴 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시민단체의 대기업 흔들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